믿음으로 따라가는 성지순례 ②
사도 바울이 회심한 ‘다메섹’

등록날짜 [ 2006-09-13 10:03:14 ]


바울이 되기 전 사울은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잡기 위해서 유대의 최고 의결기관인 산헤드린에 가서 허락을 얻고, 다메섹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예루살렘으로 압송하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향했다. 그런데 다메섹에 거의 다 왔을 무렵 거기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박해자 사울은 복음을 선포하고 증거하는 증거자 바울이 되었다.
그 옛날의 다메섹은 현재 시리아의 수도다. 바울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큰 도시로 발전했으며 중동의 파라다이스라고 할 정도로 아주 번화한 도시가 되었다.
사도 바울이 살았던 시대의 중동 지방에는 두 개의 중요한 도로가 있다. 해변길과 왕의 대로인데, 이 두 대로가 다메섹을 통과해서 중동의 다른 지방으로 갈 수 있도록 연결되어 있었다. 그만큼 다메섹은 위치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다메섹은 상업, 경제, 교통의 요지였다. 헬몬 산의 눈이 녹아 흘러내려 강을 이루면서 물 또한 풍부했다. 그래서 사막 지역의 녹지대라 불리기도 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항상 아람 왕국과 다투었는데 구약시대의 다메섹은 그 옛 아람 왕국의 수도였다. 또한 학자들마다 이론이 있지만 다메섹은 신약성서에 나오는 10개의 도시 연맹 데카볼리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도시였다고 추정되기도 한다.


바로 이 다메섹에서 사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바로 눈이 먼 채로 사람들에게 인도 되어 다메섹의 직가로 가게 되는데 이 직가 헬라어에서 나온 말로 좁은 길, 골목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지역이 아니라 도로인데 옛날 다메섹의 동쪽에서 서쪽까지 곧게 나 있던 거리이다. 직가라는 이름은 지금까지도 쓰이고 있으며 이곳에는 다메섹에서 눈이 먼 사울에게 안수를 한 아나니아의 집터의 흔적이 남아있다. 현재 그 자리에는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예배당이 세워져 있는데, 그 지하 동굴이 바로 아나니아 집터로 여겨지고 있다.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나타나셔서 “직가에 있는 유다의 집에 가서 사울을 만나라” 말씀하셨다. 그러자 아나니아는 항의한다. “사울이라는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을 박해하는 자인데 제가 왜 거기를 갑니까?” 그러자 주님께서 “사울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택한 나의 그릇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듣고 나서야 아나니아는 사울을 찾아가서 안수를 하고 안수를 받은 사울의 눈에서는 비늘같은 것이 벗겨지게 된다. 아마 이러한 과정에서 아나니아는 사울에게 하나님이 왜 당신을 사용했고 주님이 왜 나타났는지 그 이유를 설명했으리라고 본다. 즉 사울은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세계 선교의 사명을 아나니아를 통해서 많이 배웠으리라고 학자 들은 추측하고 있다.
이 외에 다메섹에는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 회심한 자리에 세운 바울 회심교회, 사울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칼날을 피해 광주리를 타고 성벽을 내려왔다는 자리에 세워진 바울 광주리 교회가 있다.
이렇게 다메섹은 그리스도인들의 박해자 사울이 세계 복음화의 기수 바울로 거듭난 성서의 땅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9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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