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땅을 가다(35)] 생명 보존을 위한 성벽과 샘
예루살렘 성 외부지역 ⑦

등록날짜 [ 2010-09-28 21:05:21 ]

‘다윗 성’-다윗이 쌓은 최초 예루살렘 성벽
‘히스기야 터널’-장기간 물 사용을 위한 수로


다윗 성

다윗 성(The City of David)
현재 예루살렘 성 밖 남쪽으로 경사진 오벨 언덕에 다윗이 쌓은 것으로 알려진 최초 예루살렘 성벽을 다윗 성이라고 한다.

다윗 성은 동쪽 기드론 골짜기와 지금은 메워진 티로포에온 골짜기(Tyropoeon Valley)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지역으로 본래 주전 20세기경부터 가나안 원주민인 여부스의 땅이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할 당시에 베냐민에게 분배한 땅이었으나 정복하지 못했다. 그 후 다윗 왕이 주전 1000년에 정복하여 이곳에 법궤를 옮기고 수도로 삼았다(삼하5:6~9, 대상11:4~7).

다윗이 시온산을 빼앗으니 이는 다윗 성이었다. 다윗이 그 산성에 거하여 다윗 성이라 이름 하고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쌓았다(삼하5:7~9).

다윗은 30세에 왕위에 올라 40년간 통치하던 중 헤브론에서 3년 6개월, 예루살렘(다윗 성)에서 33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다(삼하5:4~5).

예루살렘 성, 다윗 성, 시온 성 이 세 성은 동일한 장소를 의미하기도 하고, 때로는 각기 다른 장소를 가리키기도 하여 혼돈할 수 있다.

구약시대에 다윗 성을 살렘(창14:18, 시76;2), 시온 성(삼하5:7) 또는 예루살렘 성(수10:1)이라 불렀다. 그 후 하스모니아 시대에는 잠깐 성전이 있는 모리아 산만을 다윗 성 또는 시온성이라 하고, 그 외의 성 전체를 예루살렘 성이라 구분하여 불렀다.

주후 4세기경부터는 현재 다윗 무덤이 있는 시온산을 다윗 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는 일반적으로 다윗 성이라고 하면 다윗 시대의 옛 다윗 성을 말하고 시온 성은 예루살렘 성 남서쪽 시온문 밖 시온산을 말한다.
여부스 시대 성벽과 주전 8세기경 유다왕국 성벽이 기혼 샘 서북쪽 언덕 위에 일부 남아 있고 그 높은 지대에 느헤미야가 쌓은 성벽 탑이 있다. 다윗 성은 본래 유일한 물 근원인 기혼 샘이 성 밖에 있으며 성안 실로암 연못으로 물을 끌어들인 히스기야 터널이 있다.



히스기야 터널(Hezekiah’s Tunnel)
옛 다윗 성 동쪽 기드론 골짜기에 있는 샘이 기혼 샘이다. 기혼이란 ‘넘쳐흐르다’라는 뜻이다. 현재 샘 입구에서 층계로 내려가면 물이 솟아 터널을 통해 흐른다. 이 기혼 샘은 솔로몬이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된 곳이다.

솔로몬을 다윗 왕의 노새에 태우고 인도하여 기혼으로 가서 제사장 사독이 성막 가운데서 기름 뿔을 가져다가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으니 이에 양각을 불고 모든 백성이 솔로몬 왕 만세를 불렀다(왕상1:38~39).

기혼 샘물을 남쪽으로 끌어내는 수로가 있었다(사 8:6). 옛 수로는 기드론 골짜기 기슭 성벽 바깥쪽으로 나 있었고 임금의 동산에 물을 대는 데 사용된 수로였다.

히스기야 왕(주전 727~698년)은 아수르 산헤립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대책으로 적에게 성 밖 기혼 샘물의 사용을 거부하고 성 안으로 기혼 샘물을 끌어들여 성이 포위될지라도 장기적으로 물을 사용하도록 기혼 샘에서 실로암 연못까지 터널로 수로를 뚫었다(대하 32:30). 이 수로를 ‘히스기야 터널’이라고 부른다.

물 근원인 기혼 샘에서부터 실로암 연못까지 터널 길이는 533m, 직선거리는 320m이다. 터널은 석공들이 구멍을 뚫는 방식으로 양편에서 서로 만나도록 파 들어가 약 3규빗(약 1.3m)이 남아 있을 때 벽 갈라진 틈으로 상대편 석공의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성공적으로 관통했다.

이 터널을 통과하려면 기혼 샘에서 출발하여 실로암 못까지 걸어서 약 30~40분이 걸리며 반바지를 입고 가벼운 신발을 신고 손전등으로 밝히며 통과할 수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1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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