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116)] 군대 귀신이 터 잡은 어둠의 땅 ‘거라사’ 지역
요르단 편

등록날짜 [ 2018-08-13 14:02:50 ]

로마 시대 발전했던 10개 도시 가운데 하나
‘왕의 대로’ 지나가던 국제무역 도시였지만
여러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 들끓었던 도시

예수님의 이적도 그런 까닭에서 생겨난 듯


윤석전 목사: 거라사는 로마의 헬라 문화가 발달한 풍요롭고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종교가 들어오면서 군대 귀신이 사람을 괴롭히는 악한 역사도 나타났습니다. 당시에는 ‘거라사’, 지금은 ‘제라쉬’라고 부르는 곳으로 가 보겠습니다.

로마 시대에 번영했던 길르앗 산지 계곡에 있는 도시 ‘거라사(Gerasa)’는 ‘왕의 대로’가 지나는 곳으로 국제 무역 중심지였다. 높이 12m나 되는 거대한 기둥들이 남아 있는 아데미 신전의 흔적은 당시 도시의 화려함을 대변한다. 로마의 화려한 문화가 발달했던 국제도시 ‘거라사’는 군대 귀신들이 터를 잡은 어둠의 땅이었다.

<사진설명> [원형 광장] 규모 90X80m 대형 광장으로 동서남북의 교차로에 있다. 넓은 보도와 A.D. 1세기 이오니아 주랑으로 둘러싸인 타원형 광장은 보존이 잘된 상태로 남아 있다. 제라쉬는 로마의 위성도시 데가볼리 중 한 곳으로, 왕의 대로가 지나가 매우 발전했다.

<사진설명> [석주 도로] 지금까지도 전차 바퀴 자국이 남아 있는 800m 규모인 카르도는 제라쉬 건축의 중추이자 핵심이었다. 카르도 전체에 지하 하수도가 설치됐으며, 가장자리에 있는 일정한 구멍들은 빗물을 하수구로 흘려보내는 역할을 했다.

<사진설명> [제우스 신전] 그리스·로마의 최고 신인 제우스의 신전. 지금은 폐허 가운데 유적지로 남아 있다.

윤석전 목사: 제라쉬(Jerash)는 어떤 도시였나요?

오택현 교수: 거라사는 성경에 데가볼리(Decapolis, 열 개의 도시)라고 하는 갈릴리 요단강 동편 지역에 있는 위성도시 열 곳 중 하나로 로마 시대에 매우 발전했습니다. 이곳은 ‘왕의 대로(King’s Highway)’가 지나가는 교역의 중심지였기에 헬라 시대부터 로마 시대까지 크게 발전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제라쉬는 무역과 철광으로 유명했다면서요?

오택현 교수: ‘왕의 대로’에 속한 도시는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져 크게 발전합니다. 거라사는 철광 산지 옆에 있어 철을 생산하고 철 제품을 만들었기에 다른 도시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손꼽히는 부유한 도시로서 갈릴리 주변까지 그 명성이 퍼져 예수님의 이적이 일어났던 ‘거라사’와 상당한 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현재 제라쉬가 성경의 ‘거라사’라고 처음 언급한 인물이 요세푸스라면서요?

우택주 교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A.D. 37~100)는 거라사를 현대 도시 제라쉬라고 말한 첫 인물입니다. 그가 역사를 기록하면서 살펴본 거라사의 로마 시대 동전과 비문(碑文) 등에 ‘신성하고 거룩한 거라사 사람들이 살던 도시’라는 글이 있었기에 거라사를 현대의 제라쉬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제라쉬에서는 거대한 신전에서 이방신을 섬겨서 ‘군대 귀신’ 같은 악한 역사가 일어났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자세히 말씀 해주세요.

오택현 교수: 거라사는 로마 여러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가 들끓었습니다. 로마의 제일 큰 신이라는 제우스 신전, 디오니소스 신전과 아데미여신 신전이 현재까지 있습니다. 또 여러 잡신 신전도 발견됐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셨을 때 그냥 귀신이 아닌 군대 귀신이 들끓는 장소라고 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적도 그런 까닭에 생겨났다고 봅니다.

윤석전 목사: 지금은 로마 시대의 온갖 신전이 부서지고, 그 신들을 섬긴 사람들도 사라졌습니다. 우상숭배의 끝은 폐허만 남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세상 끝날까지 영원할 것이기에 거짓 신과 참신은 역사 속에서 확연히 구별됩니다. 다시 한번 제라쉬로 가 보겠습니다.

로마 시대의 거라사는 반경 5km나 되는 성곽으로 둘러싸일 정도로 번영한 도시였지만 2000년이 지난 지금, 거라사는 돌들의 무거운 침묵만이 자리 잡은 땅이다. 로마 제14대 하드리안 황제(재위 A.D. 117~138)는 거라사의 화려한 전차경기장에 자신의 흔적을 남겨 놓았다. 거라사 주민들은 그 전차경기장으로 모여들어 광적인 흥분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이 어둠의 땅에도 복음의 빛이 들어왔다. 예수께서 거라사 무덤가의 벌거벗은 광인(狂人)을 구원하셨던 것이다.

<사진설명> 요르단 제라쉬 지역에서 ‘성서의 땅을 가다’ 촬영 중인 윤석전 목사.


윤석전 목사: 현대 제라쉬는 성경에 나오는 이적의 장소로는 적합하지 않다는데 왜 그런가요?

우택주 교수: 제라쉬는 갈릴리 바다에서 남동 방향으로 6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어 돼지 떼가 비탈길에서 내몰아쳐 바다에 빠져 몰살했다는 기록과는 합치하기 어렵습니다(막5:1~20;눅8:26~39). 마태복음(8:28~34)에는 ‘가다라(Gadarenes)’라는 지방에서 이와 같은 일이 있었다고 하는데 ‘가다라’는 갈릴리 호수에서 8km가량 떨어져 있는 도시로 돼지 떼가 8km 이상 되는 비탈길을 내달려 몰살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 도시 모두 성경의 이적이 일어난 장소로는 적합하지 않은 면이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학자들은 이적의 장소를 어디로 보나요?

우택주 교수: ‘거르거사’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현대 지명으로 ‘엘쿠르시’인데 갈릴리의 비탈길에 인접한 마을로, 그리스 역사가 유세비우스(A.D. 260~340)가 예수님의 이적이 일어난 곳으로 지목한 장소입니다.

윤석전 목사: ‘제라쉬’를 성경 속 군대 귀신을 내쫓은 장소로 보기에는 물리적인 거리상 합치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직접 따라다니던 제자들이 복음서에 그렇게 썼는데, 이런 부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우택주 교수: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이 세 복음서는 예수님 생전에 따라다녔던 제자들이 쓴 글이긴 하지만, 실제 기록은 예수님 승천하시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 신앙심을 일깨워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쓰였습니다. 그래서 실제 사건과는 30~40년 간격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후대 독자들에게 예수님의 생애를 생생하게 전하려고 당시 유명한 ‘거라사 지방’의 이름을 빌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진설명> (왼쪽)[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 지도] 신약시대 이스라엘의 지역구분을 알 수 있는 지도. 거라사(제라쉬)는 강력한 경제·정치·문화적 도시연합체인 데가볼리의 일원이자 왕의 대로에  있어 막대한 번영을 누렸다. (오른쪽)[성경에 예수님이 군대 귀신을 쫓아낸 곳으로 추정하는 세 군데] 성경에는 2000마리 돼지 떼가 바닷물에 빠져 몰사했다고 했는데, 거라사(제라쉬)는 갈릴리 남동쪽 80km, 가다라는 6km 떨어진 지점이라 성경 내용과 합치하기 어렵다. 거르거사는 갈릴리 바로 옆에 있다.

 


윤석전 목사: 제라쉬는 언제부터 쇠퇴했나요?

오택현 교수: 헬라와 로마 문화를 꽃피운 제라쉬는 630년경 모슬렘이 지배하면서 쇠락의 길을 걷다가 740년 요단강 전체를 강타한 대지진에 도시 전체가 무너지고 사막에 파묻힙니다. 비극적이었지만 모래에 파묻혀 1300년 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기에 20세기 초 제라쉬를 발굴할 때 20만 평 되는 넓은 지역을 완벽히 복구할 수 있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제라쉬에는 어떤 유적이 있나요?


오택현 교수: 제라쉬의 상징은 당시 제라쉬의 위엄을 짐작할 수 있게 긴 거리를 질서 있게 늘어져 있는 석주(石柱), 돌기둥들입니다. 그 주변에 상점들이 들어선 흔적도 보입니다. 또 로마 시대에 만들었지만 오늘날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오·폐수를 완벽하게 처리하는 하수관(下水管)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원형극장도 있습니다. 도시에는 원형극장이 보통 하나씩 있지만, 제라쉬는 워낙 규모가 커서 두 개 있었습니다. 히포드럼이라는 마차경기장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고, 복원 작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제라쉬에 교회 유적은 없었나요?

오택현 교수: 제라쉬에 많은 이방 신전이 있었지만 기독교 문명이 꽃피던 A.D. 4~7세기에 비잔틴 문명이 들어와 제라쉬에 있던 이방 신전들이 교회로 탈바꿈합니다. 디오니소스 신전이 대성당으로 바뀌고, 주변에 있던 신전들엔 유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교회가 들어섭니다. A.D. 6세기에는 이슬람 세력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교회가 사라지고 이슬람 사원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윤석전 목사: 거라사 지역에 예수님이 지나실 때 군대 귀신 들린 자가 쫓아와서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마8:29)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귀신을 묵살하고 사람에게서 내쫓았습니다. 예수님이 베푸신 이적의 의미를 말씀해 주세요.

우택주 교수: 모든 이적의 사건마다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2000마리나 되는 돼지 떼에게 군대 귀신이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시고 그 돼지 떼가 바닷물에 몰살한 이 일은, 하나님의 나라가 눈에 보이게 임한 증거로 귀신을 축출한 사건입니다. 귀신을 쫓아낸 사건은 한 사람의 정신과 육체를 자유롭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인간의 눈에 보이게 나타났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더러운 귀신은 거룩한 하나님 앞에 숨을 수 없고, 하나님의 거룩함은 부정함과 더러움을 치유하고 쫓아내는 권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성도의 삶 속에는 더러운 귀신이 들어올 여지가 없다는 성경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구약에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에게 동정을 베풀지 말고 전멸시키라고 하셨는데 예수님께서는 거라사 같은 이방 지역 선교에 관심을 두셨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우택주 교수: ‘구약과 신약의 내용을 어떻게 조화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신명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방민족과 교제하지 말고 다 죽이라고 말씀하신(신7:1~5) 것은 언약을 맺은 하나님의 백성이 민족적으로 순수하고, 신앙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잘 믿길 바라는 뜻이었습니다. 참이스라엘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님께서는 신앙은 물론이고 민족적 정체성과 순수성을 다 지킨 분이시기에 이방인 선교에 관심을 두고 거라사 지방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어떤 도시 문명보다 귀한 것은 우리 주님을 모시는 일입니다. 물질문명의 호화로움과 찬란한 영광보다 예수를 내 안에 모셔 내 영혼이 복되고, 악한 영에서 자유를 누리는 축복이 여러분의 몫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도여, 거룩합시다. 우리 모두 선하게 삽시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58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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