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139)] 쓴물이 단물로 변한‘마라’와 오아시스 야영지 ‘엘림’
이집트 편(10)

등록날짜 [ 2019-04-11 16:35:42 ]

출애굽 이스라엘, 광야 헤매다 목마르자
하나님께 간구하지 않고 원망부터 시작
모세가 기도하자 쓴물이 단물로 변해
하나님은 광야 인생길에 모든 것을 준비



<사진설명> 성서의 땅을 가다 촬영 차 마라를 방문한 임동진 목사와 윤석전 목사.


윤석전 목사: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은 수르 광야에서 쓴 물이 나는 우물 마라를 만났습니다. 룻기에 따르면,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스스로 ‘마라’라고 칭했습니다. 마라는 ‘고통의 쓴잔을 마셨다’는 뜻으로 남편과 아들을 잃고 온갖 고생을 한 나오미에게 어울리는 표현이었습니다. 이처럼 마라는 성경에서 부정적 의미로 사용됩니다. 쓴물이 단물로 변한 하나님의 축복 현장, 마라로 가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이적을 통해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은 수르 광야에 들어섰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불모지 사막에서 인간은 철저히 무력화된다. 한낮의 태양은 지면을 뜨겁게 달궜고 백성은 갈증에 시달렸다. 사흘을 헤매다 가까스로 도착한 곳이 마라였다. 현재 이곳은, 현대 속에서 과거를 살아가는 베두인의 삶의 공간이며, 관광객에게 기념품을 팔아 생계에 보태고 있다. 사막 태양은 약 3000년 전 이 땅에서 물을 달라고 모세에게 아우성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건너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했으면서도 겨우 찾은 샘물이 쓴맛을 내자 모세를 원망한다.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나무 한 그루를 지시하셨고 그 나무를 물에 던지니 단맛이 나는 물이 났다. 마라의 우물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역사와 애정이 담긴 곳이다.


윤석전 목사: 마라에 가기 전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널 때 바다가 갈라진 길을 마른 땅처럼 걸어갔다고 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요?


권혁승 교수: 애굽 군대와 바다 사이에 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바다를 가르셨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바다를 향하여 손을 내밀게 하자 바다에서 큰 동풍이 불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성경에서 언급되는 동풍은 사우디아라비아 사막 쪽에서 부는 바람을 지칭합니다. 건조한 사막 바람이 바다를 가르고 갯벌을 말렸기 때문에 마른땅처럼 건널 수 있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하나님께서 어떻게든 하나님의 백성을 도우시고 역사하신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사건에서 어떤 메시지를 얻을 수 있나요?


이형원 교수: 홍해에서 일어난 초자연적인 사건은 글을 벗어나 영상으로 생각해 보는 편이 좋습니다. 모세와 함께 애굽에서 탈출해 가나안으로 가던 이스라엘 백성은 앞뒤로 홍해와 애굽 군사에 둘러싸입니다. 이때 이스라엘 진(陣) 앞에서 행하던 하나님의 사자가 이스라엘 진 뒤편으로 움직입니다. 그러자 구름기둥도 이스라엘 진영 뒤에서 애굽 진의 시야를 가려 앞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때맞춰 모세가 지팡이를 홍해로 내밀자 바다가 육지로 변했고,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자 따라 건너려 하던 애굽 군사들이 홍해에 빠져 죽습니다(출14:19~28). 이 과정을 볼 때 자연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을 반드시 위경에서 건지시는 구원자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후 도착한 마라는 어디인가요?


권혁승 교수: 이스라엘 백성이 건넌 홍해로 추정되는 곳은 완전한 바다가 아닌, 일종의 호수이며, 수에즈 운하와 연결돼 있습니다. 홍해 추정지 주변에 갈대밭이 있어 히브리어로는 ‘갈대 바다’라는 뜻의 ‘얌 수프(yam suph)’라고 합니다. 홍해를 건너 바로 마라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홍해에서 3일간 남하해야 마라에 도착합니다.


윤석전 목사: 마라에서 일어난 성경 사건을 소개해주세요.


이형원 교수: 출애굽기 15장에 마라 이야기가 나옵니다. 출애굽 해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이 수르(Shur) 광야에서 사흘 길을 걷는 동안 물을 찾지 못해 목말랐을 때, 오아시스를 발견했습니다. 달려가 마시려 했으나 쓴맛이 나 ‘쓴 것’이란 뜻의 ‘마라(Marah)’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실망한 백성이 모세를 원망하자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지시한 나무를 물에 던졌더니 쓴물이 마시기에 좋은 단물이 됐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우리 삶에도 ‘쓴잔’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쓴잔을 전화위복 되게 하셔서 ‘단잔’으로 바꿔 주시고 축복을 주시기도 합니다. 마라로 다시 가보겠습니다.


시나이 반도 중앙 수르 광야는 ‘성벽’이라는 뜻답게 산들이 성벽처럼 둘러싸고 있다. 그 광야에서 만날 수 있는 마라에는 오래전부터 염소를 방목해 생계를 이어가는 베두인 촌이 있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 선지자 모세를 믿는데, 이곳이 모세의 이동 경로였기 때문이다. 이곳에 ‘아인 무사’, 곧 ‘모세의 샘’이 있다. 이 샘에서 하나님은 쓴물을 단물로 바꾸셨다. 땅속에서 발굴된 우물은 이미 그 기능을 상실했지만, 과거 마라의 샘에서 갈증을 해결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시 이동할 힘을 주었다. 현재 ‘와디 가란델’은 엘림 추정지다. 엘림은 수르 광야와 신광야 사이에 있는 오아시스이며, 샘물 열두 곳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던 천혜의 오아시스로서, 이곳에 이스라엘이 진을 쳤다. 쓴물을 맛 본 이스라엘에 하나님께서는 엘림의 축복을 허락하셨다.


윤석전 목사: 마라 추정지에 가보면 여전히 물맛이 씁니다. 그 지역 물맛이 유독 쓴 이유가 있나요?


권혁승 교수: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마라가 수에즈만 가까이에 있어서 바닷물 소금 성분이 스며들어 물이 쓰지 않을까 추정합니다.


윤석전 목사: 마라 추정지 ‘아인 무사’를 좀 더 자세히 소개해주세요.


이형원 교수: 아인 무사(Ain Musa)는 ‘모세의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홍해를 지나 차로 한 시간 정도 사막 길을 달리면 오아시스, 종려나무(대추야자)가 있는 작은 마을에 도착합니다. 이 지역을 성경 속 ‘마라’라고 추정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마라에서 떠난 이스라엘 백성이 도착한 ‘엘림’은 출애굽 한 백성에게 아주 중요한 지역입니다. 엘림을 자세히 소개해주세요.


권혁승 교수: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해서 처음 접하는 광야가 수르 광야고, 그 남쪽에 신광야가 있습니다. 마라와 엘림은 수르와 신광야 사이에 있습니다. 마라에서 엘림은 그리 멀지 않는데 마라에서 남쪽으로 30km 가면 엘림에 있는 열두 샘과 종려나무 칠십 주와 마주칩니다. 출애굽 한 백성이 광야를 지나면서 오아시스 지역을 거점으로 삼아 움직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마라와 엘림 사건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신앙 교훈은 무엇인가요?


이형원 교수: 하나님께서 마라 쓴물을 단물로 만들어 주신 다음에 출애굽기 15장 27절에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라 같이 인생의 쓴 경험을 할 때 불평하지 않고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종려나무와 오아시스의 엘림이 있는데, 우리는 어리석게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해서 불평해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놓쳐 버릴 때가 많습니다. 쓴물을 많이 경험하는 마라와 같은 인생일지라도, 조금만 더 믿음으로 참고 기다리면 하나님이 주시는 풍요함이 있는 엘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마라에 오아시스 외에 다른 볼거리가 있나요?


권혁승 교수: 사막에는 도시 같은 인공적인 볼거리는 없습니다.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베두인이 살고, 식물들이 자랍니다.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 주변으로 자라는 종려나무는 잎사귀가 넓어 시원한 그늘과 맛있는 과일을 제공해줍니다. 우리는 사막과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예수님이라는 오아시스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합니다.


윤석전 목사: 마라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이형원 교수: 제가 ‘아인 무사’를 방문했을 때 광야를 걸은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했던 경험을 해본다고 좋아했지만, 오후 2~3시에 사막을 걸으니 10분을 넘기자 가져온 물을 다 마시고 결국 끝까지 가지 못하고 모두들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불볕 사막 길을 걷기가 얼마나 고행길인지 경험한 셈이죠.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을까 뼈저리게 느꼈고, 그 광야 길을 사십년 동안이나 불기둥, 구름기둥 같은 여러 역사로 인도하시며 지켜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이 얼마나 위대한지도 새삼 알았습니다.


윤석전 목사: 우리 인생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마라와 같은 쓴잔의 고통이 있으십니까? 염려하지 마시고 그 너머 축복의 땅 엘림과 같은 귀한 내일의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길에도 이스라엘 출애굽 여정처럼 굴곡이 있습니다. 그 굴곡을 잘 넘으셔서 하나님을 만난 이스라엘 백성처럼 축복을 만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1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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