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성서의 땅을 가다’(170)] 로마시대 기독교 박해의 피난처가 된 카파도키아의 동굴교회
터키 편⑻

등록날짜 [ 2019-12-19 13:07:42 ]

자연동굴 많고 인공동굴 파기 쉬운 지형

삼위일체교리 확장 전파된 거점도 이곳

수도원 밀집 괴레메는 경건에만 집중하고

복음 전파는 안 해 터키가 모슬렘 국가로

 

 

윤석전 목사:터키의 역사 대부분은 모슬렘이 장악했습니다. 그 때문에 과거 기독교 역사가 화려하게 펼쳐졌던 장소에 가도 흔적을 찾기 어렵습니다. 현재 카파도키아 지역에는 화산 분출로 만들어진 동굴과 돌산이 있습니다. 또 경건운동의 상징이자 기독교의삼위일체교리를 정리한 수도원들이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가 담긴 카파도키아로 가 보겠습니다.

 

터키 중부 고원지대에 화산 분출물로 만들어진 돌산 카파도키아(Cappadocia)가 있다. 이곳에는 특별한 동굴 식당이 있는데 사암(砂巖)을 깎아 만들었다. 식당 근처 기념품점에서 파는 돌로 만든 다양한 공예품과 그릇이 유명하다. 이것은 척박한 땅에서 삶을 유지하는 도구가 됐다. 카파도키아 중심부로 향하면, 그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파샤바흐가 나온다. ‘요정들의 굴뚝이라는 뜻을 지닌 이곳은 위쪽 응회암(凝灰巖)과 아래쪽 사암이 풍화·침식하면서 만들어졌다. 수천 년간 자연적인 풍화와 침식을 견디며 단단해진 바위는 순례자에게 남다른 소망을 안겨 준다.

 

윤석전 목사:카파도키아의 지리와 역사를 소개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터키 해변은 평야 지대지만, 내륙에 있는 카파도키아는 해발 900~1000m인 고원지대입니다. 남쪽에는다소’(Tarsus)가 있는 길리기아(Cilicia), 서쪽에는 갈라디아(Galatia)와 본도(Pontus), 동쪽에는 유프라테스강이 있습니다. 지리적 이유로 목축업만 할 수 있었던 카파도키아는 산업·역사 면에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화산 폭발로 인해 엄청난 흙이 퇴적되면서 생긴 특이한 모양의 산이 이곳을 유명한 관광지로 만들었습니다. 자연동굴이 많고 인공동굴을 파기 쉬운 이 지형은 기독교 박해 때 피난처 역할을 했습니다.

 

윤석전 목사:카파도키아가 기독교와 어떤 관련이 있나요?

 

홍순화 교수:카파도키아는 성경에 두 번 언급됩니다. 첫째는 베드로가 여러 지방에 있는 교인들에게 편지를 쓸 때 카파도키아에 있는 교인들에게 문안한 구절(벧전1:1), 둘째는 오순절 역사가 일어날 때 예루살렘에 전 세계 유대인이 모였는데 카파도키아에서 온 이들도 있었다(2:9)는 구절입니다. 성경에 언급된 내용을 보면, 카파도키아가 기독교 초기부터 믿는 사람이 있었던 중요한 장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카파도키아는 삼위일체 교리를 정리한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세히 소개해주세요.

 

김선배 교수:성경에삼위일체라는 단어는 없고 개념만 나타나기 때문에 삼위일체 교리를 정립하기까지 신학자들 간에 논쟁과 갈등이 치열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성경을 오해하여 이단으로 정죄된 신학자들도 생겨났습니다. 치열한 논란이 종식되고니케아 종교회의’(A.D.325)에서 삼위일체(三位一體) 교리가 본격적으로 정립됐습니다. 니케아 종교회의에서는하나님의 단일성부터 정립했지만, 카파도키아 신학자들은세 인격(삼위, 三位)이 먼저 존재하시다는 개념에서 설명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삼위일체 교리가 확장되고 전파된 거점이 카파도키아입니다.

 

윤석전 목사:오늘날 우리가 삼위일체를 제대로 알고 믿을 수 있게 돼 감사합니다. 카파도키아의 괴레메 지역에는 동굴교회와 수도원이 많습니다. 지금까지 당시 모습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는 괴레메 지역으로 가 보겠습니다.

 

터키 동부 해발 1000m 고원지대에 위치한 괴레메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 바위를 뚫고 동굴교회를 만든 곳이다. 박해가 끝난 후, 교회 대부분은 경건 생활의 터전인 수도원이 되었다. 괴레메는 부패한 교회를 비판하고 그리스도교 본연의 영적 생활로 돌아가려는 수도원 운동의 진앙(震央)이 됐다. 수도원 입구는 외부에 들키지 않도록 아무 표시가 없고, 내부까지 비좁은 통로가 이어진다. 안으로 들어가면 수도사들이 경전을 연구하고 생활한 넓은 공간이 나온다. 이곳 벽체와 천장에 벽화가 남아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 전 과정을 재현하고 있다. 성상(聖像)파괴운동과 이교도(異敎徒) 때문에 훼손된 벽화들이 순례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운다. 괴레메는 바른 믿음의 나침반이 돼 현대 기독교인들의 남루한 믿음을 성찰하게 한다.

 

윤석전 목사:카파도키아에서 괴레메 지역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홍순화 교수:카파도키아는 800㎢나 되는 넓은 지역이며, 괴레메 외에도 수많은 계곡이 있습니다. 풍광 면에서 보면 젤베 계곡이 훨씬 아름답고 유명하지만, 괴레메는 수도원이 밀집되어 있어 중요합니다. 통계마다 차이가 있지만 전성기에는 수도원이 1000곳가량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자꾸만 은둔신앙을 하여 문제가 생기니까 바실 주교가 모여서 제대로 신앙생활 하도록 수도원을 세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벽화 같은 유물이 남아 있는 교회가 150곳 정도 됩니다. 지금은 30곳 정도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수많은 기독교 유산을 제공해 주어서괴레메 오픈 박물관이라고 집중적으로 홍보해 많은 분이 관광도 하고, 성지순례도 합니다.

 

윤석전 목사:괴레메는 초기 기독교인들의 수도원 운동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데요, 수도원 운동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김선배 교수:수도원은 기독교 박해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박해가 사라진 후에도 수도원은 경건 생활의 중심지로 남았습니다. 왜냐하면 박해가 사라지자 신앙이 나태해지고 세속화하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이런 점을 방지하고 경건 생활을 추구하려고 수도원이 계속 운영된 것이지요.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당시 교회생활이 지나치게 제도화되자 자유롭게 신앙생활 하려고 수도원으로 모여든 경향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런 점은 반성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윤석전 목사:수도원 운동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말씀해 주세요.

 

김선배 교수:수도원 운동의 결과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신앙공동체의 영성생활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둘째, 교리 체계를 확립해서 교회를 이단과 거짓 선지자로부터 지켜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모두 수기로 책을 만들었기 때문에 성서를 소유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성도로서 성서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아는 것이 대단히 중요했지만, 성서를 쉽게 접할 수 없었지요. 그럴 때 수도원에서 성서 교리 체계를 확립했고, 그 결과로 기독교가 유지되는 초석이 됐습니다. 이같이 영성과 지성의 장소로서 수도원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저와 함께 괴레메 지역에 갔을 때 명쾌한 답변을 해 주셨지요. 당시 괴레메 수도원 현장을 바라보신 소감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선배 교수 :그 지역은 한마디로 충격이었습니다. 물론 지형도 완전히 새로운 낯선 세계로 보였지만, 신앙을 위해서 동굴 속에서 이렇게도 살 수 있었구나 싶었지요. 인간의 땀방울, 순교의 피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신앙의 현장이라는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수도원은 경건 생활을 최고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구속적이고, 여가가 없는 생활을 합니다. 그 생활을 돌이켜 볼 때 지금 우리가 얼마나 나태한지 성찰하게 됩니다.

 

윤석전 목사:초기 기독교인들은 수도원에서 은둔하며 핍박과 순교를 피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곳 터키에는 기독교 신자가 거의 없습니다. 수도원이 경건 생활에만 집중하고 복음을 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베드로처럼 환난과 핍박을 뚫고 복음을 전했다면 오늘날 터키는 기독교 국가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목숨이 사라질지라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 피의 공로를 몰라 지옥 가는 영혼이 없도록 우리는 땅끝까지 복음 전도에 힘써야 한다는 것을 수도원 운동을 통해 깨닫습니다. 감사합니다.

 

 

 



터키 편⑻



위 글은 교회신문 <654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

    소셜 로그인

    연세광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