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감전된 설교자 윤석전 목사”
장신대 문성모 총장 월간 『목회』서 설교 평가 눈길

등록날짜 [ 2009-04-14 14:13:07 ]

서울장신대학교 문성모 총장은 월간목회 4월호 ‘한국교회 설교자 연구'에서 윤석전 목사의 설교에 대한 글을 실었다.
문 총장은 이 글에서 “많은 목회자들이 설교를 잘하기 위해 음성교정, 복식호흡, 표정관리 등 설교 향상을 위한 세미나에 참석하고 예화를 잘 사용하고 웃겨야 교인들이 좋아한다는 별의별 세미나가 많지만 윤석전 목사의 설교에는 이런 것이 없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문 총장은 윤 목사를 한마디로 ‘복음에 감전된 설교자’라고 평가했다. 문 총장은 “그는 복음으로 구원받은 확실한 체험으로 설교하며 복음으로 시작해서 복음으로 끝난다"고 전하고 “많은 목회자들이 성경을 ‘오늘 우리 생활에 주는 의미’로 설교할 때, 그는 실제로 질병을 치유하고 주님의 기적을 사실 그 자체로서 설교하며 청중을 조금도 한눈팔지 못하게 압도한다"고 말했다. 월간 『목회』는 목회자들에게 유용한 목회정보와 자료를 공유하고 지난 30년간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 그리고 해외선교사들에게 월간 『목회』 보내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5월호에는 김삼환 목사편이 실릴 예정이다.

/ 황연희 기자

-----------------------------------------------------------------------------------------------------


복음에 감전된 설교

확실한 체험을 통해 오직 복음만 전하는 설교자

음성교정, 복식호흡, 표정관리 등 여러 가지 설교방법론과 설교 향상을 위한 세미나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중생의 체험보다 앞설 수 없다. ‘예수 믿으면 구원, 안 믿으면 멸망’이라는 원색적 복음증거로 청중을 압도하고 있는 윤석전 목사의 설교를 들여다본다.

내가 약을 먹고 나았다!
친구를 따라 병원에 갔다가 우연히 건강검진 결과 암이라는 판정을 받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매우 고민을 하다가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은 대부분의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대신 어떤 사람의 소개로 산에서 나는 약초로 만든 작고 까만 알약을 먹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몸의 약한 부위로부터의 약에 대한 명현 반응이 나타나 몹시 힘들었다. 현기증이 나고 설사가 계속되었다. 그렇지만 약을 믿고 꾸준히 복용하였다. 3개월이 지난 후부터 조금씩 몸에 좋은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자기 몸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1년 6개월 만에 병원에서 암이 완치되었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때부터 이 사람은 자기가 먹고 나은 약에 대한 전도사가 되었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이 약을 선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 약만 먹으면 어떤 암이나 질병도 완치되며 체질도 개선할 수 있다고 열변을 토하면서 사람들을 설득했다.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의 열정적인 강변에 설득당했고 약을 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약값도 비쌌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효과에 비하면 약값이 절대로 비싸지 않다고 주장했고 약값 이상의 결과를 보장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약을 구해서 먹은 사람들로부터 불평이 쏟아졌다. 몸의 약하고 안 좋은 부위에서 나타나는 명현 반응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위가 약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 약만 먹으면 위가 쓰려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한 끼 식사 후 약 두 알을 먹으라는 지시 사항을 이행할 수가 없어서 약을 한 알로 줄였는데도 위가 쓰리고 아파서 결국은 한 달 만에 약 먹는 것을 중단했다. 그리고 그 약을 소개한 이 사람에게 항의했다. 먹지도 못할 약을 왜 속여서 사게 했느냐고 불평했다. 그러나 약을 소개한 이 사람은 도리어 야단을 쳤다. 그 명현 반응을 이기고 적어도 3개월 이상 복용하여야 몸이 회복되는데 그것을 못 참으면 안 된다고 큰소리를 쳤다. 자기도 처음에는 명현반응 때문에 몹시 괴로웠지만 이를 극복하고 암을 이겨 건강해졌다고 경험담을 늘어놓으며 격려했다.
한번은 매스컴에서 이런 약의 위험성을 우려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도 이런 약을 함부로 먹으면 곤란하다는 의사들의 경고가 실렸다. 그러나 약에 대한 그의 신념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 약을 경험하지 못해서 하는 소리라는 것이었다. 그는 의사들이 암을 얼마나 고쳤느냐고 물으며 계속 사람들을 설득했다.
이러는 와중에 그의 어머니가 암이 걸렸다. 형제 중에 의사가 있어 곧바로 어머니를 입원시켜 항암치료를 받게 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반대하였다. 이제 항암치료에 들어가면 어머니는 십중팔구 죽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내가 먹고 나은 약을 어머니에게도 드시게 하여 반드시 암을 고칠 테니까 두고 보라”고 장담하면서 어머니의 항암치료를 막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후 그의 어머니도 거의 정상이 되었다. 이제 이 약에 대한 그의 신념은 신앙이 되었고 아무도 그를 말릴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는 오늘도 약에 대하여 전도하고 있다.

내가 체험한 복음에 대한 확신이 있는가
위의 이야기는 실제 사건을 각색한 것이다. 위의 이야기는 설교하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설교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약 먹고 나은 체험 없이 설교가 가능할 수 있을까? 복음을 듣고 내 영혼이 구원받고 육신의 질병이 낫고 행복해진 것이 체험적 사실이라면 복음에 저항하는 어떤 반대 이론 앞에서도 주눅이 들 수 있을까? 반기독교적 사람들이 교회를 향하여 무작정 돌팔매를 던지고 비난을 하여도 이들을 무마시키려는 타협이나 이들의 이론에 동요되는 일이 조금이라도 생길까? 아무리 포스트모던 사상이 유행하고 『다빈치코드』 같은 책들이 인기를 끌어도 그것이 ‘내가 약을 먹고 나았다’라는 체험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조금 배웠다는 신학자들이나 기독교 엘리트들이 복음을 윤리나 도덕에 희석시켜서 성경의 기적이나 십자가의 의미를 이성적으로 의미 전환하려 한들 그 말에 조금이라도 마음을 빼앗기거나 흔들릴 수 있을까?
우리는 다 약 먹고 나은 사람들이다. 구약과 신약을 먹고 나았으니 약 먹고 나은 사람들이 아닌가? 겁쟁이 베드로가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확실하게 변하여 순교할 때까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전파하는 복음 전도자로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복음을 확실히 체험하고 부활의 주님을 만나 구원받고 중생한 체험만 있다면 무엇이 두렵겠는가? 이러한 확신으로 설교할 수 있다면 설교에 무슨 테크닉이 필요할까? 설교를 위하여 아나운서 앞에서 음성을 교정 받을 이유가 있을까? 복식호흡을 연습하거나 표정관리 또한 의미가 없다. 서론, 본론, 결론 따위의 설교학적 이론 역시 모두 이차적인 수단일 뿐이다. 무슨 무슨 식 설교 등 설교 방법론들은 공허한 말장난처럼 들리게 된다. 요새는 소위 웃기는 설교를 해야 교회가 부흥한다고 한다. 또는 예화를 잘 사용해야 교인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설교를 향상시켜준다는 별의별 세미나도 많다. 이 말 들으면 이렇게 해야 할 것 같고 저 말 들으면 저렇게 하면 잘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실제로 설교 시에 적용하기 쉽지 않다. 아무리 웃기고 예화를 많이 사용하고 세미나에서 배운 대로 설교에 적용해도 교회는 성장하지 않고, 처음 몇 번 색다르다고 느끼던 교인들은 다시 설교에 식상해 하며 감동도 받지 못한다.

윤석전 목사의 설교에는 무엇이 있나
윤석전 목사의 설교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는 설교대회에 나가면 반드시 예선에서 탈락할 설교자이다. 설교학적으로 윤석전 목사의 설교는 건질 것도, 분석할 것도 없다. 그의 설교에는 서론, 본론, 결론도 없다. 윤석전 목사는 그 흔한 예화 하나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소위 유머러스한 면도 없다. 그의 설교를 들으면서 청중이 파안대소한 적이 없다. 설교 중에 찬송은 차마 들을 수 없을 정도의 허스키한 소리에 말 반 노래 반이다.
강단에 서면 그는 초장부터 복음으로 진입하여 특유의 제스처와 음성으로 넓은 강단 위를 휘저으며 열정적으로 설교를 한다. 설교 주제는 제목만 다르지 매일 내용이 똑같다. 예수 믿으면 구원이요, 안 믿으면 멸망이라는 것이다.
예수를 믿어 구원받고, 영생 얻은 사람들이 지옥에 떨어져 영벌에 처할 불신자의 영혼을 보면서 어찌 전도하지 않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육이 구원받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라는 것이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그 능력을 의지할 때 귀신이 떠나가고 질병이 깨끗이 치료되며 근심 걱정의 올무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윤석전 목사는 복음에 감전된 설교자이다. 때문에 그는 약을 먹고 암이 나은 사람처럼 복음으로 구원받은 확실한 체험으로 설교한다. 그리고 ‘당신들도 예수 믿고 구원받아야 나처럼 산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다. 그의 앞에는 어떤 반대 이론도 무력화된다. 성경의 사실을 희석시키는 어떤 신학적 이론이나 철학적 사고도 단연코 거부된다. 그는 작은 키의 소유자이지만 복음을 설교할 때는 거인이 된다. 그는 체중도 적게 나가 왜소해 보이지만 설교할 때는 헤비급 선수가 된다. 그는 무대 체질이 아니라서 수줍음이 많지만 설교할 때는 완전히 청중을 사로잡는다. 그는 예화를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그의 설교 앞에서 조는 사람은 없다. 그는 사람들을 웃기는 재주는 없어도 울리는 실력은 있는 설교자이다. 그의 설교 도중에 수없이 반복되는 ‘할렐루야’에 대하여 청중은 떠나갈 듯한 음성으로 ‘아멘’, ‘아멘’하며 화답한다.
그의 설교는 목소리를 아끼지 않는 설교이며 몸을 돌보지 않는 설교이다. 또한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설교이다. 설교이론에 매이지 않으며 복음이라는 초점으로부터 청중을 조금도 한눈팔지 못하게 하는 설교이자 복음에서 시작하여 시종일관 복음만 외치다가 복음으로 끝나는 설교다. 소위 원색적인 복음을 원한다면 그의 설교를 들어야 한다. 그의 설교는 그야말로 원색이요, 혼합색이 전혀 없다. 그는 이 똑같은 원색적 복음의 내용을 매 주일 설교하면서도 청중이 지루해하지 않고 매 번 새로운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실력이 있는 설교자이다. 그는 원고도 없이 그 긴 설교를 어떻게 매번 감당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자아내게 할 만큼 복음의 실마리를 술술 풀어내는 재주가 있는 설교자이다. 그는 그가 체험하고 전하는 복음 앞에 청중을 꼼짝 못하게 하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설교자이다. 그의 열정적이고 몸을 던지는 설교 앞에서 청중은 마치 성난 파도 앞의 조각배처럼 속수무책으로 설득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그는 가끔 청중을 혼내고 험한 말도 하지만 반항하거나 시험에 드는 성도가 없다.

아직도 복음에 대하여 할 말이 많은 설교자
윤석전 목사는 복음에 대하여 아직도 할 말이 많은 설교자이다. 그는 입만 열면 복음을 더 전해서 한 명이라도 더 구원시켜야 한다는 안타까운 구령 의식에 사로잡힌 설교자이다. 그는 결혼 주례를 하면서도 신랑, 신부를 세워놓고 한 시간 동안이나 예수 잘 믿으라고 설교하는 사람이다. 그는 교수들 앞에서도 다른 유식한 설교를 못하고 오직 원색적인 복음만 전하면서 조금 미안한 표정을 짓는 설교자이다.
복음이 그를 설교자로 만들었다. 그의 설교는 사도행전의 스데반이나 베드로의 설교를 연상시킨다. 그는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복음만을 전하면서 오늘의 연세중앙교회를 이루었고 수많은 목회자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그는 요즘 CBS의 성지 탐방에 대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는 성지를 연구함으로 성경을 더 많이 알고 복음에 대한 역사적이고 과학적인 확증을 얻기 위해서이다.
사실 그의 이 복음적인 설교는 성경을 많이 읽고 묵상하는 데서 형성되었다. 그가 항상 교회 안에서 잠을 자고 금식하면서 기도와 성경 읽기를 숨 쉬듯 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소문이다. 그는 시간만 나면 성경에 몰입하고 성경을 읽는 일을 평생 반복하면서 살아오고 있다. 그는 성경 속에서 주님과의 만남과 구원의 첫 사랑을 지금까지도 순수하고 생생하게 유지시키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가 그의 믿음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성경에 대한 우직스런 믿음이 바로 설교가 되었다. 그는 수없이 성경을 읽으면서 복음의 광맥을 확 뚫어 버렸고 이제 성경 어디를 캐나 복음이 나오는 경지에 이르렀다.

당신의 설교에 복음에 감전된 흔적이 있나
이제 당신의 설교와 윤석전 목사의 설교를 비교해 보라. 당신이 ‘부활의 의미’를 설교할 때 그는 주님의 부활을 ‘내가 체험했다’고 설교한다. 당신이 직설적인 천당과 지옥에 대한 설교를 꺼릴 때 그는 ‘믿으면 천당, 안 믿으면 지옥’이라고 원색적인 설교를 한다. 당신이 성경의 기적 사건을 ‘오늘 우리 생활에 주는 의미’로 설교할 때 그는 실제로 질병을 치유하고 주님의 기적을 사실 그 자체로서 설교한다. 당신이 출애굽 사건에 대하여 홍해인지 갈대 바다인지 확신이 없을 때 그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바다가 갈라졌음을 강변한다. 당신이 칸트(I. Kant)나 카알라일(T. Carlye)에 대한 예화를 들 때 그는 그 시간도 아까워서 ‘예수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원색적인 복음을 전하는 설교를 한마디라도 더 하려고 한다.
이제 설교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라! 나는 죽을 병에 걸렸다가 약 먹고 나은 환자처럼 십자가의 복음으로 죽을 죄인의 상태에서 용서받고, 구원받고 살아난 확신이 있는가? 나는 예수를 믿어서 행복하고 복음 때문에 사는 것이 정말 천국 생활이 되었는가? 나는 성경이 100% 사실로 믿어지고 조금의 의심도 없는가? 나는 성경말씀대로 죽음 후에는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확실히 믿고 있는가? 예수 믿지 않으면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고 천하 사람 중에 예수를 통하지 않으면 구원의 길이 전혀 없는 것(행4:12)을 확신하는가? 이 질문들에 대하여 당신이 확실한 체험과 확신이 있으면 이제 설교하라! 당신의 설교는 청중을 압도할 것이다. 당신의 눈에 불을 켠 확신에 기가 눌려 감히 사람들이 저항하지 못하고 복음을 받아들일 것이다.

<월간 『목회』 4월호 중>

위 글은 교회신문 <156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

    소셜 로그인

    연세광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