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박사가 전하는 구원론] 벽 보고 고행한다고 해서 천국 갈 수 있을까

등록날짜 [ 2013-04-30 10:21:43 ]

어떤 노력으로도 자신의 행위로는 절대 천국 갈 수 없어
오직 우리 죄를 담당하고 피 흘리신 예수를 믿어야 구원

우리 인간은 죄를 짓고는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이든 노력하여 죄에서 자유하려는 의식이 있습니다. 종교가 생긴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대표적 자력 종교인 불교와 구약 율법은 인간 스스로 노력하여 자유를 얻으려 합니다.

그런데 불교에는 사실 구원이 없습니다. 하나님도 없고 구세주도 없고 단순히 가르침만 있는 무신론이기도 합니다. 자기 자신이 부처(佛)가 된다고 하나, 인간 스스로 인간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인간이 만든 최고의 철학이고 인간론의 절정이라 봅니다.

가로막힌 벽 앞에서 구도하는 불교
간단히 말하면 불교(사성제, 四聖諦)는 인간의 고통에서 시작합니다. ①인간의 생로병사는 물론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거나 사별하는 것, 그리고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고 함께 산다는 것 등 삶에 내재한 모든 것을 고통이라고 봅니다(고제, 苦諦). ②그 고통의 원인으로서 인간의 욕심과 욕망을 들고 있습니다(집제, 集諦). ③그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멸함으로써 해탈을 얻는 깨달음의 목표, 곧 이상향인 열반(涅槃) 세계를 추구합니다(멸제, 滅諦). ④이상향인 열반에 도달하는 길(도제, 道諦)로서, 팔정도(八正道)라는 여덟 가지 수행법을 제시합니다.

팔정도는 바르게 보고(正見), 바르게 생각하고(正思惟), 바르게 말하고(正語), 바르게 행동하고(正業), 바른 수단으로 목숨을 유지하고(正命), 바르게 노력하고(正精進), 바른 신념을 지니며(正念), 바르게 마음을 안정시키는(正定) 수행법입니다.

성철 스님도 자신의 노력과 고행 수도의 법으로 구원을 받으려고 8년 동안 한 번도 누워서 자 본 적이 없었고, 16년 동안 그저 솔잎과 생쌀로 연명하며 살았습니다.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암자에서 10년 동안 고행 수도하고, 누더기 옷 한 벌로 살고, 새벽마다 부처께 절을 108번씩 하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도 구원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마치 유언처럼 시 한 편만 달랑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生平欺狂男女群(생평기광남녀군)하니
彌天罪業過須彌(미천죄업과수미)라
活陷阿鼻恨萬端(활함아비한만단)이여
一輪吐紅掛碧山(일륜토홍괘벽산)이라.

평생토록 나는 남녀 무리의 사람들을 속여 왔고
그래서 내가 지은 죄가 하늘에 미쳐 수미산보다도 더 높도다
산 채로 지옥으로 떨어지니 그 한이 천 갈래 만 갈래나 된다
한 덩이 붉은 해가 푸른 산자락에 걸렸구나

그렇습니다. 결국 그는 구원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우리 인간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성철 스님같이 그런 생활을 하고 그런 고통을 당하여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면 저는 절대로 구원을 못 얻을 것 같습니다. 그런 고행을 견딜 사람이 못 되니까요. 그런데 제가 그분을 30분만 만났으면 그분의 깨달음을 뛰어넘는 시로 마무리했을 것인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를 그분이 알지 못 한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의 피 공로로
기독교는 인간 구원에 관하여 분명한 대답을 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엡2:8)이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내가 노력하여 어떤 수준에 도달하거나, 물질을 바쳐서 얻는 것이 아니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그 선물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인류의 무서운 죄, 바로 우리의 모든 죄를 전부 옮겨 받으시고 그 죄에 눌려 땀방울이 핏방울로 바뀌는 고통, 무서운 죄의 무게를 느끼셨습니다. 그 기도가 얼마나 처절하였던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되더라”(눅22:44)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천사까지 내려와 예수 그리스도를 격려하고 응원했습니다(눅22:43).

겟세마네에서 땀과 눈물과 핏방울이 범벅된 주님의 기도는 인류가 범한 죄악의 무게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 줍니다. 그리고 우리 인류의 죄를 넘겨받으신 주님은 그때부터 죄인 취급을 받게 됩니다. 그 이전에는 주님이 죄인으로 취급받으신 적이 없습니다. 이때부터 주님은 완전히 죄악을 뒤집어쓴 죄인 취급을 받습니다. 때마침 예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가 체포 병력을 이끌고 옵니다. 이제 포승줄에 묶이고 채찍에 맞고 더러운 침 뱉음을 당하고 모욕적인 욕을 먹고 재판을 받기 시작합니다. 죄인에게 주어지는 사형선고를 받고 십자가를 지고 그 죄의 대가를 치릅니다.

피 값을 치를 만큼 존귀한 존재라
어린양이 사람의 죄를 뒤집어쓰고 처절하게 죽어 죗값을 치르는 것처럼, 우리 인류의 모든 죄를 전부 위임, 전가받은 주님도 그 죄에 대한 심판을 십자가에서 다 받으셨습니다.

이 겟세마네의 기도로 주님은 그 죄의 형벌과 그 죄의 대가인 죽음을 당하시려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하게 하는 제물로서 죄의 대가를 치르고, 대속 제물로 죄인이 받을 모든 심판을 다 받는 무서운 형벌을 홀로 받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 부어진 하나님의 진노는 아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죄인인 우리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그렇게 버림받음으로 우리가 용서를 얻었고, 예수께서 고난당함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죄와 사망에서 자유를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죄인인 내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사랑받을 만한 가치 없는 쓰레기 같은 나를 살리시고자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께서 대신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나를 살리고 예수께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값을 지불해서라도, 독생자를 대속제물로 십자가에 매달아서라도 구원해 주셨기에 존귀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최종진 교수
전 서울신학대학교 총장
현 성북교회 담임목사

위 글은 교회신문 <33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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