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설립 24주년 기념] 60평 지하, 그 곰팡내 나는 곳에서 이뤄진 열정
연세중앙교회 개척은 이렇게 시작됐다

등록날짜 [ 2010-03-17 09:38:55 ]

죽음 각오한 기도 후 신학생 신분으로 교회 개척
매일철야기도로 하나님께 간구…부흥의 초석 마련



지금으로부터 24년 전, 연세중앙교회의 개척은 어떻게 이뤄졌을까. 당시 윤석전 목사의 심정은 어떠했으며, 개척을 위해 어떤 기도를 했을까. 또한 개척교회 당시 어려움은 없었을까. 24년 전 연세중앙교회로 돌아가 당시의 절박하고 뜨거웠던 시간을 추억해봤다. <편집자>


 설립 1주년을 맞아 윤석전 전도사의 목사안수례가 거행됐다.

30대 후반의 나이로 신학교에 입학한 윤석전 목사(당시 전도사)는 늦은 나이지만 열심히 학업에 매진한다. 하지만 계속적인 질병으로 더 이상 학업을 계속 할 수 없던 윤 전도사는 삼각산에서 110일 동안 기도하며 죽음의 고통을 이겨낸다. 이 기간 동안 윤 전도사는 더 큰 영력을 가지게 됐고, 확실한 목회의 비전을 가지게 된다. 

이후 윤 전도사는 신학교 2학년 공부를 시작한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온 지 6개월 후에 교회 개척의 감동을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신학교 3학년 학생인 윤 전도사에게 교회를 개척하라는 사명을 주셨던 것이다. 그 때부터 교회 개척을 위한 기도가 시작됐다.

▲영감과 영력을 주세요 ▲주의 심정을 주세요 ▲순종할 일꾼을 주세요 ▲물질을 지배할 능력을 주세요 ▲개척할 좋은 장소를 주세요
이 다섯 가지를  집중적으로 기도한 후 드디어, 가족들과 친지들 10여 명이 1986년 3월 15일에 연세중앙교회 간판을 걸고 교회를 시작했다. 이후 10여 명의 개척 교인이 수만 명의 교인으로 늘어나고 60평 지하건물이 오늘날 2만평 이상 규모의 건물이 될 줄은 하나님만 아셨으리라. 사람의 힘이나 윤 전도사의 생각으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으로 시작된 교회가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로 우뚝 선 것이다.

개척 당시의 어려움
윤석전 전도사에게 개척할 좋은 장소는 바로 마음껏 부르짖어 기도해도 전혀 방해받지 않는 곳이었다. 그렇게 기도한 대로 연세대학교 후문 근처에 60평 규모의 지하실을 얻게 되었는데, 정말 큰 소리로 기도하고 맘껏 찬양함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하실 교회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비만 오면 침수가 되고 벽에서, 천장에서, 지하실 입구에서 물이 흘러나오는데 도저히 예배를 드릴 수 없을 정도로 심했다. 비가 오는 날은 교인들이 물을 퍼내느라고 예배를 드릴 수 없었고 물론 설교도 할 수 없었다.

지하실은 습기로 인하여 곰팡내가 나고 교인들은 앉아서 예배도 드리지 못하고 숨쉬기조차 곤란했던 적도 있었다. 피아노에도 물이 차서 고장이 나고 마이크도 전기 누전으로 소리가 안 나오고 어떤 때는 전기불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런 장소에서는 밤새도록 기도할 수도 없었으며 건강한 사람도 괴로울 정도로 지장이 많았다.

지하실의 썩은 냄새로 등록한 교인마저도 몇 주를 나오다 소리없이 교회를 떠났다. 심방을 하면 “전도사님, 교회의 모든 것은 다 마음에 들고 전도사님과 일생을 같이 신앙생활하고 싶지만 냄새가 나서 도저히 예배를 드릴 수가 없고 교회만 갔다 오면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뛰고 먹는 것도 소화가 안되고 건강한 몸도 병이 오는 것 같아서 장소를 옮기기 전에는 교회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담임교역자로서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이러한 고통을 감수하면서 4년 동안 이 건물에서 예배를 드렸다. 1년만 지나면 교인으로 꽉 찰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4년이 지나서야 주일 1부, 2부 예배를 드리다 망원동 200평 건물을 장만해 이전한다.

 
 연세중앙교회 개척 당시 연희동 성전 내부. 이곳에서의 매일철야기도는 교회 부흥을 위한
 
매일디딤돌이 됐다.

철야기도의 시작과 열기
교회 개척한 날부터 윤 전도사 부부는 철야기도를 시작했다. 삼각산에서 1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밤낮 산에서 기도하던 습관이 몸에 배어 꿇어 엎드려 기도하지 않으면 마음으로 죄짓는 것 같고 허전한 마음을 달랠 수 없었기 때문에 개척교회 시작한 날부터 저녁밥을 먹으면 바로 교회에 나가 새벽까지 엎드려 기도했다. 교회를 개척하면서 기도할 제목이 많았기 때문에 매일매일을 열심히 기도함으로 기도하러 오는 교인이 하나 둘 생기면서 10명, 20명으로 숫자가 늘어났다. 한 두달 정도는 무조건 기도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새벽 4시까지 계속하다가 시간이 되면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윤 전도사는 기도하러 온 사람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무조건 전도사 부부가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기도하고 싶은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 들었던 것이다. 한번은 기도하러 온 사람들이 윤 전도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밤새도록 기도하기는 너무 힘드니 5분씩 성경말씀을 읽고 기도제목을 주시면 기도하기에 좋겠습니다.”
이후 한 달 정도 5~10여 분 동안 성경말씀을 읽고 제목을 만들어 기도했다. 그러던 것이 점점 시간이 늘어나면서 한 시간 동안 말씀을 증거하게 됐다. 1년이 지나니 철야기도하러 오는 숫자가 100명까지 됐다.

이 매일철야기도는 망원동, 노량진 성전 시절은 물론, 궁동 성전으로 이전한 후에도 계속됐으며, 철야기도 시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은 교인들의 영적 성장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부흥의 초석을 이룬 위대한 사건이었다.                         

위 글은 교회신문 <18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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