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교회 역사 이야기<14>] 무너지는 로마, 추락하는 기독교

등록날짜 [ 2011-08-16 13:20:42 ]

야만족 침공으로 서로마 제국 멸망
동로마는 이슬람교 침략에 무너져

로마 교회 감독 레오의 ‘톰’은 기독교 신학 형성에 적잖게 이바지했다. 그러나 로마의 시민은 신학보다 생존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다. 레오는 야만족에게 용감히 맞서서 로마 시민에게 존경과 찬사를 받았다.

흔들리는 서방제국
452년, 훈족 아틸라가 이탈리아를 공격했다. 훈족은 거침없이 로마로 진격했다. 황제도, 군대도, 아무도 그들을 막지 못했다. 그러나 로마 교회 감독 레오는 야만족들이 로마로 진격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다. 그는 로마로 향하는 길목에서 아틸라를 만났고, 마침내 그를 설득하여 돌려보냈다.

그런데 455년에 ‘반달족’이라는 또 다른 야만족이 로마를 침공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레오도 그들을 돌려보내지 못했다. 하지만 레오는 그들을 설득하여 살인과 강간만은 하지 못하게 했다. 대신 그들은 로마를 약탈했고 도시 전체를 파괴했다.

그리고 마침내 476년, ‘오도아케르’라는 또 다른 야만인이 서방제국 마지막 황제 자리마저 찬탈했다. 이로써 서방제국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서로마 제국의 멸망) 동로마 제국만 남았다.

중앙정부가 없는 땅, 경찰이 없는 도시, 다닐 학교가 없는 아이들을 상상해보라. 중세 시대 초기 서방제국의 상태가 바로 그랬다. 당시에는 화폐를 주조할 중앙정부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토지가 부(富)의 주요 매개체였다. 그래서 영주들은 최대한 넓은 장원(莊園)을 장악했고, 그것을 지키려고 기마(騎馬) 기사들을 양성했다. 어떤 지역에서는 몇몇 영주가 한 사람을 왕으로 옹립하고 기사들을 그 밑에 두기도 했다.

한편, 농민들은 토지가 없었기에 의식주와 기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다. 농부들은 식량과 거주지와 안전을 확보하려고 영주의 농노(農奴)로 들어갔고, 영주가 배당하는 농토를 경작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생존에 필요한 식량을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중세 ‘봉건’제도였다.

또 영주들은 성직자에게 월급을 주고 농노들을 돌보게 했다. 불행하게도 왕과 영주가 성직자를 택했기 때문에 성직자들은 하늘의 아버지께 순종하기보다 세상 영주들에게 순종하는 것을 더 중요히 여기게 되었다.

글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성직자들은 글을 모르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가르치려고 조각과 스테인드글라스 그림과 연극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양한 구조물들과 형상들이 전파된 말씀과 기록된 말씀을 대체하면서 마음 판에 새겨진 성경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교회 건물까지 신성시되었다.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동방
동방제국 역시 질서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단, 봉건제도를 취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그들의 노력은 서방제국과 마찬가지로 신통찮게 끝나고 말았다. 더욱이 동방제국은 7세기경에 남쪽에서 불어온 강력한 ‘폭풍’(이슬람교)에 거의 무릎을 꿇고 말았다.

아라비아에 있는 작은 무역항 메카라는 곳에 마호메트라는 남자가 살고 있었다. 610년, 그는 천사 가브리엘이 알라(유일하게 참되신 하나님이라는 뜻)의 메시지를 자기에게 맡겼다고 주장했다. 마호메트는 모세와 마찬가지로 우상숭배에 반대하는 설교를 했다. 622년에 그는 성난 우상숭배자들을 피해 멀리 도망쳐야 했다. 그러나 얼마 후 다시 메카로 돌아왔고, 추종자들을 규합했다. 그는 자신을 추종하는 자들을 ‘모슬렘’(Moslem, ‘알라에게 복종하는 자들’이라는 의미)이라 불렀고, 그들의 종교는 ‘이슬람’(Islam, ‘복종’이라는 의미)으로 알려졌다.

마호메트가 죽은 후 그의 추종자들은 아라비아 시리아와 북아프리카를 차례로 정복했다. 638년에는 예루살렘을 정복했고, 711년에는 포르투갈과 스페인마저 정복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슬람교도들이 이처럼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약진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슬람교도들은 다른 종교를 믿는 자들에게도 일정한 자유를 허락했다. 물론 그들은 크리스천들에게 독특한 옷을 입히고 무거운 세금을 부과했고, 또 어떤 지역에서는 크리스천들에게 무거운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니게 했다. 그러나 초기 이슬람교도들은 경전을 지닌 모든 종교를 보호했다.

단성론(單性論)을 믿는다는 이유로 배척당하던 수많은 북아프리카 크리스천(특히 콥트교도라고 알려진 이집트 크리스천)은 자진하여 자신들의 교회를 이슬람 사원으로 바꾸었다. <계속>

<사진설명> 오도아케르에게 무릎꿇는 로마의 마지막 황제

 

위 글은 교회신문 <25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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