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4돌 한글날을 맞아] 기독교, 한글 보급에 크게 공헌

등록날짜 [ 2010-10-10 21:19:24 ]

일제강점기에도 한글 사용한 공동체는 교회
기독교 소설 출간 등 근대문학 생성에 기여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세종대왕의 한글 반포를 기념하고 한글 연구.보급을 장려하려고 한글학회가 정한 날이다.
세종 때 만들어진 훈민정음은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이처럼 한글이 세계적인 문자로 인정받는 데 기독교의 역할이 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446년에 반포한 훈민정음은 소리 나는 대로 쓸 수 있어 한문보다 훨씬 익히기 쉬웠다. 하지만 당시에 양반들은 여전히 한자만을 사용하였고, 훈민정음을 천민이나 부녀자들이 사용하는 언문, 즉 상스러운 말로 천대했다. 세종이 죽은 이후에는 한글 보급 사업을 주로 맡던 언문청을 폐지했다. 

17세기 초, 조선에 전래한 천주교는 한문을 읽을 수 없는 신자들을 위해 교리서, 기도서 등을 우리말로 번역하거나 기록해서 보급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한글이 백성에게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한글 보급 운동을 통해서다. 그 중심에 한국 기독교가 있었다.

한글 보급 일등 공신-성경
한글 성경 보급은 1882년 최초 한글 성경인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가 영국 장로교 선교사 존 로스와 조선 청년들에 의해 중국 만주에서 출간되었다. 로스와 조선인들은 그 후 계속해서 신약성경을 번역했고, 1887년 신약 전체를 완간하여 『예수셩교젼셔』<사진>를 출판했다. 로스 일행이 번역한 성경은 한국인 권서(勸書·성경을 등에 지고 방방곡곡을 다니며 보급하던 사람)나 전도인들에 의해 만주와 조선 평안도 일대로 몰래 배포됐다. 그리고 1885년 일본 유학생 이수정이 우리말로 번역한 『신약마가젼복음셔언해』를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복음 선교사로 조선에 입국할 때 가지고 들어왔다.

이후 국내에서 1900년 『신약젼셔』, 1911년에 『구약젼셔』를 완역하였으며, 신구약을 묶어 『성경젼셔』로 간행했다. 성서번역은 아펜젤러, 언더우드, 스크랜톤 등 선교사들이 주도하였으며, 성경을 번역할 때 무식한 사람들까지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문체로 번역하고자 노력했다. 방대한 분량의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해낸 사실은 유교 봉건체제 속에서 소외됐던 한글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한글문화를 창출하는 데도 크게 공헌했다.

신문화의 주축-기독교 출판
1885년부터 ‘배재학당’ ‘경신학교’ ‘이화학당’ 등 기독교 학교가 설립되었고, 복음을 받아들인 기독교인 한글학자들이 탄생하였다. 대표적인 한글학자들이 주시경, 김윤경, 최현배 등이다. 특히 주시경은 1908년에 한글학회 전신인 ‘국어연구학회’를 창립하였으며 한글의 기틀을 세웠다.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을 설립하여 교육 활동을 왕성하게 펼치는 동시에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도 전력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문서 선교의 중요성을 깨닫고 1889년 배재학당 내에 삼문출판사를 설립하여 신문, 잡지 등 정기 간행물과 성경, 찬송가 등 기독교 관련 출판물, 일반 서적과 교과서, 그리고 서재필의 <독립신문>을 인쇄했다. 1893년 기독교는 발행하는 모든 문서에 ‘한글 전용’ 원칙을 채택했으며, 우리나라 최초 기독교신문인 <죠션크리스도인회보>와 <그리스도신문>은 한글 전용 및 한글 대중화에 상당한 이바지를 하였다.

한국 최초의 기독교 번역소설인 『텬로력뎡』(영국 근대문학의 효시로 꼽히고 있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선교사 제임스 게일이 우리말로 번역함)은 개화기에 성경 보급과 더불어 『몽조』 『다정다한』 『성산명경』 등 20여 편이 넘는 기독교 소설의 출판을 불러왔으며, 한국 근대문학을 생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복음과 함께 활발해진 한글 보급
한글 보급 운동은 박해가 심했던 일제강점기에도 기독교를 통해 활발히 이어졌다. 일제강점기 식민정책은 학교에서 한글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고 한글 사용을 하지 못하도록 강제로 핍박하였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한글을 사용한 공동체는 교회였다. 교회는 성경을 읽게 하려고 한글을 가르치는 등 문맹 퇴치 역할을 했다. 이로써 기독 신자는 누구나 쉽게 한글을 깨우쳐 성경과 기독교 서적을 읽게 됐다. 한국 사회에 복음과 함께 자연스럽게 한글 보급이 이루어진 것이다. 특히 1938년에 간행된 <셩경젼셔 개역>은 고어체가 나타나기는 하지만 현재 표준어에 가까운 어휘와 표현으로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1945년 8.15 민족 해방과 함께 기독교 신앙과 한글 사용의 자유를 얻게 됐다. 이처럼 기독교는 천대받던 한글을 재발견하고 한글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한글 성경이 번역되어 국내에 보급된 지 128년이 지난 올해까지 국내 성경 보급 누계는 4000만 부를 돌파했으며, 이제 한글 성경은 해외선교와 함께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현경섭 기자

성경이 한글로 쓰이기까지

현대 한글성경은 약 2500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

BC 450년경 구약 정경 확정
1961년 <개역한글판> 출간

성경은 BC 1500년경 모세 이후 구전되다가 어느 시점부터 돌이나 짐승의 가죽, 파피루스 등에 문자로 쓰이기 시작해서 AD 100년경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아 쓴 사도 요한의 요한계시록을 끝으로 무려 1600년에 걸쳐 완성됐다.

성경은 처음부터 책 형태로 묶여 있던 것이 아니라 두루마리 형식으로 각 권이 따로 나뉘어 있었다. 그러다가 AD 1세기에 지금 책 형태와 유사한 코덱스(codex, 양피지에 필사한 책 형태)가 발명됨에 따라 책으로 선보였고 AD 4세기에 보편화하였다.

이 방대한 기록은 서로 다른 시대, 다른 환경과 지역에서 모세를 비롯한 40여 명의 기자(記者)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를 기록한 것으로서 히브리어와 아람어, 그리스어로 쓰였다.

구약성경의 정경화
두루마리 형식으로 각 권이 따로 존재한 문서들 중 ‘모세5경’(창세기~신명기)이 가장 먼저 권위를 인정받았고(에스라시대, BC 450년경), 다음으로 예언서가 정경(正經, Canon)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BC 2세기경). 마지막으로 모세5경과 예언서들을 제외한 나머지 책들은 AD 90년경, 팔레스타인의 얌니야(Jamina)에 모인 유대 랍비 회의(얌니야 종교회의)에서 정경 범위(39권)를 확정하고 다른 책은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의해 구약성경 목록을 확정했다.

신약성경의 정경화
예수 사건 이후 그리스도교 복음은 초기에 구전을 통하여 전파하여 구약 역사와 예언에 비추어 해석하였고(고전15:3~4), AD 90년 얌니야 종교회의에서 구약 목록을 확정할 쯤에는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에 대한 구전이 글로 기록되어 신약 서신서들이 거의 다 쓰였고 복음서가 완성되었다.

이 당시 신약성경 각 책은 하나의 완성된 책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각기 개별적으로 교회 내에서 읽히며 교훈과 가르침의 표준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이단과 위서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교회에서는 정경을 확정할 필요가 제기되었고 2세기 교회들은 어떤 문서에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 있는지 선별해야만 했다.

그 뒤 100여 년 동안 교부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어떤 문서를 선택할 것인지 논의했다. 논의의 내용은 문서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지, 신학적으로 바른지, 그리고 그곳에 기재되어 있는 사실이 정확한지 등에 관한 것이었다. 4세기 중반에 이러한 논의는 끝을 맺는데, 어떤 문서를 성경에 넣고 어떤 것을 제외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397년에 아프리카 카르타고 공회에서 지금의 신약성경을 구성하는 27권을 정경으로 채택하였다.

성경 번역 역사와 우리말 성경
성경은 3세기까지 대개 그리스어 구약성경(70인 역)이나 히브리어판 구약성경, 신약은 그리스어로 쓰인 채 통용되었다. 그러다 AD 385~405년 사이에 라틴어로 번역된 성경이 완성됐고, 종교개혁을 주도한 루터를 통해 독일어로 번역되며 당시 발달하기 시작한 인쇄술 덕분에 일반 대중은 성경을 더욱 가까이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성경이 우리말로 번역돼 출판된 것은 1882년부터다. 최초 한글 번역 성경은 스코틀랜드 연합 장로교회 선교사인 로스(John Ross) 목사를 중심으로 매킨타이어(John MCIntyre),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 이성하 등이 한문 성경을 한글로 번역한 낱권으로 된 신약 성경이다. 이들에 의해 신약   낱권 27권 또는 몇몇 낱권 합본으로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1882), 『예수셩교요안나복음젼셔』(1882), 『예수셩교누가복음뎨쟈행   』(1883), 『예수셩교셩셔말코복음』(1884) 등이 출판되었고, 1887년에는 우리말로 번역한 최초 완역 신약 『예수셩교젼셔』가 출판되었다.

특별히 1911년은 성서공회가 신.구약 성경을 완역해 낸 해로서 우리말 성경 번역사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해였다. 성서공회는 우리말 변천과 성서학의 급속한 발달로 그 동안 서둘러 번역한 우리말 성경 구역(舊譯)의 본격적인 개역 작업을 시행하였다. 이 개역 작업의 결과로 1936년에는 『구약 개역』을 출판하였고, 1938년에는 『신약젼셔 개역』을 출판하였으며, 같은 해에 『셩경젼서 개역』을 내어 놓았다.

1952년에는 『셩경젼셔 개역』의 개역판인 『성경전서 개역한글판』이 출판되었다. 성경에 한글판이라는 이름은 이때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옛 철자법 성경과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따르는 새 철자법을 구별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이후 성경 연구 및 관련 학문들의 발전으로 인하여 『성경전서 개역한글판』은 1956년부터 다시 한번 번역 내용과 표기법 등의 수정 편집을 거쳐서 마침내 1961년에 최종판으로 출판되었다.

한국 교회는 지금까지 1961년에 출간한 『성경전서 개역한글판』을 주로 사용해 왔다. 개역한글판 성경은 현재 한국교회에 두루 퍼져 있는 성경이며, 지금 우리 교회도 이 개역한글판 성경을 사용하고 있다.  정재형 편집장

위 글은 교회신문 <21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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