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교회 역사 이야기 <4>] 교회를 위협한 영지주의 사상

등록날짜 [ 2011-05-24 14:30:12 ]

1세기에 ‘장로’와 ‘감독’은 같은 역할을 지칭하는 이름이었다. 모든 교회는 장로들이 이끌었고, 크리스천들은 집에서 모였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할 때마다 그들에게 침례를 베풀었다.

3세기 무렵, 크리스천들은 지방적 차원을 넘어 자체로 조직화하였다. 대부분 도시에서 감독(장로) 한 사람이 다른 장로들을 지도했고, 가정에 모이던 신자들도 건물, 즉 예배당을 가졌으며 새신자들은 3년이라는 훈련 기간을 거쳐야 비로소 침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던 교회 구조가 왜 이렇게 변한 것일까? AD 200년을 지나면서 기독교를 왜곡한 변형, 즉 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라고 알려진 비밀 지식 운동이 출현하여 교회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영지주의에 대항하여 그리스도의 진리를 보존하고, 일반 크리스천들이 영지주의 세계관에 대항하도록 도우려면 강력한 감독, 통일한 집회장소, 신중한 훈련과정이 필요했다.

영지주의자들은 무엇을 믿었나
영지주의자들은 물질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은 무엇이든 다 사악하며 오직 영적인 것만이 순수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특정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지식을 소유할 수 있으며, 이 지식이 그들을 평범한 인간 세상 너머 더 높은 세상으로 데려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육체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들을 모두 혐오했으므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는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도 거부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절대 육신이 된 적이 없으며, 그리스도는 단지 예수라는 평범한 인간의 몸을 일시적으로 소유한 영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진정한 인간이 되셨다고 계속 단언했다. 심지어 바울은 육체로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라고 크리스천들에게 명령했다(고전6:19~20). 이는 영지주의자들에게 불가능한 요구였다. 바울은 왜 그런 명령을 한 것일까? 크리스천들에게 구원이란 육의 세계를 떠나 영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두 세계를 하나로 통일하고 회복하는 ‘소생’의 의미를 뜻하기 때문이다.

한편, 1세기 후반에 발생한 자연재해로 로마 제국 전체가 흔들렸다. AD 79년에는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하루아침에 폼페이가 사라졌고, 80년대 중반에는 제국 전역에 전염병이 창궐해 매일 1만 명 이상 목숨을 잃었다. 재난과 죽음이 일상인 상황에서 많은 사람은 물질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을 온통 거부하는 영지주의에 더욱 마음을 빼앗겼다.

영지주의 퍼트린 말시온
영지주의의 유력한 분파 하나는 어느 설교자 아들에게서 시작한다. 그는 말시온(Marcion)으로 그의 아버지는 흑해 남부 연안의 감독이었다. 말시온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목회자가 되는 대신 선주(船主)가 되어 여러 곳을 여행했다. 여행하는 동안 육체적인 것들을 혐오하게 되었는데도, 그는 육체적 욕망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AD 140년경, 그는 아버지가 시무(始務)하는 교회의 젊은 여성 한 명과 성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그는 회개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교회에서 추방했다. 말시온은 그 길로 로마로 도망쳤다. 로마에 있는 교회들이 그의 죄를 알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의 계산대로 로마교회는 부유한 선주를 선뜻 받아주었다. 아마 그가 바친 거액의 헌금이 상당한 작용을 했을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생각을 다듬고 체계화했다.

말시온은 다른 영지주의자들처럼 영적인 비밀을 얻고자 성경을 탐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사상 대부분을 영지주의 세계관에서 빌려 왔다. 말시온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는 구약에 드러난 물질세계를 창조한 하나님, 진노의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사랑이 충만하신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혹자의 육체를 부활하게 하거나 누구를 육체적으로 징벌할 리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구세주가 하나의 영에 지나지 않는다고 간단히 정리해버렸다. 그는 그리스도가 인간처럼 보일 뿐이지 진짜 인간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나중에 이 사상은 가현설(假現設)로 알려진다.

말시온의 추종자들은 세상이 악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욕망과 욕구를 부정했다. 그들은 주의 만찬을 거행할 때도 물만 마셨다. 포도주가 육체적 쾌락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또 그들은 성적 접촉을 일절 금했으며 심지어 부부의 성관계도 금했다.

특히 말시온은 누가복음에서 그리스도의 탄생 이야기를 삭제했고, 바울 서신에서도 구약성경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없애버렸다. 신약에서 구약의 하나님을 완전히 추방해버린 것이다.

말시온 자신은 새로 만든 신약성경에 만족했을지 모르지만 로마교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AD 144년, 로마교회는 말시온이 바친 거액의 헌금을 되돌려주었다. 폴리갑을 비롯한 몇몇 크리스천은 말시온이 거짓 가르침에서 돌이켜 옳은 길로 돌아오게 하려고 무척 노력했으나 그는 끝내 이단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로마교회는 그를 출교하기로 결의했고, 교회에서 쫓겨난 말시온은 이탈리아와 소아시아에 자신의 교회를 세워 로마교회에 대항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4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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