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신임 서리집사 소감] 믿음의 스케줄 우선하며 섬기리 外

등록날짜 [ 2015-01-06 11:26:47 ]

믿음의 스케줄 우선하며 섬기리

강영재 집사(36남전도회)

 

어릴 적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하나님을 만난 체험은 없었습니다. 연세중앙교회에 먼저 다니던 친누나들이 권유해 2001년 성전 근처로 이사했고, 흰돌산수양관 청년성회에서 하나님을 만나 매우 깊은 감동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성령으로 절절히 깨달았습니다. 그 후 청년회에서 부장으로 충성하다 실수를 범하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올해 신임집사 임명을 받을 때 ‘과연 내게 그런 자격이 있나?’ 돌아보았습니다. 이제껏 한 신앙생활과 충성에 제가 한 일은 없습니다. 오직 주님이 주신 생명의 힘으로 감당했습니다. 집사 직분도 주님께서 할 힘을 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순종하려 합니다.

 

남전도회에 오니 청년회와는 여러모로 다릅니다. 신앙생활을 중심으로 가정생활을 조화롭게 해 나가야 합니다. 올해는 교회에서 정한 믿음의 스케줄을 우선하여 영혼 섬기는 일에 마음을 쏟으려 합니다. 현재 고등부 교사로 학생들을 섬깁니다. 맡겨 주신 한 영혼도 지옥 가지 않도록 기도하며 교사 직분을 잘 감당하려 합니다.


기도하며 직분 감당할 터

최성호 집사(34남전도회)

 

군 전역 무렵인 10여 년 전, 올림픽경기장에서 열린 부활절 행사에 초청받았습니다. 당시 연세중앙교회 윤석전 목사님이 부활절 행사 대회장이셨습니다. 지금은 제 아내가 된 연세중앙교회 자매가 동네 후배를 그 행사에 초청했는데 저도 덩달아 따라갔다가 예수를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섬겨 주는 재미에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차츰 하나님 말씀이 심령이 젖었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이 생겼을 때의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주님과 첫사랑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내 영혼을 살리시려고 예수 피의 복음을 선포하는 연세중앙교회로 불러 주시고, 영혼 구원에 불타는 담임목사님을 만나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그간에 신앙의 고비도 있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삼일예배, 금요예배를 한두 번 빠지다 보니 주일 예배도 빠지게 됐습니다. 집 가까운 교회에 다닐까 말까 갈등하며 1년간 방황도 했습니다. 다행히 청년회 부장이 기도해 주며 꾸준히 연락해 주었습니다.

 

“교회에 한 번만 가자!” 직분자의 간곡한 요청에 미안하기도 했고, 친분에 매이기도 해서 어쩔 수 없이 연세중앙교회에 다시 나가다 보니 하나님 은혜에 붙들려 신앙생활을 계속하게 됐고, 결혼도 했습니다.

 

올해는 서리집사와 34남전도회장 직분을 겸해서 받았습니다. ‘나는 할 수 없는데…’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기도하고 순종하며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려 합니다. 기도하는 자, 섬기고 사랑하는 자, 겸손한 자가 되도록 항상 기도하겠습니다.


부족하지만 변치 않으리라 다짐해

이정임 집사(고등부 교사)

 

벌써 몇 주가 지났지만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신임서리집사 임명받은 그 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평생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주님을 만나고 구원받은 것도 감사한데 거기다가 무척이나 귀한 직분을 받으며 ‘나 같은 자도 집사가 될 수 있는 걸까’ 두렵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여러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내 평생 감히 주를 위해 살자고 다시 한 번 내 마음을 다잡으며 다짐해 봅니다. 미련하고 무식하고 모자라고 부족함투성이지만 주님께서 맡겨 주신 직분을 열심히 감당하며 변치 않겠습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 우리 아버지, 사랑합니다.


목회방침에 온전히 순종하리라

구재언 집사(35남전도회)

 

모태신앙이지만 무늬만 크리스천이던 저는 주일마다 축구에 빠져 살았습니다. 10년 전, 그날도 어김없이 친구들과 축구하려고 약속을 잡았는데 이상하게 교회에 가고 싶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추천하신 연세중앙교회를 찾아갔습니다.

 

예배당 뒤편에 앉았지만, 마치 목사님이 코앞에서 책망하시는 듯했습니다. 여태껏 제 마음대로 살아온 삶과 부모님 마음을 상하게 한 제 모습을.... 마음이 송곳으로 찔린 듯해 하나님 앞에 지난날을 회개하고 예수를 제대로 믿기로 결심했습니다.

 

신입부 시절, 월요찬양모임 때였습니다. 찬양하는 도중에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다른 청년들은 눈물을 흘리는데 제게는 그런 눈물이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게도 눈물을 주세요.’ 그 순간, 주님께서 엄청난 광채에 싸여 나타나셨습니다. “사랑하는 재언아, 왜 이제야 왔느냐. 내가 너를 많이 사랑한다.”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지고, 그동안 지은 죄악이 필름 지나가듯 뇌리를 스쳤습니다. ‘이런 내 죄 때문에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셨구나.’ 통곡하며 고백했습니다. ‘이제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뒤돌아보면, 그때 주님께 드린 고백처럼 살지 못한 때가 더 많았습니다. 이런 부족한 자에게 집사라는 직분을 주시니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목사님 심정과 목회방침에 온전히 순종하는 집사가 되겠습니다.


신앙생활 회복할 소중한 기회

강승연 집사(74여전도회)

 

친언니 가족과 함께 연세중앙교회에 왔습니다. 영적인 갈급함 끝에 찾은 교회에서 내 죄를 사하시려 흘리신 십자가 피의 복음을 듣고 예수를 뜨겁게 만났습니다. 그동안 세상과 벗하며 허울뿐인 기독교인으로 살아온 죄를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7년간 신앙생활을 하다 지난해 결혼했고 올해는 남편과 나란히 서리집사 직분을 받았습니다. 한없이 부족하고 자격 없는 자에게 귀한 직분을 맡겨 주시고 쓰임받을 일꾼으로 삼아 주시니 무한한 감사를 올려 드립니다. 결혼하여 출산과 육아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보니, 자유롭게 신앙생활 하던 청년 시절이 그립습니다.

 

지금은 아무리 예배를 잘 드리고 싶고 충성하고 싶어도, 신앙이 자꾸만 뒷걸음질하는 것 같아 두렵습니다. 올해 하나님께서 집사 직분을 주신 것은 내 영혼 다시 살고 회복하라는 소중한 기회인 듯합니다.

 

앞으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신앙생활에 집중하겠습니다. 교회와 주의 종을 섬기는 일에 감사와 기쁨으로 순종하겠습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오직 주의 은혜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아버지 일에 쓰임받는 일꾼이 되길 소망합니다.


더욱 낮아져 충성의 일꾼 되리

허방회 집사(33남전도회)

 

13년 전 노량진 학원가 수험생 시절 노방전도를 받아 우리 교회에 처음 왔습니다. 연세중앙교회에서 들은 진실한 찬양과 담임목사님의 애절한 설교 말씀이 저를 변화시켰고, 동계성회에서 진정으로 은혜 받고 회개하며 주님을 뜨겁게 만났습니다.

 

그 후 지긋지긋하던 수험생 시절을 마감하고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대학생활은 충청도에서 했지만 전도부 형제들의 도움으로 주말마다 서울에 올라와 신앙생활 했습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입대하여 10년간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디에 가서든 신앙생활을 잘하리라 다짐했건만, 점점 인생의 주인이 제가 되었고, 그토록 사랑한다고 고백하던 주님은 뒷전으로 밀어 두었습니다. 기도하지 못하고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하여 영적으로 많이 타락했습니다.

 

그 후, 상의 끝에 아내와 아이를 먼저 서울 연세중앙교회 근처로 보내기로 결단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 가지 환경을 열어 주셔서 교회 옆으로 이사하였습니다. 현역 군인 시절이었지만, 주님께서 주일성수 할 수 있게 적절한 보직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또 전역 시기도 수년이나 당겨 주셔서 지난해에 전역했습니다.

 

그동안 정작 주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충성하며 섬기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저를 서리집사라는 일꾼으로 세워 주신 주님께 무한 감사합니다. 이제부터라도 더욱더 낮아져 섬기고 충성하고 싶습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주님께

박영란 집사(해외선교국)

 

11년 전, 윤석전 담임목사님께서 영국 런던 누가교회(St. Luke’s Chuch)에 부흥성회 인도차 오셨습니다. 당시 저는 학업에 지쳐 심령이 말라 있던 차에 단비처럼 쏟아지는 설교 말씀에 큰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2년 후, 귀국하자마자 지체 없이 연세중앙교회에 등록했습니다.

 

그 후 연세중앙교회에서 예배, 감사, 찬양, 예물, 성도와 교제 등 신앙생활 전반에 걸쳐 성경적으로 배울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또 귀국한 그해부터 담임목사님 설교를 통역하였는데 평소 자주 인용하시는 성경 구절을 비롯하여 설교 말씀에 젖을 수 있었고, 충성하는 자에게 내려 주시는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였습니다.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전 세계 목회자와 성도를 깨우는 일에 연세중앙교회와 담임목사님을 사용하십니다. 통역으로 이 귀한 사역에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구원해 주시고, 주님 일에 사용해 주신 은혜만도 감사한데, 이번에 서리집사라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우리 가정에 아기가 태어납니다. 직장에 다니면서 육아와 설교 통역까지 다 잘해낼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삶의 우선순위를 항상 주님과 교회에 두고, ‘맡은 자가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는 말씀을 붙잡고 구할 때, 넉넉히 감당하고도 남을 힘을 채워 주시리라 믿습니다.


유익을 남기는 일꾼이 되기를

임종균 집사(35남전도회)

 

7년 전, 연세중앙교회에 처음 와서 윤석전 목사님께서 선포하시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주님을 만나는 큰 체험을 했습니다. 또 연세중앙교회 성도들이 열정적으로 신앙생활 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다음 해 1월 첫 주일, 연세중앙교회 교인으로 정식 등록했고, 흰돌산수양관 동계성회 때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 말씀에 은혜 받아 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목사님의 추상같은 설교 말씀에 어릴 적부터 지은 죄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뇌리를 스쳐 시간시간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어찌해 볼 수 없던 저를 하나님께서는 설교 말씀으로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장 없이 부모님 사업장에서 얼쩡거리던 제게 기도를 하게 하시더니 직장을 구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살 찢고 피 흘리시기까지 사랑하셔서 구원해 주신 은혜도 감사한데, 올해는 귀한 집사 직분을 주시니 하나님 은혜에 감사, 감사뿐입니다.

 

저는 주님께 빚진 자입니다. 그 큰 빚을 평생 갚을 길 없으나, 육신으로 살아갈 동안 맡기신 직분 잘 감당하여 다섯 달란트 받은 자처럼 주님 앞에 유익을 남기는 충성스러운 일꾼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의 군사로 만들어지리라

이신애 집사(북한선교국)

 

북한에 있는 부모형제가 무사히 탈북해 한국에 오면,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죄를 회개하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식구 모두 전도하겠다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안전부 감시 속에서 살던 부모형제와 백일 된 조카까지 일곱 식구가 무사히 한국에 오자 저는 하나님께 한 약속을 모두 잊고 마음대로 죄짓고 육신의 정욕만을 좇아 살았습니다. 온 가족이 한국에 왔으니 아쉬울 것도, 부러울 것도 없이 마냥 행복할 줄만 알았던 제 인생에 뜻밖에도 공허감, 외로움, 허탈감이 끝도 없이 밀려왔습니다.

 

그제야 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간사한 인간인지 깨달아 신앙생활 할 교회를 찾았고, 2011년 여름에 연세중앙교회에 왔습니다.

 

윤석전 목사님이 온몸을 던져 가며 하나님 말씀을 애절하게 전하시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 때마다 큰 은혜를 부어 주셨고, 하계성회 때 인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을 주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아니면 안 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기에 날마다 기도하며 삽니다. 올해 보잘것없는 제게 집사 직분을 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같은 처지인 탈북민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으로 알고 순종하면서, 주인 의식을 지니고 맡겨 주신 직분을 성령으로 감당하고 섬기며 충성하려 합니다.

 

저 북한 땅에서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 가는 내 동포에게 복음 전할 수 있는 그 날이 올 때까지 성령 안에서 기도하면서 그리스도의 군사로 만들어지리라 다짐해 봅니다.


교회와 영혼을 사랑하는 집사 되리

봉경아 집사(76여전도회)

 

평화롭기만 하던 우리 집안에 평지풍파가 일어난 것은 스물두 살 때입니다. 당시 전남 광주에서 사우나를 운영하시는 아버지 일을 도우며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누전으로 지하 보일러실이 폭발하면서 건물 전체가 큰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당시 카운터에 있던 저는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간발의 차이로 빠져나와 겨우 살아났습니다. 그 일로 가세가 기울어 남동생은 휴학 후 입대했고, 다른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4남매 장남인 오빠(봉경준 집사)가 서울 큰아버지 댁에서 대학에 다녔는데, 남동생이 제대할 무렵 4남매 모두 서울에서 살자고 권유했습니다. 많이 망설이다 다른 살길이 없어 상경했습니다.

 

오빠를 따라 당시 노량진에 있던 연세중앙교회에 갔으나 말씀에 귀에 들어오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오빠의 중보기도로 하계성회에 참석했고, 은혜 받아 성령체험을 하였습니다. 만약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면, 지금쯤 제 영혼이 지옥에서 울부짖을 것을 생각하니 끔찍합니다.

 

올해 신임집사 임명을 받으면서 ‘자격 없는 자가 직분을 받아도 될까’ 두려웠습니다. 이번 집사 임명을 계기로, 교회를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집사가 되리라, 성도의 옳은 행실로 교회에 덕을 세우도록 쉬지 않고 기도하며 충성하리라 다짐해 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1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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