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부활의 고유성]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줄 수 있는 능력

등록날짜 [ 2015-04-07 13:27:51 ]

고난과 죽음을 통과한 후 부활해 영원한 생명 주셔
그 감당하지 못할 사랑받은 자라면 감사가 넘쳐야


예수의 부활은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초자연적 사건이었다. 자연법칙에 매여 있는 인간의 눈으로 볼 때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일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부활은 단지 이적을 행하는 주님의 능력만 보여 주는 사건이 아니다. 예수의 부활 사건은 고유한 특징을 통해 우리에게 그 이상의 의미를 전해 주고 있다.

영생에 이르는 길
예수 부활의 고유한 특징 중 첫째는 부활 이후 예수께서 영생에 드셨다는 점이다. 이는 다른 이들의 부활과 비교해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우리는 비단 예수의 부활이 아니더라도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사람의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다. 관 속에 들어갔다가 매장 직전에 깨어나 겨우 살아난 사람의 전설 같은 이야기도 언론에서 가끔 듣는다.

성경 속에서도 예수의 부활 이외에, 예수께서 행하신 이적으로 살아난 사람들의 부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은 예수의 말씀으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는 체험을 했다.

하지만 예수의 부활은 그런 인간들의 부활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죽었다가 되살아난 인간들은 모두 다시 죽음에 이르렀지만, 예수께서는 그 어떤 힘에 의존하지 않고 부활하셨고, 다시 죽지 않으셨다.

그런 점에서 예수의 부활은 사망을 완전히 이긴 부활이다. 예수께서 죄 없는 분이셨기에 이루어진 일이다. 즉 죽음이 죄의 대가라고 한다면, 어느 힘에도 의존하지 아니하고 영생하는 부활은 예수께서 죄 없는 분임을 입증한다. 물론 인간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공로를 의지함으로 부활·영생할 수 있지만, 그것은 다른 힘에 의존한다는 점 때문에 예수의 부활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고난과 죽음의 분량
예수 부활의 둘째 특징은 타인이 받아야 할 고난과 죽음을 대신 담당하고 이루어진 부활이라는 점이다. 부활은 ‘다시 산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반드시 죽음을 전제한다. 죽음 없이는 부활도 없다. 예수께서도 부활하기 위해 먼저 죽으셨고, 그 죽음에 이르기까지 육신을 입은 자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고난과 고통을 당하셨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다른 힘에 의존하지 않고 부활하고 영생함으로 그가 죄 없는 분임을 증거하셨다.

따라서 예수께서 받은 고난과 죽음은 그의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것, 바로 죄인인 인간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것이었다. 예수께 고난과 죽음만 있고 부활이 없었다면 그 고난과 죽음은 인류의 것이 될 수 없었다. 고난과 죽음이 죽은 자 그 자신의 것이었을 터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부활하셔서 자신이 당한 고난과 죽음이 바로 인류의 것이었음을 확증해주셨다.

그 고난과 죽음의 분량이 바로 인간을 향하신 주님의 사랑의 분량이며, 우리가 받은 복의 분량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간직해야 할 감사의 분량이기도 하다. 그 분량은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는 감히 측량할 수 없다. 다만, 그리스도를 좇은 수많은 순교자가 예수께서 당하신 고난을 생각하며 자신에게 닥친 고난, 심지어 신체의 일부가 찢기고 잘리는 끔찍한 고난일지라도 달게 감당하였다는 점만은 기록으로 알 수 있으니, 가히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분량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만 할 뿐이다.

말씀대로 죽고 사는 것
예수 부활의 셋째 특징은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즉 법대로 이루어진 ‘필연’이었다는 점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그가 받은 고난과 죽음이 인간이 받을 몫을 대신한 것임을 확증해주셨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을 사랑한다고 해서, 인간의 죄악을 그냥 없는 셈 치지도 않으셨고 죄의 결과로 오는 ‘정녕 죽으리라’는 공의의 법을 폐하지도 않으셨다. 그 대신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를 보내셔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게 하셔서 끝내 ‘죗값은 사망’인 공의의 법을 집행하셨다.

물론 예수께서는 죄가 없으셨기에 다시 사셨고, 예수의 고난과 죽임당하며 흘리신 피 공로는 죄를 속해 줄 은혜의 재산으로 인간에게 주셨다. 이렇게 인간의 죄 사함은 예수의 고난에서 부활에 이르는 처절한 법의 집행 과정을 포함한다. 이는 철저히 말씀으로 세우신 법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내가 어떻게 살든 내 죄악을 알아서 면제해 주신다’는 생각은 큰 착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생각은 하나님이 아들을 살 찢고 피 흘려 죽이면서까지 직접 세우신 법을 지키시는 공의로우신 분임을 모르는 무지의 소산이다. 만약 그 법과 무관하게 죄인을 구원할 수 있다면 예수의 고난, 죽음, 부활이 굳이 필요했을까.

참된 그리스도인의 길
기독교는 고행이나 선행 그 자체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로는 사망과 저주의 원천인 죄가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죽음, 부활을 믿는 한 길뿐이다. 그리고 그 길은 피로 얼룩져 있다.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능력, 그리고 갖가지 어려움 가운데서도 우리가 기쁘고 평안하며 무엇보다 영혼의 때에 천국에 다다르는 행복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예수의 희생을 잊는 일 자체가 시험이거니와, 이 망각은 또한 다른 여러 모양의 시험을 동반하여 우리를 부활의 길에서 떨어뜨려 놓는다.

우리는 고난과 부활로 이룬 사랑을 이미 받았다.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대신 피의 고난과 죽음을 짊어지게 할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셨다면 우리를 위해 무엇인들 못하시겠는가.

우리는 그 감당하지 못할 사랑을 감사로 수용하기 위하여, 주님이 주신 생명의 법을 따라 예수의 부활을 자신의 부활로 소유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이계룡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42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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