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감사의 대상] 창조주를 겨냥한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등록날짜 [ 2015-09-28 16:54:25 ]

인류 인간을 창조하시고 구원을 주신 우리 주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과 찬송을 아낌없이 올려 드리자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다니엘이 처한 당시 상황은 높은 절벽 위의 외줄타기였다. 바벨론이 망하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바사 제국을 세웠다. 다리오 왕은 방백(方伯, 지방에 파견한 행정관) 120명을 세워 나라를 다스렸는데 이들 위에 총리 3명을 두었다. 총리 중 한 명이 다니엘이었다.

왕의 총애를 받던 다니엘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신하들이 다니엘을 죽이려고 다니엘의 뒷조사를 아무리 해도 어떤 허물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올무를 놓기로 했다. 한 달 동안 다리오 왕 이외에는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단6:7) 금령을 세우고 왕의 어인을 찍었다.

다니엘은 이 사실을 알고도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올렸다. 결국, 사자 굴에 빠졌지만 굶주린 사자들은 다니엘을 해치지 못했다.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단6:23). 하나님을 믿음으로 표현한 결과,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 것이다. 믿고 감사하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

실패하면 좌절하는 사람이 있다. 좌절에 눌려 불평이 나오고 끝없는 부정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시간을 낭비하고 새롭게 찾아오는 기회마저 날려 버린다. 이런 사람은 모든 실패를 남 탓으로 돌리고 분노를 참지 못한다.

그러나 마음을 고쳐먹고 불평을 뽑아내고 감사로 채울 때 감사는 하나님 안에서 발산되는 긍정의 힘을 폭발하게 하는 도화선이 된다. 긍정의 힘을 가진 사람은 ‘나는 할 수 있다’며 다시 일어선다. 절망적인 현실과 상황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베드로가 바다를 육지처럼 걷고 있을 때, 높은 파도에 시선을 빼앗기는 순간 바닷속으로 쑥 빠졌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손을 잡고 끌어올리면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마14:31)고 책망하셨다. 감사는 믿음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믿음은 대상이 분명해야 한다.

지갑에 돈이 없으면 불안하다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돈을 믿음으로 여기고 돈이 전부인 사람이다. 재산만 바라보고 돈에 의해, 돈을 모으려고 살아간다. 내일이 없고 현실만족만 추구한다. 돈이 믿음의 대상이 되면 자기 영혼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

믿음의 대상이 권력인 사람도 있다. 다윗의 셋째 아들 압살롬은 권력을 쟁취하려고 형을 죽이고 아버지 다윗에게 칼끝을 겨누었다. 권모술수로 백성의 마음을 훔치고 자신이 권력자가 되려고 수년 동안 철저히 준비했다. 손만 뻗으면 왕의 권좌를 바로 품속에 넣을 수 있는 순간까지 갔다.

압살롬은 순간의 판단 착오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압살롬은 살아 있을 때 자기를 위하여 비석을 세웠다(삼하18:18). 아무리 자신이 자신을 높인다고 해서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보잘것없는 권력이라도 한번 맛본 사람은 권력을 쟁취하려고 죽음을 마다치 않는데, 이는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사람을 의지할 때가 많다. 주전 705년경에 이스라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앗수르가 북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유다로 침공하려 할 때 히스기야 왕을 포함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뛰어난 마병을 거느린 애굽을 의지했다.

이를 본 이사야 선지자는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사31:3)고 경고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쟁에 필요한 말 때문에 애굽을 의지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다.

사람을 의지하는 어리석음에 대해 시편 기자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46:3~5).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처럼 현세대의 교만은 하늘을 찌른다. 우주선을 쏘아 올려 인간의 과학이 위대하다고 목에 힘을 준다. 사람처럼 생각하는 슈퍼컴퓨터를 만들어 자신이 창조주라도 된 것처럼 행동한다.

『코스모스(COSMOS)』의 저자 ‘칼 세이건’은 “인류는 코스모스에서 태어났고 인류의 장차 운명도 코스모스와 깊게 관련돼 있다. (중략) 우리를 둘러싼 우주의 기원에 그 뿌리가 닿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주에서 인간의 기원을 찾고 그 기원으로 인류 창조 역사를 찾으려 했지만 그의 지식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한다.

인류 최고의 지혜자이고 권력과 부(富)를 싫증 날 만큼 누린 솔로몬은 이렇게 말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1:2~3).

세상사의 온갖 즐거움과 신기한 일들도 인간을 충족하기에는 너무나도 무력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앞서 다니엘의 마음은 하나님만 겨냥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구원받은 것처럼 인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음과 부활로 구원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감사해야 함이 마땅하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정한영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45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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