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30년사] 시작부터 영혼 구원에 힘 쏟아
1987년

등록날짜 [ 2015-12-22 13:32:44 ]

성도들과 함께 산에 올라 밤을 새며 부르짖어 기도해
개척 때부터 전국으로 부흥회 다녀도 사례비 안 받아



연세중앙교회는 1987년 표어를 ‘전도하며 일하는 해’로 정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린 공로로 죄와 저주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해서 충성하고 예수 몰라 지옥 가는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성령의 감동에 따라 정한 것이다. 설립 첫해를 제외하고는 매년 교회 표어를 전도에 초점을 맞췄다. 교회를 세운 목적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오직 예수 몰라 지옥 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1987년 1월 4일 새해 첫 주일을 맞아 하나님이 쓰시는 종 윤석전 전도사는 ‘믿음의 일꾼’(고전1:26~31)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연희동 60평 지하 성전, 곰팡내 물씬 풍기는 교회에 꾸준히 출석하는 성도 중에는 지식 많고 문벌 좋고 능력 있는 자가 별로 없었다. 오직 하나님 말씀에 은혜받아 예수로 살기를 결단한 이들이었다.

성도들의 기도 훈련을 위해 산 기도 실시
윤석전 목사는 성도들에게 기도할 영력을 키워 주고 영적으로 성장하게 할 목적으로 봄여름에는 기도 장소를 산으로 옮겨 기도 훈련을 강하게 시켰다. 산 기도 하는 날이면 매일철야기도 하는 성도들이 저녁 8시쯤 교회에 모여 승합차를 타고 삼각산(북한산)으로 향했다.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에 있는 삼각산까지는 차로 25분가량 걸렸다. 그 근처에 사는 성도들은 산 밑에서 만났다. 깜깜한 밤이라 손전등을 비추면서 험한 산길을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1시간가량 산을 올라 중턱 즈음에 있는 ‘주여바위’, ‘흔들바위’에 도착했다. 다 같이 기도할 만한 자리를 찾아 둥그렇게 모여 앉아 기도했다. ‘주여바위’ 부근은 교회 개척 전에 담임목사가 기도하던 자리라 정겹게 느껴졌다. 확 트인 산 중턱에서 마음껏 부르짖어 기도하러 왔으니 다들 기도 제목을 붙잡고 “주여!” 크게 부르고 기도했다. 작은 목소리로 기도하거나 소극적으로 기도하면 이내 졸리고 잡념에 눌리기 때문에 처음부터 크게 부르짖어 기도했다.

윤석전 목사와 김종선 사모는 기도를 인도하다가, 조는 성도에게 다가가서 기도를 지도했다. 성도들이 지쳐 기도 소리를 작게 내면 윤석전 목사가 더 소리 높여 기도를 인도했다. 2시간 정도 애절히 부르짖어 기도한 후에는 잠시 간식을 먹었다. 당시 우이동에서 쌀집을 운영하던 김윤영 안수집사가 인절미를 자주 해 왔고, 다른 성도들은 수박을 종종 사 왔다. 기도하다 출출할 때 간식을 맛있게 나눠 먹고 다시 밤새 기도하다 산을 내려왔다.

 

[목회 에피소드]

부흥회 사례비를 안 받게 된 사연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는 주님 말씀대로 순종

윤석전 목사는 30대 초반 집사 시절부터 각종 성회에 부흥 강사로 다녔다. 마흔 살 넘어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여전히 부흥회 요청을 많이 받았다. 부흥회 사례비는 처음부터 일절 받지 않았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10:8)는 하나님 말씀대로 자신에게서 나타나는 이적과 표적, 각종 능력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오직 주님의 이름으로 나누어 주고 싶어서였다.


<사진설명> 당시 부흥성회를 인도하는 윤석전 목사.


그런데 신학교에 들어가 보니 동기생 중에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는 이가 많았다. 특히 앞으로 목회를 잘할 것 같아 보이는 믿음 있고 능력 있는 신학생들이 등록을 못해 새 학기 강의 시간에 보이지 않을 때면 몹시 안타까웠다.

윤석전 목사는 신학생 시절에 하나님의 은혜로 등록금을 대 주는 사람, 용돈 주는 사람, 책 사 주는 사람이 각기 따로 있어서 어려움 없이 공부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 학비까지 댈 정도로 넉넉지는 않았다. 그때부터 부흥회 사례비를 받아 동기들 등록금을 대서 낙오자가 없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례비를 받자 제일 먼저 장로로 충성하다가 늘그막에 신학교에 들어온 동기의 학비를 댔다.

얼마 후, 윤 목사는 전도사 신분으로 면 단위 연합성회에 강사로 가게 됐다. 성회 장소에는 얼마나 사람이 많이 모였는지 교회 아래위 층과 강단 위까지 꽉 찼다. 헌금도 얼마나 많이 하던지 사례비를 받으면 두세 사람 학비는 넉넉히 대겠다 싶었다. 성회를 마치자 사례 봉투를 주는데 꽤 두툼했다. ‘이 정도면 몇 명 학비를 대겠구나’ 싶어 설레기까지 했다. 궁금함을 못 이겨 기차에 타자마자 서둘러 봉투를 열어 보았다. 그런데 봉투 속을 들여다본 순간 실망감과 허탈함에 얼굴을 찡그렸다. 모두 천 원짜리 지폐였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 큰 은혜를 받고 이럴 수가 있나. 그렇게 많이 왔는데, 겨우 사례비를 이것밖에 안 주다니!’

급기야 속에서 분이 나고 안색까지 변했다.

‘누구, 누구 학비를 대주려고 했는데….’

속으로 그렇게 불평하던 윤석전 전도사의 심령 가운데서 주님의 음성이 세밀하게 들렸다.

‘석전아, 네가 부흥회에 등록금을 벌러 갔니? 나는 내 십자가 피의 공로를 전하고 회개시켜서 수많은 영혼 살리라고 너를 보냈는데, 너는 그런 목적으로 간 게 아니었니? 그러면 내가 너를 보낸 목적과 네가 간 목적이 달랐구나.’

순간, 큰 충격을 받았다. 윤석전 목사는 집회를 한 진정한 목적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사례비를 적게 줬다고 화내고 낙심한 자신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자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신학교에 있는 내 자녀는 내가 책임진다. 네가 학비를 대야만 그들이 주의 종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때부터는 어떤 목적이든 간에 다시는 부흥회 사례비를 받지 않기로 했다. 집회를 여는 목적은 오직 영혼 구원을 위해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다. 또 주를 위해 설교할 때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그 수고는 하나님 나라에서 받는 상상할 수 없이 큰 상이기 때문이다.

윤석전 목사는 그후로 국내외 어느 곳에서 성회를 인도하든 절대 사례비를 받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강사인 자신과 함께 간 선교단이나 수행원의 식사도 부담을 주지 않도록 사람을 데려가 직접 해 먹는다. 해외 성회에 갈 때도 성회를 주최하는 교회나 단체에서 비행기 표 한 장 후원받지 않는다. 성회에 오가는 경비는 모두 우리 교회 선교부가 대는 돈으로 부담한다. 이는 주님이 주신 마음이요, 영혼 구원의 목적을 상실하여 주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으리라 다짐한 순종의 결과다.
 

위 글은 교회신문 <46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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