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30년사] 작은 지하 성전에서 성령의 역사 파도쳐
1988년

등록날짜 [ 2015-12-29 16:03:00 ]

윤석전 목사 건강은 악화일로였으나 치유의 역사는 넘쳐
성도 한 명 한 명 일일이 신앙 점검하며 영적생활 지도해


하나님께서는 연세중앙교회 담임목사와 성도들에게 죄로 지옥 갈 영혼을 구원하고 싶은 애절한 심정을 주시고, 수많은 사람을 만나 복음 전하게 하시고, 그들도 구원하셔서 천국을 소망하며 살게 하셨다.

연세중앙교회에 와서 구원과 치유와 회복의 역사를 경험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난 이들의 간증이 끊이지 않았다.
 


지하 성전에 넘친 성령의 역사
연희동성전 시절에 신앙생활을 했던 성도들에게 가장 기억나는 일을 꼽으라고 하면 대부분 ‘윤석전 담임목사와 김종선 사모의 애절한 기도 소리’라고 답한다. 저녁마다 성전을 울리던 담임목사와 사모의 애절한 기도 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듯하다고 고백한다.

윤석전 목사는 목회하면서도 줄곧 건강이 좋지 않았다. 목회하기 전에 현대 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깊은 병에 걸렸다가 하나님 은혜로 고침받았지만, 예배시간에 부축을 받아 강단에 서는 날이 많았다.

또 강단에 서 있기조차 힘들어 혁대 버클을 강대상에 걸쳐 놓고 설교하는 때도 잦았다. 그렇게 자기 몸이 힘든 상황에도 김종선 사모와 함께 매일철야기도를 하면서 성도를 한 명, 한 명 불러 일일이 신앙 상태를 점검하며 영적생활을 지도해 주었다. 또 병든 자에게는 치유의 기도를 해 주었다.

그런 소문을 듣고 위암, 폐암, 자궁암 등 각종 암병이나 불치병에 걸리거나 악한 영에 매인 자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우선 하나님이 쓰시는 윤석전 목사의 생명력 넘치는 설교 말씀에 은혜받았다.

이어 목사와 사모의 능력 있는 기도로 병마와 악한 영의 결박에서 놓임받아 “할렐루야!”를 외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처럼 연희동 작은 지하 성전에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성령의 역사가 파도치듯 일어났다.



교회 부흥과 성전 확장
■교육관 건물을 얻다=말씀의 능력이 풍성하다는 소문이 퍼지자 교회를 찾는 이가 날로 많아졌다. 부흥성회 때면 198㎡(60평) 지하 성전에는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게다가 청년 인원이 장년보다 많아져서 청년회실이 필요했고, 주일학교나 중.고등부도 예배 장소를 넓혀야 할 형편이었다.

연희동성전에서 20m 떨어진 도로변에 3층짜리 일반 주택 한 채가 있었다. 총면적 248㎡(75평)인데 층마다 개별 문 딸린 방이 여럿 있어 교육관 용도로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전세도 500만 원이어서 규모와 비교하면 아주 싼 편이었다.

윤석전 목사는 전세금만 마련된다면 어떻게든 집주인을 설득해 교육관으로 사용해야겠다는 마음에 서둘러 서류를 준비해 은행을 찾았지만 거절당했다. 당시에는 교회담보대출이 없었는데 이를 몰랐던 것이다. 하는 수 없이 교단 국내선교회에서 도움을 받아 보려고 서류를 준비해 당시 총회 사무실이 있던 대전까지 찾아갔다.

그런데 선교국장이 대뜸 “연세중앙교회에는 대출을 못 해 줍니다”라고 거절했다. 요구대로 철저히 준비해 간 서류를 한 번 살펴보지도 않고, 대출 못 해 주는 이유도 말하지 않은 채 먼 길 찾아간 사람을 면전에서 거절하자 윤석전 목사는 더는 부탁하지 않고 그곳을 나왔다. 그러고는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날 교회에 돌아와 성도들에게 대출을 못 받은 이야기를 전했다. 성도들이 “우리가 헌금하면 되는데 왜 목사님이 힘들게 대전까지 다녀오셨어요?”라며 당장 마음을 모아 전세금 500만 원을 마련했다.

이제 그 집을 세 얻으려고 보니 주인은 은퇴 교수인 타 교단 장로였다. 그 집은 전세를 놓아 1층에는 화장품 가게를 하고, 2, 3층에는 중국인과 연세대 학생을 상대로 하숙을 쳤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후 건물 주인인 장로에게 전화했다.

“장로님, 연희동 집을 우리 교회에서 교육관 용도로 쓰고 싶으니 꼭 비워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목사가 전화해서 세놓은 집을 비워 달라고 하니 장로의 목소리에는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

“목사님, 무슨 가당찮은 말씀입니까, 남의 집을 마음대로 세 들겠다니요? 게다가 2, 3층은 하숙 치는 분께 수리해서 세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요?”

“장로님, 교회에서 하나님 뜻대로 영혼 살리는 데에 꼭 필요해서 그러니 어렵게 생각지 마시고 꼭 비워 주시기 바랍니다. 주의 일에는 어떤 힘든 상황일지라도 쓰임받는 것이 축복입니다. 어떻든 도와주십시오.”

처음에는 윤석전 목사에게 예의를 갖춰 말하다가 나중에는 호통을 쳤다.

“목사란 분이 왜 이렇게 경우 없이 억지를 쓰십니까?”

그러자 윤석전 목사는 성경 내용을 들어 장로를 설득했다.

“장로님, 이 세상 만물이 누구 것입니까?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소유 아닙니까? 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 주님께서 ‘주가 쓰시겠다 하라’(눅19:31) 하고 남의 나귀를 끌어다가 타셨잖습니까? 다른 분도 아니고 장로님이시니까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고 싶은 목사의 마음을 헤아려 꼭 저희 교회에서 그 집을 사용하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로는 더는 말이 안 통할 것 같았는지 전화를 끊어 버렸다. 윤석전 목사는 한 사람이라도 더 전도해 구원하려면 그 교육관이 꼭 필요했기에 간절히 기도했고 응답을 믿었기에 그렇게 담대하게 말했다.

며칠 후, 그 장로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목사님,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잠을 못 자겠습니다. 지금 세 든 사람들이 다 이사하도록 비용을 대 주고 비워 드릴 테니 교회에서 쓰세요.”

얼마 후, 그 집을 임대해 1층은 식당, 2·3층은 청년회와 중.고등부 그리고 주일학교에서 사용했다.



■대로변 식사=새로 마련한 교육관 1층 식당은 매우 요긴했다. 금요철야예배를 마치고 기도회를 시작하기 전 휴식시간에 성도들에게 커피를 끓여 제공하는 장소로 사용했다. 교회에서 부흥성회를 열면 1∼2주 전에 포스터를 붙이러 다녔는데 그때 사용할 밀가루 풀을 이곳에서 쒀 냈다.

주일 점심에는 성도들에게 칼국수를 끓여 대접했다. 좁은 식당에 많이 앉기 불편하자 성도들은 교회 앞 도로 한가운데 있는 잔디밭에 들어가 식사를 빨리 마치기도 했다. 길거리를 지나는 주민이나 버스에 탄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기도 하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설교 말씀으로 은혜를 듬뿍 받았기에 누구 한 사람 불평하지 않고 그저 감사하며 식사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6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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