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30년사] 청년회 폭발적인 성장, 젊은이로 활기 넘쳐
1994년

등록날짜 [ 2016-03-07 03:01:24 ]

사모 세미나는 전국으로 소문이 나면서 참석 인원 늘어

노량진성전 구입 후 2년이 지나서야 봉헌예배 드려


<사진설명> 전국 청년·대학부 하계성회.

1994
년에는 노량진 학원가를 중심으로 전국에서 모여든 수험생들에게 복음을 전해 많은 영혼을 구원하였으므로 청년회가 크게 부흥했다. 이후 청년회는 해마다 구원받은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교회의 중추적인 기관으로 성장했다


노량진 학원가 전도 활성화

1994년 청년회는 임원단과 회원관리부 외에 프로그램기획부, 심방부, 전도부를 신설했다.

임원단은 회장, 부회장, 총무(2), 회계, 서기(2), 프로그램기획부 차장(3), 편집부 차장(2), 회원으로 구성했고, 회원관리부는 20부로 조직했다. 프로그램기획부는 임원단을 도와 행사를 추진했다. 심방부는 부장 5명이 회원관리 20부를 4부씩 담당했다. 부장들은 서로 협력해 회원 심방과 일꾼 양성에 주력했다. 전도부는 노량진 학원가를 중심으로 매일 전도에 나섰다. 청년회 직분자들은 윤석전 목사가 성령의 감동으로 선포하는 하나님 말씀을 생명의 원천으로 삼고 하루 평균 4~5시간 기도하고 성령 충만에서 오는 구령의 열정으로 회원을 섬겼다.

청년회는 전국 청년·대학부 하계성회를 부흥의 기폭제로 삼고, 성회가 열리기 4개월 전에 준비위원회를 발족하고 본격적으로 기도와 성회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임원단은 성회 장소 선정, 프로그램 제작, 홍보를 맡아 교회 안팎으로 바삐 뛰었고, 회원관리부 부·차장들은 한 회원이라도 더 하계성회에 가서 은혜받게 하려고 있는 힘을 다해 참석을 권면했다. 이같이 주의 심정으로 섬겼기에 청년·대학부 성회를 한 차례 개최할 때마다 청년회가 확연히 부흥했다.

그러다 보니 청년회원들만의 모임 장소가 절실히 필요했다. 고심 끝에 노량진성전 후문 쪽 낮은 지대에 있던 교회 소유 낡은 집들을 헐고 20미터 높이로 조성된 축대 경사 공간을 활용해 신교육관을 건축, 915일 완공했다. 후문 쪽에서 보면 지상 3(정문 쪽에서는 지하 3)으로 연건평 358평이었다. 노량진성전 인수 당시 대지 1200평에 본당과 교육관을 합해 연건평 699평이었는데 신교육관 건축으로 총 연건평이 1057평에 이르게 됐다. 신교육관을 하나님 은혜로 무사히 완공한 후, 미뤘던 노량진성전 봉헌예배를 1994103일에 드디어 드렸다.

전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진행한 사모 세미나


<사진설명> 7차 전국 사모 세미나.

1994년 여름이 끝날 무렵, 자기 몸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복음 증거에 잔인하리만치 사용하던 윤석전 목사의 건강이 급작스럽게 악화돼 연세중앙교회는 설립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급기야 918(주일)에는 안수집사들이 결의문을 작성해 담임목사님은 주 1회만 설교하고 산기도에 들어가시게 하고 전 성도는 담임목사님의 건강 회복을 위해 기도하자고 발표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윤석전 목사는 성도들의 염려와 만류를 뒤로한 채, 강단에서 설교하다가 죽으리라는 순교의 각오로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1010()부터 14()까지 제7차 사모영적세미나를 경기도 수원 흰돌산기도원에서 진행했다.


전국 목회자 사모 3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 사모 세미나 개강예배에서 윤석전 목사는 견딜 수 없는 육체의 고통과 소진된 기력 때문인지 설교를 불과 5분 만에 끝냈다. 평소 성령께서 주신 애타는 구령의 열정으로 5~6시간씩 강력히 말씀을 전하던 이전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몸을 강대상에 기댄 채 겨우 5분 만에 개강예배 설교를 끝내자 윤 목사가 아픈 것을 눈치챈 사모들이 충격을 받고 누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윤석전 목사의 건강을 회복시켜 달라고 하나님께 통곡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세미나를 진행하는 동안 기도원에서 충성하던 200여 성도 역시 매일 일정을 마친 후 다 같이 모여 윤석전 목사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교회에서도 성도들이 윤석전 목사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씀을 강력히 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윤석전 목사 자신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성령이 주신 감동으로 연약한 육신에도 생명을 내걸고 말씀을 전했다. 이 같은 눈물겨운 단상단하의 연합에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세미나에 참석한 사모들이 은혜를 받아 놀랍게 변화하는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다. 또 세미나를 마치자 윤석전 목사의 건강도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됐다. 성령의 역사로, 주님 정신으로 복음을 위해 목숨을 아낌없이 내놓고 사역한 진정한 목회자의 모습을 바라본 성도들은 윤석전 담임목사를 더욱 신뢰했고 주님은 주의 종과 성도를 사랑의 끈으로 다시 한 번 단단히 묶어 주었다. 이처럼 큰 고비를 넘어서면서 담임목사와 성도 간에 믿음과 신뢰가 더욱 단단히 다져지자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한국과 전 세계를 성령으로 변화하게 하는 사역에 귀히 쓰임받을 흰돌산기도원 구입이라는 축복을 안겨 주셨다. 다음은 1994년 연합여전도회장 장갑선(현 권사)의 회고다.

“1994년 윤석전 담임목사님의 건강이 악화돼 도무지 사모 세미나를 인도하실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움직일 수 없는 연약한 육체를 주님께 맡기고 성회를 강행하셨고 성회를 수종들던 남녀 충성자들은 밤마다 흰돌산기도원 소성전에 모여 목사님께서 설교하시는 동안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성회를 마쳤을 때는 놀랍게도 목사님의 건강이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애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 목사님을 제한 없이 사용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담임목사님의 목회 현장을 지켜보면서 목사님이 주의 사역을 해 나가시느라고 연약해진 육신으로 인해 당하시는 고통과, 성도를 사랑하시는 모습을 많이 보고 경험했습니다. 그 수없이 많은 감동적인 일을 어찌 말로 다 간증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눈물이 한없이 쏟아집니다. 목사님, 사모님께서는 자신의 육신을 쳐서 끊임없이 기도하시는 삶과, 지금까지 모든 성도를 끌어안고 놓칠세라 끝없이 품으시는 예수 정신을 우리 성도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강단에서 성령으로 선포한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는 우리 교회를 진정 사랑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7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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