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하나님은 변치 않는 사람을 쓰신다
변화의 30년, 한결같은 30년 ①

등록날짜 [ 2016-03-15 13:57:41 ]

성도는 늘고 교회 규모는 커져 가지만
영혼 구원의 정신은 언제나 변함없어





■ 변화와 성장-늘어나는 성도로 성전은 확장
1986년 3월 15일. 윤석전 목사가 3개월간 자신의 가정에서 교회 설립준비예배를 드린 이래, 연세중앙교회는 연세대학교 후문 바로 옆인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337-17(성산로 367-7)에 약 200㎡(60여 평) 규모 지하실을 얻어 개척했다.

연희동성전에는 치명적 단점이 있었다. 바람 한 점 들어올 틈 없이 꽉 막힌 지하실이라 평소에도 습해 곰팡내가 나고, 비만 오면 물에 잠겼다. 특히 여름에 장마가 지면 하수구 물이 넘쳐 지하 성전으로 콸콸 쏟아져 들어왔고 교회 내부는 습기로 눅눅했다. 피아노는 고장이 잦았고, 마이크가 설교 도중에 꺼지기도 했다. 어느 때는 아예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이런 곳에 어떻게 사람들이 오겠어요? 교회 장소를 잘못 택했네요.”

친지나 이웃을 따라 교회에 처음 온 새신자들은 실망스러운 말을 쏟아 냈지만, 윤석전 전도사는 그런 말을 들어도 좌절하지 않고 묵묵히 부르짖어 기도했다. 생명을 살릴 믿음과 능력과 권세만 있으면 장소야 어떻든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수많은 사람을 보내 주시리라 확실히 믿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성령의 능력을 나타내 지하실 개척교회에 수많은 사람을 보내 주셨다.

연세중앙교회는 매주 늘어나는 새신자들로 성전 이전을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역시 마음껏 부르짖어 기도하고 찬양해도 무방한 지하층으로 물색하던 중, 망원동에 약 660㎡(200평) 규모의 적당한 건물이 나타났다. 마포구 망원동 482-9번지 풍성빌딩으로 1990년 9월 26일 이전했다.

여전히 지층 성전이어도 비 와도 물난리 걱정 없고 곰팡내도 전혀 없이 깨끗하고 쾌적했다. 전 성도가 새 성전에서 감격스러운 기쁨과 감사로 눈시울을 적셔 가며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다.

연희동성전에서 망원동성전으로 이전한 후에는 영혼 구원 사역에 가속이 붙었다. 예배 공간만 해도 660㎡(200평)에 달하는 쾌적하고 넓은 성전으로 이전하자 성도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려고 전도에 열심을 냈다. 그 결과 성전 이전 1년 만인 1991년 8월 첫 주 예배 참석 인원이 2배가량 불어나 800명에 달했다.

연세중앙교회는 망원동으로 이전한 지 1년 9개월 만에 1500석 규모 노량진성전을 구입하여 또 한 번 이사했다. 개척 6년 만의 일이라고는 가히 상상하기 어려운 쾌거였다. 1992년 6월 28일, 하나님의 은혜로 노량진성전에서 첫 주일예배를 드렸다. 연세중앙교회는 1992년부터 2003년 초까지 영혼 구원의 산실로서 폭발적 부흥 성장을 경험한 노량진성전 시대를 2003년 1월 25일 금요철야예배로 마감하고 1월 26일 주일예배를 시작으로 궁동성전 시대를 열었다.

2005년 4월에는 궁동 대성전을 완공했다. 4만㎡(1만 2000평) 부지에 3만㎡(9000평) 규모로 지어진 궁동 대성전은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 대형 원형 건물이다. 교회의 기능성, 경제성, 상징성을 고려해 지은 초현대식 건축물이다. 예루살렘성전은 대성전 2·3·4·5층 공간으로, 수많은 인원이 동시에 예배드릴 수 있다. 궁동 대성전 건축 이후 연세중앙교회는 수많은 영혼 구원과 주의 일에 더욱 왕성하게 쓰임받고 있다.



■ 한결같음-‘목양일념’ 목회 정신은 변함없어

윤석전 목사는 개척 당시부터 예수 정신으로 목회했다. ‘나는 죽어도 좋으니 너만은 살아라’는 목양일념으로 성도 영혼을 향해 주님 사랑을 애타게 퍼부었다.

1985년, 윤석전 전도사가 신학교 3학년 때 일이다. 갑자기 몸에 이상 조짐을 느꼈다. 처음엔 단순히 과로인 줄 알았다. 당시 윤 전도사는 온갖 성회에 강사로 다니며 하나님 말씀을 전했다. 특히 토요일에 성회 일정을 잡으면 오후 1시에 시작해서 주일 새벽 6시 무렵에야 끝나 무려 17시간을 쉬지 않고 설교할 때도 있었다.

윤 전도사는 ‘평소 몸을 혹사하며 주를 위해 열심히 살아서 그런가 보다’라고 짐작하고 며칠을 쉬었다. 그런데 쉬면 쉴수록 몸이 회복되기는커녕 하루가 달리 무섭게 기력이 쇠하고 몸이 축났다. 일어나 앉을 기운조차 없어 침대에 누워서 지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잠도 거의 자지 못했다. 육체가 속에서 썩어 가서 한 군데도 멀쩡한 곳이 없었다.

끓는 물소리같이 신음한 지 한 달째, 얍복강기도원에서 연예인들과 함께 부흥성회를 하기로 한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윤 전도사는 탈진하다시피 해서 스스로 일어날 수조차 없는 몸으로 강단에 섰다. 혁대를 강대상에 걸쳐 몸을 지탱하고 손으로는 턱을 받치고 설교를 시작했다. 윤 전도사의 시야에 사람들이 흐릿하게 보여 마치 아지랑이가 아롱거리는 것 같았다. 무슨 정신으로 설교하는지도 모르고 사력을 다해 설교하는데 성도들은 은혜받아서 “아멘” “아멘” 했다. 3시간씩 세 번, 하루에 9시간을 설교했다. 설교할 때마다 ‘이번에는 정말 죽겠구나!’ 하며 생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말씀을 전했다. 그런데 토요일 성회를 다 마칠 때까지도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윤 전도사는 죽든 살든 하나님께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죽더라도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죽고 싶었다. 삼각산에 올랐다. 머리를 들 기운이 없어 턱도 나뭇가지에 받쳐 놓고 생애 마지막일지 모를 기도를 했다. 그러자 회개할 때 온몸을 썩히던 질병이 죄와 함께 사라지고 건강을 회복했다. 윤 전도사는 그때부터 기도가 바뀌었다.

“하나님, 제게 교회를 개척할 기회를 한 번만 주시면 육신의 때를 낭비하지 않겠습니다. 십자가에 피 흘려 죽기까지 내 죄를 속죄하고 구원하신 은혜, 나만이 아니라 예수 십자가 피의 속죄와 은혜를 몰라 지옥 가는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제 육신의 때를 다 퍼부어 쓰겠습니다. 주님, 기회를 주세요. 기회를 주세요.”

이때 하나님께 드린 기도는 윤석전 목사 목회 평생의 제1원칙으로 이어진다.

1996년 12월 말. 윤석전 목사는 뜻하지 않게 강단에서 목숨을 위협받는 큰 사고를 당했다. 성도 모두가 다음 해 1월부터 연이어 열릴 성회를 인도하지 못할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윤석전 목사는 ‘사명은 목숨보다 크다’라고 평소 강단에서 외친 가르침대로 휠체어에 몸을 실은 채 사력을 다해 성회를 인도했다. 1997년 1월부터 두 달간 동계성회에는 엄청난 성도가 흰돌산수양관에 와서 거듭나고 변화받는 것을 보며 하나님의 전적인 역사하심을 체험했다. 

2009년 즈음에도 윤석전 목사는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질 정도로 극심한 통증을 겪었다. 설명할 수 없는 육신의 고통은 가히 지옥을 방불케 했다. 그때 반딧불이 어둠을 밝히듯 윤석전 목사의 심령 속에서 고요하게 성령의 음성이 들렸다. ‘너, 설교하러 나가야지.’ 실낱같이 가늘지만 그 성령의 음성이 윤석전 목사를 들고 사용하셨다.

2013년 11월. 3년째 베들레헴성회를 진행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지 베들레헴은 현재 유대인이 전혀 살지 않는 팔레스타인 지역으로서 모슬렘의 테러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 성회를 앞두고 아랍 최대 일간지에 ‘윤석전 목사 초청 성회’ 광고를 실어 널리 홍보하기도 했다. 이 광고를 보고 정통 모슬렘들이 성회에 참석하였다. 즉, 테러의 위협에 그대로 노출된 상태에서 성회를 시작한 셈이다. 그런데도 이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복음을 들을 기회가 전혀 없어 죽어 가기 때문에 윤석전 목사와 연세중앙교회는 연속해서 성회를 열고 예수 복음을 전했다.

이 모든 것은 오직 주님께서 목양일념으로 영혼 사랑하는 주님 심정과 구령의 열정을 쉼 없이 공급하셨기 때문이다. 주님께만 모든 영광을 돌린다.

특별취재팀
 

위 글은 교회신문 <47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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