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孝)를 실천하며] 시어머니와 함께했던 마지막 시간
김현옥 집사(11교구, 70여전도회)

등록날짜 [ 2016-05-10 14:52:53 ]

막내며느리이지만 시모 모시며 함께 신앙생활
임종 순간에 그 환한 얼굴 지금도 잊히지 않아


그리스도인의 효도란, 부모가 살아생전 예수 잘 믿다가 육신의 삶을 마감할 때 본향인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부모와 마지막 시간을 보내며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은 자식된 도리로서 얼마나 복된 일인가.

부모 입장에서도 자식들이 당신 영혼의 복을 바라며 마지막 순간을 지켜 주는 것보다 복된 마무리는 없다. 여기, 시모의 유방암 병수발을 들고 임종까지 온전히 지킨 김현옥 집사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시어머니에게 전도받아
김현옥 집사는 모태신앙이다. 하지만 결혼하자, 절에 다니고 점쟁이와 무당을 자주 찾는 시어머니 등쌀에 교회에 다닐 엄두를 못 냈다. 그런데 오랜 세월 우상숭배에 찌들어 살던 시어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교회에 다니겠다는 뜻밖의 선언을 했다.

당시 김 집사의 시어머니는 사업에 실패해 오갈 데 없자 딸네 집에서 기거하고 있었다. 하루는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있었다. 설교 소리가 귀에 거슬린 시어머니가 끄라고 요구했더니 연세중앙교회 성도라는 그 기사는 시어머니에게 자신의 연락처를 건네며 말했다.

“언제든지 교회에 오고 싶으시면 꼭 제게 연락 주세요.”

딸네 집에서 지내는 것이 미안했던 시어머니는 주말에라도 외출해서 부담을 덜어 줄 심산으로 일전에 만난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했고, 이때부터 시어머니는 난생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김 집사는 시어머니가 교회에 다닌다는 소식을 듣자 무척 감사했다.

‘아, 나도 이제 교회에 갈 수 있겠구나.’

시어머니는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제사서부터 굿이나 점 등 귀신을 섬기는 우상숭배를 일절 하지 않았다. 또 믿지 않는 자녀에게 예수 믿으라고 전도도 했다. 하루는 시어머니가 “우리 교회 와서 말씀 한 번 들어 봐라” 하자 김 집사는 내심 미심쩍었다.

‘처음 예수 믿는 분이 저렇게 열심히 다니시다니! 한번 확인해 봐야겠다.’

김 집사는 시어머니를 따라 연세중앙교회 설날축복성회에 참석했다. 앞자리에 앉아서 말씀을 들었는데 성령의 감동에 따라 전하시는 윤석전 목사님의 2시간 설교가 마치 30분처럼 느껴질 정도로 설교 말씀에 푹 빠져들었다.

하나님 말씀에 큰 은혜를 받자 연세중앙교회에서 신앙생활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방에서 서울까지 혼자 교회에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했다. 그런데 비신자였던 남편이 시어머니의 전도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자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편하게 연세중앙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게 됐다.

시어머니와 함께 살며
평소 시어머니는 성격이 강하고 직선적인 편이었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김 집사에게 말했다.

“나는 막내며느리 너랑 같이 살고 싶구나.”

김 집사는 깜짝 놀랐다. 당장 “네”라고 대답하지 못하고 남편과 상의해 보겠다는 말만 하고 돌아왔다. 어찌할 바를 몰라 갈팡질팡하던 김 집사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진짜 시어머니랑 살기 싫어요. 그런데 만약 제가 모셔야 한다면 순종하게 해 주세요.’

기도를 마치는 순간, 시어머니를 모셔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당시 윤석전 담임목사는 설교 중에 며느리들의 불효를 질타하면서 시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고 간곡히 권면하셨다. 그 설교를 들은 김현옥 집사는 담임목사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감히 거스를 수 없었다.

막내아들로서 어머니를 모셨지만 시어머니와 함께한 생활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어머니와 함께 산 지 몇 개월 되지 않았는데 김 집사는 몸무게가 7~8㎏ 줄었다. 시어머니의 말씀에 매번 상처를 받았고, 집안 살림살이에서 심지어는 김현옥 집사의 물건에 이르기까지 한마디 상의 없이 내버리기 일쑤였다. 그런 시어머니를 감당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신앙심으로 ‘어머니 보시기에 필요 없어 보였나 보다’라고 마음을 바꾸고 어머니를 받아들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찬송을 부르며
그런데 함께 생활한 지 6개월 즈음 되었을 때, 어머니 가슴 한쪽이 곪아 고름이 흐른 일이 생겼다. 동네 병원에서 유방암이 의심된다며 정밀검사를 권유받았는데 시어머니가 미루다가 암이 커졌고 급기야 곪은 부위가 터져 밖으로 흘러나온 것이었다.

시어머니는 항암치료, 수술, 방사선 치료, 신약 치료까지 할 수 있는 치료는 다 해 봤지만 암이 오히려 커지고 장기 곳곳으로 전이되었다. 심지어 수술로 절제했던 유방 부위 피부가 겨드랑이 쪽까지 괴사해 매일 전문적인 드레싱을 해야 했다.

지난겨울에는 시어머니가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낮에는 김현옥 집사가 자녀를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낸 후 병원으로 가 간호하고, 밤에는 남편이 퇴근 후에 교대했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치료는 더 이상 없었다. 시어머니가 계속 집에 가고 싶다고 해서 3월 중순경, 김 집사네로 모셔 왔다. 김현옥 집사는 일주일 동안 거의 뜬눈으로 어머니를 돌봤다. 암이 폐까지 전이돼 숨 쉬기조차 힘들어 하는 시어머니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이기려고 눕혀 달라, 앉혀 달라 계속 요구했다. 그때마다 일일이 김 집사의 손길이 있어야 했다. 상처 부위 드레싱도 온전히 김현옥 집사의 몫이었다.

어머니를 병간호하면서도 김 집사는 천국을 향한 소망을 잃지 않도록 계속 복음을 전했다. 그러던 지난 3월 말, 전날 시어머니를 돌보느라 한 숨도 자지 못한 김 집사는 그날 낮에도 시어머니가 위독해 눈 붙일 겨를 없이 계속 간호했다. 오후가 되자 시어머니는 힘없이 눈을 감고 계속 자기만 했다.

“어머니”라고 불러 보았다. 시어머니는 “응. 예수 피” 대답하고 눈을 감으셨다. 시간이 한참 지나도 잠에서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또 “어머니”라고 불렀다. 시어머니는 “응. 예수 피” 답하고 또 잠들었다. 평소와 다른 시어머니의 모습에 교구장에게 전화를 했다. 작정 기도회에서 부르짖어 기도한 후 교구장은 밤 10시경 심방해 주었다.

교구장은 시어머니의 모습을 보더니 “얼마 안 남으신 거 같다”며 찬송을 부르자고 했다. 평소 시어머니가 좋아하던 찬송가 28장 “복의 근원 강림하사”를 찬양했다. 그 순간, 눈을 감고 있던 시어머니가 눈을 번쩍 떴다. 소리는 내지 못하고 입을 벌리면서 찬양을 따라 했다. 김 집사는 남편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어머니 천국 가게 해 주시라고 주님께 간절히 통성기도를 했다.

이윽고 교구장이 “주님, 이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더니 “어머니의 모습을 보세요”라고 말했다. 그 순간 김 집사는 깜짝 놀랐다. 병에 찌들어 주름지고 고통으로 가득했던 얼굴이 주름 없이 환하게 밝은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아. 천국 가신 분은 이렇구나.’

시어머니의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에 힘입어 천국 갔다는 것이 실감나고 도무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믿어졌다.

김현옥 집사의 시어머니는 이렇게 70세를 일기로 육신의 삶을 끝내고 지난 3월 31일, 본향인 천국으로 돌아갔다. 시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며 병수발까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김현옥 집사는 시어머니께 효도하게 하시고 천국 가시도록 섬기는 일에 자신과 남편을 사용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렸다.  

김지영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47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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