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새해 담임목사 칼럼] ‘그 때 그 시간 연세가족과 나’

등록날짜 [ 2020-01-09 10:19:11 ]



주님이 주신 새해는 주를 위해 살자.

자신의 영혼의 때를 위해 살자고 다짐하며 출발한,

2019년 새해를 맞은 그때가 어제처럼 지나갔다.

세월은 광속(光速)보다 빠른가 보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말씀하셨다.

세월 속에 사는 육신의 때는 영원(永遠)이라는 시간 개념 속에서

그저 한 경점(更點)과 같다고.

 

어느덧 2020년이 시작됐다.

지난해를 뒤돌아보니 아쉬움과 후회만 남아

내 영혼의 외침이 견딜 수 없는 함성이 돼

회개와 각오를 만들어 내는구나.

지난 2019 4월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사랑하는 연세가족의 기도의 함성,

애타는 눈물의 호소, 금식의 절규,

이 모든 것이 어디 담임목사의 연약함 때문만이랴!

 

목사님, 설교 안 하셔도 좋으니 살아만 계셔 주세요.”

담임목사를 덥석 끌어안으며 조용하지만 애절함 가득했던

어느 성도의 눈물 가득한, 영혼의 갈망하는 그 목소리.

이것은 어쩌면 연세가족의 애절한 생명의 절규였습니다.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주님도 들으셨으리라.

왜 나는 담임목사로서

연세가족을 이토록 애타게 했던가? 아프게 했던가?

 

사랑하는 연세가족이여,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또 감사합니다.

내 인생이 마감되는구나 생각하며 심한 고통에 처해 있을 때

연세가족의 기도와 눈물, 전 성도의 금식의 함성은

하나님의 마음을 진동케 했으며

담임목사의 마음을 넉넉히 감동케 했습니다.

또 한없이 울고 또 울게 했습니다.

부축하는 이들의 힘을 빌려

철퍼덕 앉아 있는 나의 몸을 일으켜 세워 놓고

그들의 손에 이끌려 강단에 설 때면

신음 소리를 내뱉으며 주저앉을 듯한,

아니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나약한 나의 육체.

기력 없는 나 자신과 사랑하는 연세가족에게

나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 육체의 연약함은 뒤로하고

나의 육체를 붙들고 그 시간만큼은 그토록 강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설교를 마치고 강단을 떠날 때

다시 시작되는 고통과 나도 모르게 내뱉는 끓는 듯한 신음 소리

나만이 알고 있는 고통을 끌어안고 나오면서

언제나 나의 잘못, 곧 죄를 찾고 또 찾아봅니다.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연세가족의 기도를 들으소서.

 

이렇게 그날도 또 그다음 날도

오늘까지 주님은 그렇게 이 종을 사용하셨습니다.

이것은 이적 중의 이적이었습니다.

우리 연세가족의 기도의 응답이 해낸 것이었습니다.

연세가족이여, 감사, 또 감사합니다.

설교하다 죽으리라 작정할 때

내 마음은 하늘의 소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설교하다가 못 죽고 강단을 떠날 때면

못 죽은 아쉬움도 적지 않았습니다.

고통에 고통이 더해 갈수록 주님 계신 천국에 가고 싶었습니다.

피 쏟으신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신 주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연세가족을 두고 갈 수 없는 아쉬움이

나를 지금까지 강력하게 붙들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요, 연세가족의 기도였습니다.

죽도록 주님을 사랑합니다. 연세가족을 사랑합니다.

내 생애 다 드려 사랑합니다.

우리 연세가족이여, 기도, 눈물, 금식, 감사 또 감사합니다.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연세가족에게 한없이 무거운 짐만 되는 담임목사를

그토록 사랑하며 담임목사를 통해 전해지는 성령의 목소리를

절대 필요로 하는 연세가족이 외치는 기도의 함성은

전 세계 어느 교회에서도 볼 수 없는,

연세가족과 담임목회자만 갖는 특성일 것입니다.

 

주님이 흘리신 피로 맺어 주신

성도와 목회자의 사랑과 관심은

속죄를 위해 주신 예수 피의 복음이 전파되는 한

아무도 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언제든지 주님을 사랑하며 살자.

언제든지 주님을 사랑하다가 죽자.

언제든지 성도를 사랑하며 살자.

언제든지 성도를 사랑하다가 죽자.

이것은 주님이 내 안에 계셔서

작으나마 나를 주님 피 흘리신 정신으로 사용하시는

주님의 핏소리요, 성령의 인격적인 사랑의 감성이요,

연세가족의 애절한 갈망인 것입니다.

 

주가 날 위해 십자가에 피 쏟아

영원한 죄로 인한 지옥의 고통에서 구원하신

주가 주신 목회자의 당연한 신앙 양심의 표현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담임목사에게 육체의 고통이,

저 천국을 향한 영혼의 소망이 가득 차 있을 때의 일입니다.

주여, 사랑하는 연세가족과 함께하는 나의 남은 인생에

피 쏟아 허락하신 저 천국 소망이 가득 차 넘치게 하소서.

 

사랑하는 연세가족이여,

한 해 동안 연세가족의 기도와 눈물과 금식이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또 지칠 줄 모르고 전도하고

내가 맡은 영혼 끌어안고 울고 또 울며 애타하고

자기의 모든 일을 제쳐 놓고 죽을 만큼 충성했던

연세가족의 주를 위한 충정이 하늘에 사무친 것은

여러분의 수고와 영혼의 때를 위한 드림이

지난 모든 날로 분명히 말해 주고 있지 아니한가.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타다 남은 초 토막 같은 내 인생을

주님께서 당신을 위해 알뜰하게 사용하시다가

육체의 숨이 꺼진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으리.

나의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타다 남은 초 토막 같은 인생을

연세가족의 영혼 구원을 위해 알뜰하게 사용하다가

육체의 숨이 꺼진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으리.

 

사랑하는 연세가족이여,

육체가 끝나는 그 시간까지 분초를 아끼며 주를 위해 살자.

주와 함께 충성하자. 다음 그 날을 위하여-

주와 함께 가자. 저 천국을 향해서-

어느 날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육신을 내던지고

기도와 땀,  예수 피의 구원의 은혜 꼭 끌어안고

애타게 매달렸던 응답 꼭 붙잡고

죽도록 충성하다 후회 없이

연세가족 모두 다 한 영혼도 빠짐없이 저 천국에서 만나자.


2020년을 주신 주님 앞에

주님 영광을 위해 후회 없이-!

자신의 영혼의 때를 위해 후회 없이-!

예수와 함께 살자.  그리고 죽고 또 죽어

최후의 날에 부활의 영광을 만나 보자.





위 글은 교회신문 <65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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