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열왕 이야기 <29>] 정권에 눈이 먼 여인의 최후
유다 여왕 아달랴

등록날짜 [ 2012-09-19 13:22:14 ]

왕에 오른 후 자기 손자들도 무참히 죽여
6년간 악행 저지르다 쿠데타로 목숨 잃어

아달랴는 북이스라엘 아합 왕과 이세벨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남유다 왕 여호사밧과 아합이 협정을 맺고 각자가 둔 아들딸을 정략으로 결혼하게 했는데, 아합 집안 딸이 바로 아달랴다. 남유다로 시집온 이후 남편 여호람 왕이 죽고 아들 아하시야가 재위 1년도 안 되어 죽자 아달랴는 여인으로서는 최초로 다윗 왕통을 이어 왕이 되었다.

<사진설명> 왕의 씨를 진멸하는 아달랴.

하지만 그녀는 다윗 왕실에 들어와 왕권을 손에 쥐자마자 다윗 계통의 혈연 관계자를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쓸어 죽인다(대하22:10). 그리하여 6년을 다스렸다. 열여섯 살쯤 궁중에 들어와서 24년을 보냈으므로 나이 40세에 왕이 되었고, 6년 동안 왕 노릇을 하였으니 46세쯤에 죽었다. 나이 40세에 여왕이 되어 6년간 다스렸는데 그 나이 때라면 정권욕도 강하고 무엇을 해보려는 욕망도 컸을 것이다. 아달랴는 한창의 나이였으므로 악을 행하였다면 굉장한 악행을 많이 저질렀을 것이다.

아달랴는 특별히 우상숭배 하는 일을 장려했을 것이다. 자기 어머니 이세벨을 따라서 두로나 시돈에서 행하던 악질적인 바알 숭배, 아스다롯 숭배를 유다 국민에게 퍼뜨리면서 다윗의 왕통 자체를 흐리게 하는 무서운 사단적인 기계 노릇을 한 것이다.

마귀의 도구인 자가 다윗 왕실 가운데 들어앉아 가장 높은 지위를 계속 누렸다. 권력이 강한 자리로 자꾸 올라가더니 마침내 통치권을 한손에 쥐어 버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어떤 피할 길, 숨을 길을 내주지 아니하였다면 다윗 왕통도 아주 못쓰게 되어 깊이 죄에 빠질 뻔했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유다 국민도 죄 가운데 깊이 침몰하고 말았을 것이다.

아달랴가 일으킨 쿠데타는 불시에 일으킨 것이 아니다. 유다 왕궁으로 들어와서 약 25년간 편안히 있다가 왕실의 어른이 되니까 벌인 일이 아니다. 그는 상당 기간을 계획하고 치밀하게 부하를 기르며 준비하여서 변란을 일으켰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최고 권력을 쥐고서 아무 방비도 없던 왕의 씨들을 다 도륙했다. 자기가 보호해야 할 다윗 혈통을 다 죽여 버렸던 것이다. 최고 권력을 장악할 기회가 오자 지금까지 엎드려 있던 맹수가 먹을 것을 보고 비호같이 뛰어나가 잡아채듯이 아달랴는 권력을 장악하여 왕위를 주장할 수 있는 모든 자를 철저하게 숙청하고 진멸해 버렸다. 그리고 그는 왕권을 6년 동안 찬탈했다.

이 여인의 쿠데타는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느냐 할 때, 사단이 지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장성과 그 활동을 어떻게든지 파괴하고 없애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작태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아달랴의 시부인 여호사밧 왕은 경건하다면서도 이 세상의 행복 추구를 버리지 못했다. 북이스라엘과 우호 관계를 공고히 하고자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우상숭배자들과 사귀었다.

왕가끼리 서로 인연을 맺으려고 진행한 정치적 혼인과 아달랴라는 여인이 유다 왕실에 들어옴으로써 불행은 시작되었다. 결국, 다윗 왕통으로 들어온 아달랴는 지상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 현실 속에서 중요한 자리에 올랐다. 하나님 나라의 전진을 방해하는 사단의 그릇으로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다윗의 왕통을 파멸하려는 사단의 악계에 그만 틈을 주고 만 것이다.

여호사밧은 자기 태자와 아합 왕의 딸을 혼인시켜서 위대한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고 하였다. 지상 왕국들의 화친, 국제적인 평화, 상호 협력과 공동 번영이라는 위대한 정치 목적을 이루는 좋은 방편이라고 생각하여 아합의 딸인 아달랴를 데려왔다. 그것이 정치적인 면에서 보자면 얼마나 번듯하고 훌륭하냐 말이다. 여호사밧이 그렇게 경건하다 하고 늘 기도하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 말씀의 큰 원칙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아달랴는 여왕으로 6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으나, 그녀의 치세(治世)는 엉망이었으며, 백성은 악명 높은 아달랴를 저주했다. 백성은 아달랴 정권이 개혁되기를 기다렸으나, 당시 제사장 여호야다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아달랴 통치기간 7년째 되는 해에 군대와 전국의 족장들을 소집하여 개혁할 것을 선언했다. 그리하여 제사장 여호야다를 중심으로 전군이 쿠데타를 일으켰고 여왕 아달랴는 궁전 어귀에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위 글은 교회신문 <30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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