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열왕 이야기 <32>] 전쟁 승리 후 교만하여 망하다
유다 왕 아마샤

등록날짜 [ 2012-10-16 11:43:44 ]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기고도 감사하지 않아
스스로 전쟁 일으켰다 패하고 백성은 등 돌려

남유다 왕 요아스가 47세에 죽자 그 뒤를 이어 아들 아마샤가 25세에 왕좌에 올랐다. 통치 초기, 아마샤는 요아스처럼 좋은 왕이었지만 차츰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왕이 되었다. 아마샤 왕이 추진한 주요 정책은 견고한 국방을 갖추는 것이었다.

강한 군대를 이루고자 남유다 내 20세 이상 남자를 조사하니 30만이나 되었다. 왕은 그들 외에도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은 100달란트를 주고 용병 10만 명을 고용했다. 가슴 뿌듯할 만큼 대군을 거느렸으니, 아마샤는 그 어떤 이방 나라와 싸워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 무렵 예언자 한 사람이 왕을 찾아왔다.

“어떤 하나님의 사람이 아마샤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왕이여 이스라엘 군대로 왕과 함께 가게 마옵소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곧 온 에브라임 자손과 함께하지 아니하시나니 왕이 만일 가시거든 힘써 싸우소서 하나님이 왕을 대적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이다 하나님은 능히 돕기도 하시고 능히 패하게도 하시나이다 아마샤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내가 일백 달란트를 이스라엘 군대에게 주었으니 어찌 할꼬 하나님의 사람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으로 왕에게 주실 수 있나이다”(대하25:7~9).

왕은 마침내 예언자가 한 충고를 수용하여 이스라엘에서 온 용병들을 돌려보내라고 조치했다. 그러나 전투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어 좋아해야 할 용병들이 반대로 펄펄 뛰며 분노했다. 그들은 귀국길에 유다 여러 성읍을 습격해 살인과 약탈을 자행했다. 희생자가 자그마치 3000명에 달했다.

아마샤는 아직도 30만 대군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는 늘 에돔 족을 쓸어 버려야겠다는 야심이 있었다. 에돔 족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권과 이집트 나일 문명권을 연결하는 교역로 부근에서 약탈을 일삼아 유다 왕국에 직접 손해를 끼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에돔 족은 이삭의 쌍둥이 아들이며, 야곱의 형 에서 후손이면서도, 이집트를 탈출한 야곱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을 부단히 괴롭혔다. 에돔 족은 기회만 있으면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힐 것이 뻔했다.

아마샤는 30만 대군을 이끌고 에돔 족의 근거지인 세일 산으로 진격했다. 남동쪽으로 내려가면 아라바 골짜기가 사해 아래로 길게 뻗어 홍해 아카바 만으로 이어진다. 이 아라바 골짜기를 동쪽으로 가로지르면 해발 800미터가 넘는 세일 산이 우뚝 솟아 있다.

아마샤가 거느린 군대는 이스라엘 용병을 돌려보내면 더 많은 것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 말씀대로, 사냥과 전투에 용맹하고 힘이 센 에돔 족과 싸움을 벌여 대승을 거둔다. 그런데도 아마샤는 하나님께 감사는커녕 어처구니없는 배신을 자행한다. 에돔이 섬기던 신상을 예루살렘 왕궁으로 옮겨간 것이다.

고대에는 한 나라가 섬기는 신상을 노획해 가는 것이 일종의 전통이긴 했으나, 하나님을 섬기는 유다 왕으로서 신상은 금지 목록 1호로서 손대서는 안 되었다. 우상을 만들지도 말고 우상에 절하지도 말라는 하나님의 엄격한 계명을 어기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자처하는 어리석은 짓이었다. 더구나 아마샤는 왕궁에 둔 그 신상에 분향하며 경배까지 했다.

하나님께서 예언자를 왕에게 다시 보냈지만 아마샤는 이전처럼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아마샤는 에돔을 이긴 후, 의기양양하여 북이스라엘의 요아스 왕에게 사자를 보내 싸움을 걸었다. 요아스는 이스라엘과 비교하면 대국인 아람과 전투를 끝낸 뒤였고, 그 전투에서 승리하여 예전에 빼앗긴 성읍들을 되찾았다. 그런데 또 동족끼리 전투를 벌여 백성을 죽이고 싶지 않은 요아스는 유다 왕국에 사자를 보냈다. 그러나 아마샤는 어떻게든지 북왕국 이스라엘과 일전을 치르고 싶었다.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드디어 남북 두 형제 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요아스 왕이 많은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을 향해 공격했다. 그러자 아마샤 군대는 맥을 못 추고 도주했다. 아마샤 왕은 요아스 왕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요아스는 예루살렘까지 쳐들어가 견고한 성벽을 200미터 가까이 무너뜨렸으며, 성전으로 들어가 금과 은으로 만든 여러 기물을 탈취했고, 왕궁으로 들어가 귀한 보물들과 많은 사람을 볼모로 잡아 사마리아로 돌아갔다. 이런 참담한 패배는 남유다 역사상 보기 드문 사례로 꼽힌다.

그 후 북이스라엘 요아스 왕이 죽었다. 그리고 아마샤도 남유다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아마샤 왕은 백성에게 존경받기는커녕 원망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무모한 전쟁을 일으켜 나라와 백성에게 엄청난 피해만 준 탓이다. 결국 아마샤는 자기 군사에게 죽음을 당했다.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30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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