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숙면은 마치 죽은 것과 같다. 눈을 감았을 뿐인데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러갔다. 잠든 사이에 지나간 시간은 당사자에게는 ‘존재하지 않은’ 시간이다. 잠은 세상과 세월에서 단절시키고 건너뛰게 만든다.
잠은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리셋(reset, 초기화)’ 버튼과 같다. 영의 눈으로 보면, 육신과 분리된 영혼이 사망과 음부에 귀속되지 않은 죽음은 그냥 ‘잠’이다. 잠자고 일어났는데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된다. 곧 예수를 진정 믿는 자에게는 죽음이 없다.
주님은 죽음과 부활을 가르치면서 기이한 말씀을 하신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16:28). 그러면 그때 주님과 함께 있던 제자들과 무리 중에 2천 년 넘게 산 신비한 존재가 있는가? 그런 뜻이 아니라 그들 중 생명의 부활에 참예할 자를 일컫는 말씀이다. 생명의 부활에 참예할 자들은 죽은 상태가 아니라 잠시 ‘자는’ 것이다.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7:59~60).
스데반이 죽었을 때, 성경은 ‘잔다’(ἐκοιμήθη, 에코이메데, fell asleep)라고 표현했다. 이는 죽음의 미화(美化)가 아니라 주님 눈으로 볼 때 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부활을 믿는 자라면, 죽은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자는 자(κοιμηθέντας, 코이메덴타스, who have fallen asleep)요(살전4:14), 주님이 강림하실 때 함께 와서 먼저 부활에 참예할 자들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올리우신 그대로 강림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살아남은 자도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고 성경은 명확한 순서를 알려주었다(살전4:16~17). 그러므로 위 성경 본문에서 언급된 잠의 본질을 영적으로 이해한다면,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는 자”는 모두 살아 있을 때 공중에서 주를 만난다. 주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공중에 들려 올리신 후 물리적으로는 2천 년이 지났으나 영적으로 구원받은 모든 이에게는 짧은 시간이다.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계20:13~14). 사망(death)과 음부(hell) 속에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는 영어로 ‘모두 이송하다’(deliver up)라는 뜻이다. 심판대 앞으로 모두 보내진 후 각각 심판받아 불못에 던지우는 ‘둘째 사망’이야말로 진정한 죽음, 사망이다. 따라서 사망과 음부의 권세에서 벗어나 잠든 자는 천 년이 하루 같은 주님의 시간 속에서 잔다 할 수 있으나 사망과 음부, 곧 지옥에 속한 자는 하루가 천 년 같은 음부에서 고통당하다 심판대에 선 후 불못에 던지워진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