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 ‘마지막 때는 이러하니’(126)] 성경을 통해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마지막 때는 이러하니’(126)

등록날짜 [ 2016-07-25 18:56:28 ]

육신의 생각은 우리를 바르게 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나
하나님 말씀만이 바르기 때문에 그 말씀대로 살아가야

예수님의 제자들을 살펴보면, 신분이나 출신이 좋은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유달리 학식이 뛰어난 사람도, 부유한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그 시대에 외진 부류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예수께서 특별히 아끼고 사랑하신 베드로, 요한, 야보고는 모두 어부 출신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천하고 보잘것없는 신분이었지만,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살았기에 그들의 신앙 발자취를 따르기를 원합니다.

바른 행동으로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람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역시 하나님께 부름받을 당시, 부유한 위치에 있거나 학식이나 덕망이 높았다는 표현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에 즉각 순종하는 믿음의 행보를 보였다는 구절밖에 없습니다. 또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당대의 의인으로 여기신 노아도 신분이 높았다거나 학식이 뛰어났다는 말은 없습니다. 다윗 역시 자기 형제들에 비해서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는 말째 아들에 불과했습니다. 다만 노아와 다윗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 말씀을 목숨보다 크게 여겼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들을 크게 들어 쓰셨고, 그들의 이름을 믿음의 선진 반열에 길이길이 남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인정하는 자를 하나님은 웅장하게 쓰십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자의 특징은 정직하고 심지가 곧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말씀을 인정하고, 그 명령을 받는 즉시 복종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행동한 사람들은 세상의 눈으로 볼 때 불쌍하기 그지없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베드로는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를 죄에서, 저주에서, 지옥 형벌에서 인류를 구원하신 구세주라고 전하다가 최후에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당한 죄인 중의 괴수 예수의 도를 전하는 자라고 경멸하고 모욕했지만, 베드로는 하나님 앞에 목숨을 내놓고 복음을 전하는 담대함을 지닌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최초의 순교자인 스데반 집사 역시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이 던진 돌에 맞아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지만, 주님이 보실 때는 충격적인 감동의 최후였기에 하늘 보좌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영혼을 맞이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행7장). 우리는 내 목숨을 버릴지라도 주님의 명령에 따라 사는 일에 거역할 의지가 전혀 없어야 합니다. 내 목숨을 버릴 정도로 하나님 말씀이 바른 줄 알고 신앙생활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성경이라는 바른길로 가라
성경에 ‘죄(罪)’를 뜻하는 말로 ‘하마르티아’라는 헬라어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본래 ‘궁사가 쏜 화살이 과녁에서 빗나갔다’는 뜻입니다. 화살이 목표물을 맞히지 못하면 아무 쓸데없이 버려지고 맙니다. ‘하마르티아’, 즉 죄는 하나님 말씀에서 빗나갔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죄짓지 않으려면 하나님 말씀에서 빗나가지 말고 말씀 한복판으로 바르게 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려면 말씀이라는 길로 바르게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가는 사람은 육신의 생각대로 살아서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롬8:6). 육신의 생각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과 반대되는 이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했습니다. 영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이고, 하나님의 생각을 표출한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생각을 보고, 알고, 가지고, 바르게 가야 합니다.

성경은 바른길로 가도록 기록한 하나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경홀히 여기고 무시하는 사람은 자기 생각대로 살아 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성질나는 일이 생기거나 기분이 상하면 신앙생활을 그만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저 신앙생활을 자기 자신에게 기분 좋고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환경에 맞춰서 쉬운 길로 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내 환경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환경 속에서 가야 합니다.

하나님 뜻만이 우리에게 이루어져야
누가복음 1장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다윗의 자손 요셉의 정혼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말합니다. “아들을 나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어처구니없는 명령으로 보입니다. 마리아는 요셉의 정혼녀이기에 다른 누구의 자식도 낳을 수 없다고 항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침착하게 천사가 전해 준 하나님의 말씀에 즉시 순종했습니다. “주의 계집종이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마리아가 겪은 일은 당시 사회적인 상황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윤리나 도덕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오해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자신이 무슨 고통을 당해도 좋으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에게 수태되어 출산되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세상이 말하는 바름과 하나님이 말하는 바름이 다르다는 점을 명료하게 보여 줍니다.

육신과 세상의 환경은 하나님 말씀대로 바르게 가지 못하도록 항상 방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를 바로 살게 해 주십니다. 바르게 살도록 가르치신 것이 하나님이시요, 바르게 살게 힘 주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주셔서 우리를 의의 바른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실 때 평생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만이 바른 삶으로 인도하기에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만이 우리에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8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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