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칼럼] 현대 신앙인의 천로역정

등록날짜 [ 2025-06-11 13:19:20 ]

<사진설명>멸망의 도시에서 천상의 도시로 가는 도로 계획(천로역정, 1821).


오직 기도하여 주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항상 감사하며

하늘나라를 소망하는 것이야말로

현대인의 영적 좌절에 대한 해답


오늘날 많은 이가 무언가를 이루려고 버둥대고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힘겨워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는 일자리 부족, 심한 경쟁, 불안한 미래 앞에서 존 번연의 『천로역정』(1678)에 나오는 ‘절망의 늪’과 같은 현실에 부딪친다.


현대인들이 깊고 어두운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17세기 존 번연이 그린 주인공 크리스천의 여행과 매우 비슷하다. 튼튼한 발판 없이 늪을 건너려는 시도는 더 깊이 빠지는 결과를 낳았다. SNS 시대의 비교 문화는 이 늪을 더욱 깊고 넓게 만들었고, 각종 미디어에 노출된 다른 이의 성공과 행복에 자신을 비춰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 탓에 괴로워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자신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이 늪을 건너려 하지만, 크리스천처럼 혼자 힘으로 이 늪에서 빠져나오려는 시도는 계속 실패로 끝난다. 


더 많은 노력, 더 많은 성취, 더 많은 인정이라는 유혹은 오히려 더 깊은 늪으로 이끈다. 이러한 실패를 반복하며 물질적 성공을 추구할수록 영적으로는 더 공허해지는 역설을 가져온다. 크리스천이 등에 진 무거운 짐처럼, 현대인들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와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 그리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짊어졌다. 이 짐은 걸을수록 더 무거워진다.


십자가 앞에서 벗어던진 짐

『천로역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크리스천이 십자가 앞에서 짐을 내려놓는 순간이다. 이 짐은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거나 자신의 능력으로 의로움을 증명하려는 시도를 뜻했다. 그러나 십자가 앞에서 이 짐은 저절로 풀어졌다. 이는 우리에게도 같은 진리를 말해 준다. 자신의 노력과 공로로 인정받고 구원받으려는 시도를 내려놓을 때 진정한 자유가 시작된다고 말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본질상 공짜로 주어졌다. 이는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성과와 능력을 중시하는 세상에서 아무 대가 없이 주어지는 선물은 의심하기 쉽다. 하지만 이 역설적 진리야말로 복음의 핵심이다. 오직 예수님의 속죄의 피로 이루어진 구원은 우리의 노력이나 자격과 상관없이 주어졌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크리스천의 짐이 풀어진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참자유를 경험한다.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은 단순한 감정적 위로를 넘어 삶의 실제 변화로 이어진다. 더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은 깊은 평안을 가져다준다. 예수로 말미암은 조건 없는 사랑을 경험하게 되면, 자기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깨닫는다. 이제 인정을 받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에서 모든 것이 비롯된다.


조지 뮐러의 무릎, 하나님만 의존하는 삶

크리스천은 ‘해석자의 집’에서 원리가 실천으로 이어지는 교훈을 배웠다. 마찬가지로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였다면, 그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실천적 단계가 필요했다. 여기에서 조지 뮐러의 삶은 강력한 본보기가 된다.


19세기 영국의 조지 뮐러는 고아원을 운영하며 오직 기도로만 필요한 것을 구했다. 그는 어떠한 요청이나 모금 활동 없이 하나님께만 간구했다. 놀랍게도 그의 기도는 고아 수천 명을 돌보기에 충분한 응답을 받았다. 뮐러의 일기에는 특정 금액이 필요한 날과 정확히 그 금액이 익명의 기부로 도착한 사례가 수백 건이나 적혀 있다. 이는 하나님을 의존하는 삶의 실제적 증거였다.


뮐러의 기도생활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구체적 간구였다. 그는 모호한 기도가 아닌 명확한 필요를 하나님께 말씀드렸다. 둘째, 참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응답이 늦어져도 그의 신뢰는 흔들리지 않았다. 셋째, 미리 감사하는 것이었다. 응답을 받기 전부터 이미 감사를 표현했다. 이런 태도는 현대 신앙인에게도 실천적 모델이 된다.


『천로역정』 속 크리스천은 ‘의심의 성’에서 ‘믿음의 열쇠’를 발견하여 탈출한다. 마찬가지로 기도는 우리 시대의 불확실성과 의심을 이기는 열쇠이다. 매일 기도하는 것은 영적 중심을 잡아 주는 닻 역할을 한다. 작은 일부터 하나님께 맡기는 연습은 점차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를 의존하는 복된 자세를 키워 준다.


천국을 향한 여정, 좌절을 넘어선 희망

『천로역정』은 크리스천이 마침내 천국에 도달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는 인생의 모든 어려움과 시련이 일시적이며, 영원한 기쁨을 향한 과정임을 보여 준다. 오늘날 신앙인에게도 이 진리는 강력한 위로와 소망이 된다. 지금의 좌절과 어려움은 여정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분에 불과하다. 천국을 향한 시선은 일상의 고난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


존 번연이 묘사한 ‘허영의 시장’은 물질주의와 소비주의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와 놀랍도록 닮았다. 이 시장을 지나는 순례자처럼, 우리도 유혹과 압박 속에서 천국을 향한 초점을 유지해야 한다.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는 관점은 일시적인 어려움에 압도되지 않을 힘을 준다. 매일의 선택에서 영원한 가치를 우선시하는 삶은 깊은 만족과 평안을 가져다준다.


좌절을 경험하는 이 시대에 『천로역정』은 귀한 교훈을 준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천국에 이르기까지 기도로 그분을 의존하는 삶은 현대인의 영적 좌절에 대한 해답이다. 『천로역정』의 크리스천처럼 우리도 절망의 늪에 빠지고, 의심의 성에 갇히고, 허영의 시장에서 유혹받는다. 그러나 은혜의 십자가, 기도의 무릎, 천국을 향한 시선은 우리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도록 한다.

신앙의 여정은 직선이 아닌 원과 같다. 매일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고, 은혜를 새롭게 받아들이며, 기도로 의존하고, 천국을 바라보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순환적 여정에서 우리는 기도하여 영력을 키워야 한다. 좌절은 여전하나, 이에 대응하는 우리의 능력은 강해진다. 『천로역정』 속 비유가 수백 년을 넘어 오늘날에도 공감을 얻는 이유는 신앙 여정의 본질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대는 변해도, 영혼의 갈망과 하나님의 은혜는 영원하다.




위 글은 교회신문 <903호> 기사입니다.


정한영 안수집사

신문발행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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