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사자를 강건하게 사용해 주소서!”
등록날짜 [ 2026-01-22 10:28:08 ]
호세아서 11장 2절은 “선지자들이 저희를 부를수록 저희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부를수록 저희가 점점 멀리한다는 말이 가슴 아픕니다. 자녀를 양육하면서 야단을 쳐서라도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애를 쓰는데 자녀들이 마음 상해 하고 원망하면서 부모를 멀리할 때 부모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참합니다. 하나님과 북이스라엘의 사이가 이렇다는 것입니다.
또 “저희를 부를수록 점점 멀리한다”라는 말은 우상을 가까이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면 우상을 가까이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중간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낸 후 40년간 광야를 지나게 합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조금만 어려움이 닥치고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들은 애굽을 그리워했습니다. ‘애굽에 있을 때는 마음껏 먹고 편하게 있었는데’라며 모세를 원망하고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광야의 고난 중에 구원하신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가나안에 정착하면서부터 우상숭배가 더 심해졌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면 멀리할수록 더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배생활을 소홀히 하면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다가 세상을 좇게 됩니다. 그럴수록 예배를 회복하고, 기도하여 성령 충만함으로 하나님을 더 가까이해야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을찌라도 내가 저희를 고치는 줄을 저희가 알지 못하였도다”(호11:3). 자녀의 걸음마를 가르칠 때 부모는 계속 지켜봅니다. 심하게 넘어지지 않는다면 그냥 두기도 합니다. 살짝 넘어져서 아이가 울면 일으켜 세워 줍니다. 어떤 경우에는 혼자 일어날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러다 정말 위험한 순간에는 팔을 뻗어 자녀를 안아 보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결정적으로 위험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들을 팔로 안아서 보호해 주셨습니다. 신명기 1장 31절에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 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이스라엘도 하나님께서 팔로 안듯이 보호하려 하시는데 그 사랑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광야를 지나듯 고난과 어려움이 닥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걸음마를 배울 때 잠시 넘어진 것과 같습니다. 넘어지는 순간 당장 달려가 일으켜 세울 수 있지만 하나님은 일부러 두십니다. 우리 혼자 일어서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과 환란을 다 이겨 내면 그만큼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징계와 책망과 심판이 그들을 회개케 하여 고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원망하고 불평불만 하면서 하나님을 점점 멀리하고 있습니다.
/장항진 목사(동탄연세중앙교회)
위 글은 교회신문 <93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