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중앙교회 30년사] 흰돌산기도원을 구입하기까지 과정
1995년

등록날짜 [ 2016-04-05 13:31:30 ]

목회자세미나를 할 때마다 인원이 넘쳐 어려움 겪어
장소에 큰 어려움 겪으며 기도원 구입 필요성 대두



<사진설명> 전국에서 초교파 목회자부부 3000여 명이 참석한 목회자부부영적세미나에서 목회자들이 설교를 들은 후 통성으로 기도하고 있다.

연세중앙교회가 교파를 초월해 개최하는 사모세미나와 장년부 성회, 청년부 성회, 중.고등부 성회를 비롯해 1년에 수차례씩 여는 성회들을 성공리에 치러 내는 일은 성령께서 맡기신 중대한 사명이었다.

회를 거듭할수록 참석 인원이 급격히 늘어나서 성회 시기에 맞춰 그 많은 사람을 수용할 기도원을 빌리는 일은 매우 힘겨웠다. 안수집사들이 성회를 개최하기 5∼6개월 전부터 마땅한 기도원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샅샅이 다니다시피 했다. 수소문 끝에 어렵사리 성회 규모에 맞는 기도원을 찾아내도 사용 기간이 맞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또 성회 개최 성수기에 기도원을 사용하다 보니 재정적 부담도 컸다.

특히 1992년에 개최한 제5차 사모영적세미나부터는 참가 신청자가 4000명을 넘어서는 상황이었는데, 성회 장소로 물색해 놓은 기도원에는 불과 1000~1500명 정도만 숙식할 수 있었다. 추가로 부대시설을 설치하지 않으면 성회를 진행할 수 없는 형편이어서 사전에 등록하지 않고 당일 몰려온 1000여 명은 그냥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사모 한 명이 세미나에 참석해 은혜받아 변하면 그 교회 전체가 살아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성회 장소 문제로 되돌아가는 사모들을 바라보는 윤석전 목사의 심정은 몹시 안타까웠다.

흰돌산기도원 구입의 필요성
윤석전 목사가 성령의 감동에 따라 선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성 넘치는 하나님 말씀에서 생명을 얻고자 사모해서 몰려드는 수많은 인원을 수용하여 변화시키는 일을 감당할 넓은 장소가 절실히 필요했다.

연세중앙교회 전 성도는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초교파 성회를 개최할 수 있고, 아무리 많은 인원이 몰려와도 성회를 넉넉히 치러 낼 수 있는 대규모 기도원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 당시 사모세미나와 실천목회연구원에 참석하는 많은 목사와 사모도 이 문제에 공감했기에 지속적인 기도와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재정적 어려움=사모세미나 참석 인원이 대폭 늘어난 1992년에도 기도원 구입 문제를 교회 내에서 공식적으로 논의하기에는 시기상조였다. 성산동 성전 부지를 구입한 데 이어 노량진성전까지 구입한 터라 중도금과 잔금을 치르기에도 급급한 재정 상황이었다. 성도들은 기도원을 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데에 공감하면서도 눈앞에 놓인 현실 앞에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윤석전 목사 역시 선뜻 나서지 못한 채 마음 쏟아 간절히 기도하며 때를 기다렸다. 계속되는 성전 건축에 이어 기도원 구입 문제로 성도의 생활이 어려워질까 염려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목회자를 바로 세우고 수많은 성도의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이 맡기신 사역을 생각하면 기도원 구입 시기를 더 늦출 수는 없었다. 성령으로 한국 강산과 나아가 전  세계 목회자와 성도를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하는 사명을 받은 주의 종 윤석전 목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따를 결심을 굳혔다.

윤석전 목사가 기도원 부지 구입 의사를 밝힌 1992년 후반부터 연세중앙교회 안수집사들은 전국 방방곡곡을 샅샅이 다니면서 기도원 부지를 찾았다. 성회 규모와 기타 제반 여건을 고려하다 보니 수십 군데를 둘러봐도 마땅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91년에 사모세미나를 개최했던 흰돌산기도원 측에서 조심스럽게 기도원 인수를 제안했다. 여러 가지 조건을 면밀히 검토한 후 1995년 2월, 흰돌산기도원 인수를 결정하고 계약했다.

윤석전 목사는 흰돌산기도원 계약 건을 성도들에게 공표하지 못한 채 9개월간 침묵했다. 연이어 성전 건축헌금을 마련하느라 전 재산을 바치다시피 한 성도들이 어렵게 생활하는 형편을 생각하면 기도원을 인수한다는 말을 쉽게 꺼낼 수 없었다.

■기도원 구입=1995년 11월, 기도원 인수 대금 중 잔금만 남겨 놓은 상황에서야 성도들에게 흰돌산기도원 구입 사실을 발표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윤석전 목사의 우려와 달리 성도들은 그동안 사모하며 열망하던 기도원을 소유했다는 소식에 감격해 “할렐루야”로 감사의 함성을 터트렸다. 특히 깨끗하고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흰돌산기도원이 우리 기도원이 됐다는 발표에 기뻐서 성도들은 온통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연세중앙교회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주의 사역에 승리의 깃발을 꽂는 감격의 순간이었다. 장익희(현 안수집사)의 회고다.

“매년 집회를 할 때마다 기도원 임대료를 수천만 원씩 내야 했어요. 그마저 마땅한 기도원을 구하지 못해 항상 어려움을 겪었지요. 사모세미나와 목회자세미나를 치러 내는 일이 우리 교회에 맡겨 주신 사명이라 여겨 충성을 다하는 성도들의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 기도원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 목사님과 성도들의 열정이 오늘의 흰돌산수양관을 만들어 냈습니다.”

사모영적세미나를 목회자부부영적세미나로 변경
1995년부터 목회자부부를 대상으로 세미나를 열었다. 1988년에 시작해 1994년 가을 제7차에 이르기까지 목회자 사모를 대상으로 개최한 ‘사모영적세미나’를 1995년 제8차부터는 그 대상에 목사도 포함해 ‘목회자부부영적세미나’라는 명칭으로 열었다. 목사들도 세미나에 참석하게 한 배경에는 사모들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다.

사모세미나를 7차까지 진행하자 사모들은 말씀에 은혜받아 크게 변화됐다. 성도들의 영혼을 천국 가도록 돌아보는 사모의 사명을 깨달아 밤낮 교회에서 기도했다. 또 지옥 가는 한 영혼이라도 더 살리려고 전도에 힘썼다. 이를 반기며 좋아하는 목사도 있었지만, 인본주의 습관에 젖어 성령 충만한 역사를 거부하고 사모를 핍박하는 목사도 많았다. 사모가 잠자야 할 밤 시간에 교회에서 부르짖어 기도할 뿐 아니라, TV 보는 재미에 빠져 있는 목사에게 함께 기도하자고 강권하니 영의 사람과 육의 사람 간에 다툼이 벌어졌던 것이다.

자신의 남편 목사도 윤석전 목사의 세미나에 와서 말씀 들을 기회를 얻어 하나님의 요구대로 영혼 살리는 목회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모들이 목회자부부세미나를 강력히 요청해 왔다.

이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행하신 우리 주님께만 영광과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린다.
 

위 글은 교회신문 <47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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