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영적생활 1·35] 신앙생활의 고난과 방해를 이기는 힘

등록날짜 [ 2019-01-22 01:22:29 ]

고난 이기면 두 가지 유익이 있다
우리가 주님이 가신 그 길을 따라가면서 고난을 이기면 두 가지의 유익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길 수 있는 힘, 즉 영력이 넘쳐나게 되어 더 성장한 영적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유익은 핍박과 고통과 어려움에 대한 보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면류관과 상으로 갚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움과 고난은 그 길을 가는 우리에게 고통이 아니라 그만큼 하늘에 영광과 상이 있게 하니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겸하여 받을 수 있는 축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편히 가는 자에게는 상이 없지만 고난의 길을 가는 자에게는 영광의 상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교회가 궁동 대성전 건축공사를 할 때의 일입니다. 땅 속에 묻힌 단단한 돌을 깨뜨리는 작업을 할 때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돌을 찍어 깨트리는 공사 소리가 시끄럽다고 야단입니다. 그런데 저와 우리 교인들에게는 그 소리가 아름다운 음악 소리보다 더 좋게 들립니다. 아름다운 성전이 건축되어 가고 있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믿는 일 때문에 핍박과 고통과 수많은 어려움이 와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시험이 오고 환란이 오거든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의 상이 크다”고 하신 말씀의 약속 때문입니다. 하늘의 영광의 상이 보이기 때문에 환란과 핍박도 즐거운 것입니다. 신령한 영혼의 때가 건설되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내 것이 된다고 확신할 때는 핍박도 기쁘고, 고통도 기쁘고, 환란도 기쁜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핍박과 고통과 어려움이 오면 올수록 그것이 청아한 음악 소리로 들려야 합니다. 가정의 핍박 소리, 환란의 소리가 들려오거든 하늘의 상이 크다는 약속의 소리를 함께 들으며 감사하십시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7~18)


우리는 핍박과 고통을 가져와 신앙생활을 못하게 하는 마귀역사, 반대하는 육신의 소욕을 밤낮으로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길 수 있는 힘과 기업을 주셨습니다. 이길 수밖에 없도록 나 대신 환란과 핍박을 당하시고 목숨까지 내놓으셨습니다. 하찮은 것 때문에 망하고 좌절하여 질 수 없습니다. 만약에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는 구원의 과정에서 지고 포기하셨다면 우리 인류는 얼마나 비참한 신세가 되었겠습니까? 그분이 이기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나라 갈 때까지 모든 고난과 핍박과 어려움을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이깁시다.


모든 방해는 지나가는 과정일 뿐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어떤 날은 상사로부터 “자네는 일을 이렇게밖에 못하나?” 하는 소리도 듣게 됩니다. 그러면 속으로 ‘자존심 상해서 못하겠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꾹 참습니다. 그래야 자식들 가르치고 먹고살 수 있기 때문에 창피스럽게 면박을 당해도 도리어 그만두라고 할까 봐 겁내면서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이런 직장생활보다 더 큰 것이 영원히 사는 신앙생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나에게 면박을 주고 자존심을 짓밟아도 나는 하늘나라에 가야 하기 때문에 끝까지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누가 이 길을 막습니까? 이 세상에서 직장의 환경이 가로막고 혹 목숨을 위협하는 일이 가로막는다 해도 신앙생활은 가로막을 수 없어야 합니다. 어떤 것이 가로막아도 신앙생활만은 전진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보면서 ‘이것은 장애물이다. 큰일 났다’라고 큰 일로 생각하면 신앙생활 하는 일에 진짜 장애물이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신앙생활 하는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일 뿐이다’라고 생각하면 아무런 장애 요소가 되지 않습니다. 만약 교회에 가지 못하게 기둥나무에 묶어 놓는다 해도 신앙생활은 막을 수 없습니다. 몸이 묶여 있다면 그 자리에서 예배 드리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영적 생활이기 때문에, 방해하는 것들이 육신은 어떻게 해 볼 수 있을지 몰라도 내 영혼이 하는 일은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묶어 놓았던 기둥에서 풀어 주면 교회에 가면 됩니다. 야단치면 야단을 맞으면서, 때리면 맞으면서라도 교회에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데 핑계 대는 것은 무조건 다 장애물입니다. 신앙생활 하는 일에 장애물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이겨야 합니다. 우리가 하늘나라 가는 일에 방해를 받아서 못 가면 갈 곳은 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사를 걸고 영원한 하늘나라에 도착해야 합니다. 여기에 죽음인들 장애물이 되겠으며, 가난인들 장애물이 되겠으며, 굶주림인들 장애물이 되겠으며, 멸시와 천대와 핍박과 수많은 고통인들 장애물이 되겠습니까?


제가 핍박과 어려움을 당한 것을 아는 목사님들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그 어려운 핍박을 받을 때 도대체 어떻게 이기셨습니까?”


“네. 말을 안 해서 이겼습니다.”


“어떻게 하면 말을 안 하게 됩니까?”


“그냥 지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되었습니다. 지나가는 과정이 내 옷자락을 잡는다고 가던 길을 멈추겠습니까?”


옷자락이 나를 잡아당기는 힘에 의해서 육체가 딸려 가면 나는 옷자락 속에 묻혀 버리지만, 내 몸을 잡아당기는 그 옷을 찢고 나갈 힘과 능력이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능히 옷을 버리고라도 가던 길을 가야 합니다. 이와 같이 신앙생활의 모든 방해는 지나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제발 그 덫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60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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