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영적생활 1·36] 믿음의 실행과 최후의 승리자

등록날짜 [ 2019-01-30 06:57:16 ]

기한 전에 떨어진 열매는 가치 없어
어떤 사람이든지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은 자신의 목숨입니다. 성경도 우리 목숨은 천하보다 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마 16:26).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목숨도 천국 앞에, 영생 앞에는 너무나 작은 것입니다. 목숨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버릴 수 없고, 천국을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썩어 빠진 자존심 때문에, 한 뼘도 안 되는 얼굴 체면 때문에 주의 일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숨이 걸린 일도 아닌데 보잘것없는 것 때문에 예수 그만 믿겠다고 한다면 이 사람의 믿음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와 같은 사람을 농부가 열매를 따기 전에 벌레 먹어 떨어지고, 바람 불 때 떨어진, 기한 전에 떨어진 열매라고 합니다. 이렇게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는 그냥 썩어 버릴 뿐 상품 가치가 전혀 없습니다. 아무 가치 없이 떨어져 썩어간다면 지금까지 농부의 수고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깝지 않습니까?


신앙생활에서 제일 위험한 것은 첫사랑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첫사랑을 찾을 확률은 아주 낮습니다. 다시 그 첫사랑을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기도하고 싶은 열정도 한번 빼앗기면 되찾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아십니까?


지금 내가 성령이 충만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고, 기도의 열정이 불타거든 감사하십시오. 그러나 이것이 날마다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호시탐탐 나를 노리는 놈, 우는 사자같이 노리는 마귀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계해서 절대로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생활만큼은 한 번의 실수라도 용납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생활만은 항상 절정에 있어야 
어떤 마라톤 선수가 42.195㎞를 뛰는데 약 42㎞ 까지는 일등으로 달렸다고 합시다. 그런데 마지막 남은 코스에서 그만 다른 선수에게 아깝게 선두 자리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안타깝게도 결승점에 일등으로 들어오지 못한 그 선수에게 일등상을 줄 수 있습니까? 간발의 차이라도 코스의 마지막 순간에 먼저 들어온 사람이 일등상을 받습니다. 42㎞라는 긴 구간을 일등으로 달려 왔다고 해도 마지막 현재는 그 선수가 일등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과거의 신앙을 보시지 않고 현재의 신앙을 보십니다. 현재가 아름다워야 과거의 것도 아름답게 남습니다. 현재가 망하면 과거의 것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현재가 중요합니다. 살아가면서 다른 것은 다 변할 수 있고 굴곡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좋았다 나빴다 할 수 있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만은 항상 절정에 있어야 합니다. 언제 주님이 내 영혼을 찾으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날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도록 성장해야 합니다(엡 4:13). ‘나는 모자란다. 나는 연약하다. 성경 인물들, 성경 말씀과 비교해 볼 때 내 믿음은 너무나 초라하다’라고 스스로 고백하면서 날마다 자기의 부족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완하고 채워 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성장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를 과거의 모습 그대로 놔두지 않습니다. 점점 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 자기를 만들어 갑니다. 그래서 오늘보다 내일이, 내일보다 모레가, 금년보다 내년이, 내년보다 내후년이 훨씬 더 나은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세월이 가면 갈수록 신앙생활이 나태하고 게을러지고 후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는 사자와 같은 마귀는 항상 우리 생각을 통해서 역사하면서 과거의 신앙생활에만 집착하게 합니다. 교회 여기저기에서 열심히 충성하며 신앙생활 하는 사람을 보면서 “나도 과거에 저렇게 해 봤는데 나는 그전에 어떻게 저렇게 열심히 했는지 몰라. 꼭 저 사람이 과거에 나 같다니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나보다 열심을 내서 뜨겁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자기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나는 왜 저런 열심이 없나? 과거에는 나도 저렇게 살았는데 왜 그 마음이 없어졌나? 나는 왜 이렇게 타락했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간절해야 합니다. 주를 향한 열심과 믿음, 주를 사모하는 마음들은 너무나 값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값진 것들을 하나둘씩 까먹고 빼앗기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지금도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은 자기를 볼 줄 모르는 소경과도 같습니다. 영적으로 점점 더 무능하고 힘없는 자로 퇴화돼 갑니다.


신앙생활은 잘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한없이 사모하다가도 한 번 삐끗하여 그 사모함을 놓치는 순간 그 마음을 다시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모했던 그 마음, 그 진실을 잊어버린 사람들 중에는 자기 스스로 위로받기 위하여 “나는 지금도 사모하고 있다. 나는 지금도 신앙생활을 절실하게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실상은 행동하지 못하고 마음뿐입니다. 사모함을 충족시킬 만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에 신앙생활의 발목이 잡혔는가를 잘 알고 빠져나가야 합니다. 영적 생활이 어디서부터 무너져 내려가고 있는지 빨리 발견해야 합니다. 아무리 과거에 성령이 충만하고 대단한 존재였다고 할지라도 지금 그렇게 안 되고, 지금 그 절정에 못 올라가 있으면 빨리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과거를 보지 않고 현재를 보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속에 이런 마음이 없다는 것은 신앙생활의 큰 기업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뜻대로 살고 싶고, 하나님 마음에 들도록 살고 싶고, 영적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날마다 더 간절해지기를 바랍니다. 이 사모함이 가득 넘치는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계속>

과거에 아무리 성령이 충만하고  신앙생활 충만했다 하더라도
지금은 신앙생활 나태해지고 절정에 올라가 있지 못하면
빨리 정신을 차려야  하나님은 과거의 나를 보지 않고
현재의 신앙상태를 보신다는 것을 명심하고 자기를 돌아봐야



위 글은 교회신문 <61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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