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영적 생활1·40] 예수의 십자가 구원…아들 죽여 피조물 살린 초유의 사건

등록날짜 [ 2019-03-13 18:18:01 ]

예수 피로 맺어진 사랑의 관계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무신론자들은 하나님과 자신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하나님을 막연히 조물주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람들도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천차만별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인격적으로 어떻게 그분을 알고 섬기고 있느냐는 신앙생활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아담’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아담’이란 말은 어느 한 개인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영적 존재’인 사람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지으실 때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영적인 피조물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으신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한 선악과를 먹어 범죄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남으로써 하나님과 사이의 관계가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는 말씀대로 인간에게 영원한 죽음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죗값으로 죽을 인간을 방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 인간의 죄를 담당시키기로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 담당하려면 인간의 육신을 입으셔야 했습니다. 즉 인간의 혈통을 타고 태어나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18:10)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이미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 가정에서 믿음으로 출발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번성하게 하셔서 한 민족을 이루게 하셨고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기 위한 길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을 길 삼고, 이삭과 야곱과 유다와 수많은 믿음의 조상을 길 삼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약 성경은 예수께서 오시는 웅장한 발자국 소리를 기록한 것입니다. 이것을 그리스도의 세계(世系)라고 복음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최종 목적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과 영원한 사랑의 관계를 맺기 위함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고통당하시고 죽으셔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일, 한낱 피조물인 인간을 아들의 핏값으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시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누구도 끊을 수 없는 피로 맺어진 사랑의 관계로 만드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롬5:8).


그러므로 예수로 거듭난 자는 누구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죄와 저주와 질병에서 해방되는 자유를 누리며 사망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인간에게 베푸신 가장 위대한 사랑
이처럼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사건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실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사랑의 절정입니다. 또 하찮은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사랑할 수 있게 한, 천지창조 사건보다 더 위대한 인류 역사상 초유(初有)의 사건입니다.


신앙생활이란 바로 이런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를 인식하고 그 사랑을 변함없이 간직하고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사건을 별로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멸망할 수밖에 없는 나를 위해 자기 아들을 보내서 내 죄를 짊어지고 죽게 하는 놀라운 일을 행하셨는데, 나는 예수를 만나고 예수 믿는 일을 일생일대의 최고의 사건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아무리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그 어떤 초유의 사건을 행하셨다고 해도 그 일이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믿는다면 그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은 물론,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말씀하신 모든 사건이 나와 관련된 현재의 사건이 될 때 나는 측량할 수 없는 축복을 받은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스스로 지옥에서 나올 길이 없고 죄에서 벗어날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내가 죄에서 나오고, 저주에서 나오고, 지옥에서 나오도록 큰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게 하신 초유의 사건이 바로 나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하나님은 자기가 만든 피조물을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서 잔인하게 죽게 하시고, 그 피조물을 멸망에서 건져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는 주님을 신랑처럼 믿고 사랑하는 믿음을 가진 자들을 신부로 맞이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 믿는다는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의 십자가라는 초유의 사건에 깊이깊이 연관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죽으신 사건이 바로 내 죄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죽으심을 소유한 주인공,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신 초유의 사건을 가진 사람이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계속>

하나님 아들이 내가 죄에서 나오고 저주와 지옥에서 나와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큰 역사 이루셔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를 인식하고 사랑을 변함없이 간직하고 유지하는 것


위 글은 교회신문 <61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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