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콤 펜윅 한국 교회 전도기 ⑧] 성탄절 무렵 첫 선교지인 소래 찾다

등록날짜 [ 2010-12-30 11:37:40 ]

6년 전 처음으로 복음 전한 지역 다시 찾으니
구원받은 여러 가정이 사모함으로 펜윅 기다려

12월 25일. 시종(侍從)이라 하는 충직한 ‘소년’과 함께 거세게 쏟아지는 눈발을 맞으며 산길을 갔다.
처음 복음을 전한 황해도 소래에 가기 위해서였다. 북서쪽으로 돌아 서해안을 따라 내려갔으나 소래까지는 아직도 96㎞나 남아 있었다. 조랑말이 뒷다리를 절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주저앉고 말았다. 소들은 수숫단을 먹고 잘 자라지만, 말들은 그것을 너무 많이 먹으면 죽게 된다. 말이 주저앉은 곳 근처에 있는 마을에 호소하니 마을 사람들이 따뜻하게 환대해 주었다.

한국에서는 나그네를 언제나 그렇게 맞이하는데, 마치 한국인들의 혈관에 아랍인들의 피가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마을 사람들은 즉시 가장 좋은 집을 비워 우리가 편히 쓰도록 해 주었고, 이 나라에서는 드문 일이긴 하나 주저앉은 말에게도 안락한 마구간을 제공해주었다. 이곳에서 사흘을 머물면서 구속의 사랑 이야기를 전하였다.
사흘째 되던 날 주인은 “사람들 가운데는 우리가 의지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나는 “그게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하면서 사도행전 4장 12절을 보여 주었다. “그렇다면 당신이 전하는 이 예수를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가엾은 사람! 나는 “온 땅의 재판장께서 공의를 행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을 들어 보지 못한 사람들에 관해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나는 로마서 2장을 인용하였고, 그가 좀 더 캐묻기에 시편 9편 17절을 인용한 다음 그들이 악한지 악하지 않은지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였다. 그러자 그는 호통을 쳤다. “내 조상은 예수를 믿지 않고 죽었소. 예수라는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소. 만약 그들이 지옥에 간다면 나는 그들과 함께 가겠소.” 그때 내 심정이 어땠는지는 말로 형용할 길이 없다.

소래 지역 복음화되다
조랑말이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고, 하룻길을 더 가니 소래로 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질러가면 16㎞가 남은 셈이고, 해변 길로 돌아가면 48㎞가 남은 셈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눈길은 아무도 갈 수 없습니다” 하고 말했다. 나는 “그러나 나는 캐나다 사람으로서 눈을 이용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들은 무덤덤하게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깊이 쌓인 눈을 헤치고 잠시 산을 오르다가 우리는 나무꾼의 샛길을 발견하였다.

미국 인디언들이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썰매에 겨울용 땔감을 싣고 끌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아름다운 고갯길 정상에 이르러 바위들과 상록수들, 눈과 급히 흐르는 여울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정경을 만났을 때, 앞에서 한 꼬마가 외제 손가방을 들고 오고 있었다. 그게 누구 가방인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내가 잘 아는 어느 관리의 아들 것이라고 했다. 그가 올라왔을 때 우리는 소래 사람들이 모두 안녕하다는 소식과, 안제경 선생과 서경조 선생이 뒤따라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큰 바위 위에 올라서서 보니 두 양반이 등성이를 막 올라오고 있었다. “게 누구요?” 하고 소리치자, 내 모습을 본 그들은 눈을 헤치고 황급히 뛰어 올라와 나를 끌어안았다. 밝은 표정에서 그들의 정황을 읽을 수 있었다.

서 선생은 나를 보자마자 가슴을 치면서, “당신을 여기서 뵙다니 하나님이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제 죄를 용서해 주셨군요” 하고 말하면서, 안 선생을 가리키면서 “저 죄인에게도 주께서 자비를 베푸시고 그 죄를 용서해주셨고, 우리 마을 전체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셨습니다” 하고 말했다. 안 선생은 관청에 들러야 했으므로, 서 선생이 나와 함께 가게 되었다. 안 선생은 서 선생으로부터 나를 꼭 자기 아내에게 데리고 가겠다는 다짐을 받은 뒤에 길을 떠났다. 서 선생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잘 아시겠지만, 안 선생 부인은 지난 6년 동안 선생님을 다시 보내 달라고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했답니다.” 우리가 안 선생의 집에 도착했을 때 서 선생은 안 선생 부인을 불렀다. 그녀는 힘없이 뜰로 걸어 나왔다. 불구여서 지팡이에 크게 의지했기 때문이다. 나를 보자 곧장 다가와 내 손을 붙들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주여, 이제 당신의 여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군요, 제 기도를 들으사 선생님을 다시 보내 주셨습니다.”
나는 종종 그때의 광경을 생각하면서, 주님의 면류관을 장식할 보석을 얻는 데 들인 비용에 대한 대가치고는 참으로 풍성한 대가였다고 확신하곤 한다. <계속>  

『한국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말콤 펜윅 저)』에서 발췌

위 글은 교회신문 <22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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