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기독교선교교회연합회 취약계층에 쌀 700포대 전달
“이웃 영혼 주님처럼 섬기겠습니다”
등록날짜 [ 2011-01-05 13:52:02 ]
그의 육신은 저명한 인사들과 함께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대사원에 묻혔지만, 그의 마음은 아프리카에 남아 있었다. 그가 숨을 거두자 원주민들은 조심스럽게 그의 심장을 꺼내어 그가 사랑했던 아프리카에 묻어둔 다음 그의 시신을 영국으로 보내기 위해 해안으로 옮겼다. 그의 이름은 데이비드 리빙스턴이다.
그는 제분업이 발달한 스코틀랜드의 블렌티래셔에서 1813년에 태어났다. 그가 자란 작은 집은 지금 박물관이 되었고 그곳에는 그의 아프리카 생활을 보여주는 물건들과 기억에 남을 만한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다. 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 찾아든 황량한 외로움과 고통을 기록한 부분이 펼쳐진 그의 일기장을 읽을 때면 누구나 감동을 받는다.
“여보, 코로버그에 표류해 던져진 이후 우리는 늘 우리만의 조용한 집을 갖고 싶어 했었지. 이제 당신은 하늘에 있는 우리 집, 그 좋은 집으로 가고 없구려.”
리빙스턴처럼 복음을 위해 가족과 편안한 생활을 등지고 다른 나라로 가는 사람들을 지탱해주는 힘은 무엇인가? 의사로서 고향 스코틀랜드에서 편안하게 살 수도 있었을 리빙스턴을 아프리카에 머물게 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리빙스턴 자신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었다. 아프리카에서 16년을 섬긴 후 스코틀랜드로 돌아온 그는 글래스고우 대학에서 강의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때 그의 팔 하나는 사자의 공격을 받아 이미 쓸 수 없게 된 상태였다. 그리고 스물일곱 번 열대병을 앓은 그의 몸에는 고통의 흔적이 역력했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노예상들과 터키인들과의 싸움으로 말미암아 고달픈 삶을 살아온 그의 얼굴은 햇볕에 그을리고 깊은 주름이 파여 있었다.
“내 나그네의 삶이 가져다 준 외로움과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나를 붙들어준 힘이 무엇인지 아십니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그는 스스로 대답했다. “그것은 약속이었습니다. 가장 고결한 영광을 지닌 귀하신 분의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신 바로 그 약속이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침대 옆에 기대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마태복음 28장이 펼쳐져 있는 손때 묻은 작은 신약성경이 놓여 있었고 20절 옆의 여백에는 ‘존귀하신 분의 말씀’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리빙스턴은 자신이 커다란 희생을 치렀다고 생각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그 질문에 명쾌하게 대답해 주고 있다. “사람들은 제가 아프리카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며 희생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결코 다 갚을 수 없는 우리 하나님께 진 큰 빚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을 되돌려 드리는 것이 희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건강한 생활과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양심과 마음의 평안과 앞으로 다가올 영광스러운 목적지를 향한 밝은 소망으로 그 대가를 지불하는 삶을 희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런 관점과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아가십시오. 절대로 희생이 아닙니다. 오히려 특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빙스턴의 시신이 웨스트민스터 대사원의 안식처를 향해 런던 시가지를 지나가고 있을 때 한 사람이 크게 울었다. 그의 친구가 친절하게 그를 위로하며 리빙스턴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리빙스턴을 위해 우는 것이 아닐세. 날 위해 우는 거라네. 그는 귀한 일을 하며 살다 세상을 떠났지만 나는 헛된 삶을 살아왔다네.”
“하나님 나라와 관계없는 것이라면 내가 가진 그 어떤 것이나 그 어떤 소유물에도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리빙스턴의 좌우명이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2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