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쓰신 사람들]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선교사

등록날짜 [ 2011-05-19 09:43:50 ]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 불릴 만하고 1792년에 그가 쓴 선교에 관한 책은 마틴 루터의 95개 조항에 버금갈 정도의 영향력을 기독교계에 끼친 사람, 그가 바로 윌리엄 캐리다. 

1761년 영국 노텀턴 근교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윌리엄 캐리는 농부가 되고 싶었지만 알레르기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16세에 그는 구두 만드는 일을 배웠다. 그리고 그 후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
19세에 그를 수습공으로 고용한 사람의 처제와 결혼한 이 젊은이는 세상에서 성공하기에는 매우 부적합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매우 잘 알려진 그 유명한 “하나님께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에 도전하라”는 내용을 포함한 설교를 한 후, 그는 선교사역을 하려고 인도로 가기를 자원했다.
캐리의 아내 도로시는 처음에 완강히 반대했고, 그의 아버지도 인도에 가는 것은 완전히 미친 짓이라고 말했다. 그러던 중, 그를 수습공으로 고용했던 동서(同壻)인 형님이 세상을 떠났다. 캐리는 처형의 경제적인 책임까지 져야 하는 처지가 되었기에, 인도로 향하는 배에 올랐지만 배가 영국을 떠나기 전 그의 8세 난 아들과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가 다시 인도로 향하는 배를 탔을 때 그의 아내는 어쩔 수 없이 그와 동행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행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결국 행복하지 못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건강을 잃었고 성격도 나빠졌다. 그녀는 모든 것을 그만두고 영국으로 돌아가자고 남편을 졸라대며 쉴 새 없이 그를 비난했다.

생계를 잇고자 동인도 회사에 찾아갔으나 거절당한 캐리는 어느 인도인 공장에서 일하면서 밤에는 성경을 번역하거나 설교를 했다. 8세짜리 어린 아들 피터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도로시는 정신이 나갔고 다시는 마음의 평정을 찾지 못했다. 180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녀는 그리스도를 알리려는 남편의 마음에 하나가 되어주지 못했다. 또 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그가 사랑한 벵골 사람 중 한 사람도 회심하지 않았다. 이렇게 캐리는 실패를 경험하면서 견뎌야 했다.

포기하고 그만두어야 할 이유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바로 윌리엄 캐리였다. 1812년 창고에 불이 나 그가 쓴 문법책 두 권과 여러 개국 언어로 설명한 방대한 사전 그리고 그가 번역한 성경 전체가 불에 타 버렸지만, 그는 무릎을 꿇고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다시 할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했다. 캐리에 대해 워런 위어스비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는 십 대에 이미 6개 언어로 성경을 읽을 수 있었다. 나중에 그는 콜카타에 있는 폴트 윌리엄 대학에서 동양 언어학 교수가 되었고, 세람푸르(Serampur, 인도 벵골 주에 있는 도시)에서 그의 출판부는 300만 명을 위해 40개 언어와 방언으로 성경을 번역했다.”
윌리엄 캐리는 1834년 그가 사랑한 인도에 그리고 전 세계에 선교의 마음을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위 글은 교회신문 <24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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