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기독교선교교회연합회 취약계층에 쌀 700포대 전달
“이웃 영혼 주님처럼 섬기겠습니다”
등록날짜 [ 2011-07-20 14:23:05 ]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은 역사상 누구보다도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의 자서전 『내 모습 이대로(Just As I am)』 표지에는 다음 글이 적혀 있다.
“십자군의 전사 빌리 그레이엄은 200만 명 이상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그 밖에도 수백만 명이 라디오와 텔레비전 그리고 영화에서 그의 메시지를 들었다. 그는 중국과 북한 등 철의 장막에서도 그리고 모든 대륙에 걸쳐 환영을 받았다.”
빌리는 종종 하늘나라에 가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주님, 왜 저였습니까?” 하고 묻는 것이라고 했다. “왜 노스캐롤라이나 시골 소년을 선택하셔서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설교하게 하셨는지요?”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 드릴 때 가장 큰 능력을 주신다고 한다면, 빌리의 질문에 부분적인 대답이 될 것이다. 빌리가 출판하는 『결정(Decision)』이라는 잡지 편집을 맡고 있으며, 빌리와 거의 40년을 함께 일한 셔우드 엘리엇 월트는 빌리를 매우 잘 아는 사람이다. 그는 “십자가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면 빌리 그레이엄을 설명하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한다”고 말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원래 이름은 윌리엄 프랭클린 그레이엄 2세(William Franklin Graham Jr.)다. 그는 노스캐롤라이나 주(州) 샤를로트 외곽 지대에서 자랐다. 장로교 교회에 다니는 부모는 그를 “빌리 프랭크”라고 불렀다. 빌리가 십 대 소년이었을 때 그리스도인 사업가들이 그레이엄 가족의 목장에서 일일 기도회를 했다. 바로 그 기도회에서 버넌 패터슨은 세상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며 말씀을 전할 일꾼이 샤를로트에서 나오게 해주시기를 기도했다. 빌리는 자신이 그 기도의 응답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빌리의 말을 따르면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도 마지못해 혹은 의무감으로 가족들과 함께 교회에 다녔다. 그러던 1934년 설교 말씀에 능한 남침례교 전도자 몰드카이 파울러 햄이 샤를로트를 방문했다. 전도자는 빌리가 다니는 고등학교 학생들의 비도덕적 품행을 공공연히 비난했고, 학생들은 그의 전도 집회를 방해하기로 계획했다. 처음 빌리는 그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구경하려고 전도 집회에 참석했다.
집회에서 성령께서는 빌리의 마음에 죄를 깨닫게 하셨고, 몇 차례 더 그 집회에 참석한 후 빌리는 회심했다. 그리고 곧 하나님께서 사역자로 자신을 부르신다는 것을 느꼈다.
부르심을 받은 후 빌리는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좀 완곡하게 하고 회개에 대한 강조를 피해 주기를 원하는 자유주의자들에게 고소당했다. 또 그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상당한 보상을 해주겠다는 정치인들의 유혹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인기를 사용해 개인적인 부를 축적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빌리 그레이엄 재단에서 정한 비교적 낮은 봉급으로 생활했고 저작권으로 받은 큰 금액은 기독교 사업에 헌금했다.
월트는 『빌리(Billy)』라는 전기에서 빌리의 영적 생활이 십자가에서 시작할 뿐 아니라, 그의 생활과 사역도 십자가 설교가 중심이라고 말한다.
“그는 언제나-그가 알고 있는 9명의 미국 대통령이건 모든 대륙에서 설교를 들으려고 앉아 있는 대중이건-모든 사람을 십자가 아래로 인도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25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