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알아야 할 믿음의 사람들] 최상의 선교 전략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
제임스 허드슨 테일러(1832~1905)

등록날짜 [ 2013-11-19 10:21:35 ]

중국내지선교회 창립자로 자비량 선교에 앞장 서
50년간 중국 곳곳에 선교사 파송하며 평생 바쳐

제임스 허드슨 테일러(James Hudson Taylor)는 1832년 5월 21일, 영국 요크셔 반슬리(Barnsley)에서 태어났다. 테일러의 아버지는 약제사였지만 거주하던 지역의 감리교 설교자로도 활동했다. 테일러의 부모는 아들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받기를 희망했다.

열다섯 살에 은행에 취직한 테일러는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던 중 시력이 나빠져서 직장에서 쫓겨났다. 돈을 좇던 희망이 절망으로 바뀐 것이다.

삶의 의욕이 없이 집에서 빈둥거리던 열일곱 살 되던 어느 날, 책에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사역’에 관한 내용을 읽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직전에 하신 성경 말씀이 떠올랐다. “다 이루었다!” 그러자 테일러의 귀에는 “내 죄를 해결하시려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라는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그 자리에서 테일러는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달았고, 자신이 지은 죄를 구속하시려고 온전히 값을 치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테일러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하며 기도했다. 마침 어린 시절에 읽은 메드 러스트의 『차이나(China)』가 생각났다. 테일러는 <글리너>라는 선교 잡지를 구독하고 중국협회(Chinese Association)에 편지를 보내 사역 소개와 자료를 요청했다. 그 후 반슬리 교회의 목사를 찾아가 중국 선교에 뜻이 있다고 고백했다. 예수께서 유대 땅에서 열두 제자와 70문도에게 “지팡이와 신발만 갖고 전도여행을 가라” 하신 것처럼 자신도 그렇게 출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목사는 “그런 생각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시던 시절에나 통하는 일이지, 지금은 어림없다”고 비웃듯 말했다.

성인이 된 후에 테일러는 이 일을 기억하며 “나는 어른이 됐지만, 예수님 때나 지금이나 주님 말씀에 순종하면 제자들에게 일어난 기적과 이적이 똑같이 나타날 것”이라고 순전한 믿음을 지켜나갔다.

테일러는 중국 선교사로 가려고 의학과 중국어를 배웠다. 또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고자 몸부림쳤다. ‘오직 믿음만이 선교의 수단’이라며 교회생활과 전도생활을 충실히 했다.

테일러가 큰 병원에서 실습생으로 일할 때, 테일러의 아버지와 중국선교협회에서 생활비를 부담해 주겠다는 제안이 왔다. 이에 테일러는 생활이 안정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도가 게을러지고, 그만큼 중국 선교 준비와 훈련도 안일해지리라 생각하여 제안을 거절했다.

테일러는 의학 공부를 했으나 정식 의사는 아니었다. 주님의 사역을 했지만, 정식 안수를 받은 목사도 아니었다. 하나님께만 의지하려는 테일러의 신앙 양심이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나 준비가 아닌 실제적인 선교훈련을 하기 원했다. 사람들이 볼 때 어리석게 보였으리라. 그러나 그는 인간의 계획보다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만을 의지하려고 기도하며 준비했다.

1853년 9월 19일,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복음화협회의 선발자로 중국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항해 중이던 배에서도 그리스도를 전했다. 한번은 갑자기 바람이 심하게 불어 배가 방향을 잃었다. 암초에 부딪히면 금방이라도 좌초될 것만 같았다. 테일러를 비롯해 크리스천 네 명이 선상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간청하며 기도했다.

진심을 담아 기도하던 중, 테일러의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 그는 곧장 갑판으로 달려가 일등항해사에게 돛을 올려 바람을 맞을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항해사는 갖은 욕설을 퍼부으며 테일러의 말을 무시했다. 바로 그때, 배 가장 높은 곳에 있던 망루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테일러는 항해사에게 소리를 지르며 돛을 펴라고 외쳤다. 돛을 펴자마자 배에 유리한 순풍이 불어 정상적인 항해를 할 수 있었다.

테일러는 약 다섯 달간에 걸친 위험한 항해를 거쳐, 중국 상하이에 도착했다. 상하이는 마치 전쟁터와 같이 소란스러운 도시였다. 물가가 폭등하여 생필품을 구할 수 없었다. 테일러는 심한 먼지 때문에 눈병까지 앓았다. 이런 비참한 땅에 사는 것도 불쌍한데, 구원의 복음을 모르고 죽으면 더욱 안타깝다고 생각한 테일러에게 구령의 열정이 더욱 불타올랐다.

15개월간 10여 차례 이상 전도여행을 강행했다. 중국어 신약성경 1800권과 2000권이 넘는 전도 책자를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그 당시 문맹자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만큼 책자를 나누어 주었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테일러는 전도여행 중, 많은 중국인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이는 설교를 유창하게 잘하거나 해박한 지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길 잃은 영혼을 향한 간절함 때문이었다.

1865년 6월 27일, 테일러는 ‘중국내지선교회(China Inland Mission)’를 창립했다. 이후 중국내지선교회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비량 선교사를 파송하는 선교의 전초 기지가 되었다.

중국 전역을 복음화하는 일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으나, 테일러는 한 가지 전략을 세웠다. “만약 복음 전파자 1000명을 확보한다면, 그리고 이들 각자가 매일 50명에서 200명에게 복음을 전한다면 3년 이내에 모든 중국인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테일러는 내지선교회를 통해 중국 모든 성에 선교사를 파송했다. 선교회가 설립된 지 30년이 지난 1895년에는 선교사 640명 이상이 중국을 위해 자신들의 삶을 던졌다.

1905년 6월 3일, 73세인 테일러는 중국 호남성 북쪽 지방에서 전도여행 중에 생을 마감했다.

/정리 정한영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36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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