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알아야 할 믿음의 사람들] 기도로 하나님께 붙들린 설교자
크리스마스 에번스(Christmas Evans, 1766~1838)

등록날짜 [ 2013-10-22 10:37:39 ]

이른 새벽에 일어나 규칙적으로 하루에 세 번 기도
오직 구원과 직결되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매진

1766년 12월 25일, 영국 웨일스에 있는 가난한 농가에 둘째 아들이 태어났다. 성탄절에 태어났기 때문에 부모는 ‘크리스마스’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 부모는 장차 이 아이가 웨일스 역사에서 설교 강단을 빛낼 유례없는 큰 인물로 성장하리라고는 미처 알지 못했다.

크리스마스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일찍 숨을 거두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탓에 어머니는 소년 크리스마스를 그녀의 친오빠인 제임스 루이스에게 보냈다. 크리스마스는 외삼촌 농장에서 6년 동안 불행한 세월을 보냈다.

크리스마스의 외삼촌은 성격이 사납고 술주정뱅이였다. 크리스마스는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뿐 아니라 교육을 받지 못하여 17세가 될 때까지 글을 읽거나 쓸 줄 몰랐다. 기본 예법조차 배우지 못해 날마다 싸움에 휘말려 흉기에 찔리고, 익사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 크리스마스는 자신이 처한 비참한 생활을 견디려고 아편에 의지했다.

크리스마스가 17세 됐을 때, 그가 살던 르윈도완 지역에 부흥이 일어났다. 크리스마스를 포함한 많은 젊은이가 예수를 영접했다. 크리스마스는 자신이 죽는다면 참혹한 지옥에 가게 될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두려움 때문에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얻고자 예수를 갈망하고 찾았다.

크리스마스는 은혜 받은 몇몇 청년과 함께 성경을 읽으려고 교회에 모여 촛불을 켜놓고 글자를 공부했다. 열심히 배워 한 달 만에 웨일스어로 인쇄된 성경을 읽었으며, 영어로 발간한 성경도 빌려 봤다. 당시 그는 예수를 만난 후 배워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배우려는 열망으로 가득 찼다.

사단의 훼방과 목회자의 꿈
크리스마스가 알고 지낸 옛 친구들은 그가 갑작스럽게 변하고 회심한 사실에 반감을 느꼈다. 어느 날 친구 6명은 크리스마스를 심하게 폭행했다. 이 사건으로 크리스마스는 한쪽 눈을 실명했다. 실명하던 날, 크리스마스는 심판의 날에 관해 생생한 꿈을 꿨다. 이 꿈을 꾼 후 크리스마스는 평생 하나님 말씀을 전하겠다는 거룩한 꿈을 품었다.

1786년 크리스마스는 침례교회에 들어갔다. 1790년 23세가 되었을 때 교회에서 정식으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792년 크리스마스 에번스 목사는 웨일스 북서부에 있는 앵글시라는 도서 지방으로 파송 받아 20년간 목회했다.

앵글시 섬에는 침례교 지방 교회가 열 개나 있었다. 교단이 에번스 목사를 파송했을 때 그곳 교회들은 분열해 있었고, 영적으로도 침체에 놓였다. 에번스는 금식을 선포하며 하나님께 돌아오려면 회개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설교했다. 이와 함께 여러 시간 동안 중보기도로 하나님께 매달렸다.

앵글시 섬 사람들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진심으로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그곳을 부흥케 하셨다. 지방 교회는 10개에서 20개로 늘었고, 2년 동안에 6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새롭게 그리스도를 믿으며 교회에 등록했다.

크리스마스 에번스는 스스로 배우고 깨우쳤다. 히브리어와 희랍어를 독학했다. 비록 한쪽 눈을 잃었지만, 집에서나 밖에서나 어디서든지 끊임없이 책을 읽었다. 거의 매일 설교했고, 주일에는 두 번 설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에번스는 선택을 잘못했다. 샌디먼파(Sandemanian) 교리를 받아들이는 실수를 저질렀다. 스코틀랜드 로버트 샌디먼(Robert Sandeman) 에서 발생한 이 교리는, 믿음이 단순한 지식적인 대상이라고 가르쳤다. 샌디먼파는 감정은 중요하지 않고 로마 가톨릭 교리를 지식적으로 인정하고 믿는 일이 믿음의 전부라고 주장했다.

샌디먼파 교리가, 위대한 설교자인 에번스의 삶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는데 그 후 그는 몇 해 동안 샌디먼파의(Sandemanism) 교훈을 받아들이는 바람에 메마르고 냉랭한 영적 상태에 빠졌다.

앵글시 섬에서 펼친 15년 사역이 물거품이 될 뻔할 만큼 치명적인 일이었다.

기도로 회복
에번스는 모든 설교 사역을 뒤로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기도하기로 마음먹고 하나님과 독대하는 자세로 눈물과 기도로 부르짖었다. 진심 어린 회개는 하나님 마음을 움직였다. 1832년 에번스는 카나번에 있는 교회에 부임했다. 그곳은 에번스의 마지막 사역지가 되었다.

에번스는 순수 복음주의 설교자로 돌아왔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역을 크게 붙드셨고 대규모 군중은 그가 전하는 설교를 들으려고 몰렸다. 1838년 7월 15일(주일)에 에번스는 스완시에서 설교 말씀을 두 차례 전했다. 아침에는 ‘탕자’에 관한 설교를, 저녁에는 로마서 1장 16절을 본문으로 “누구에게든지, 언제나 복음을 전하라”는 메시지를 말했다. 설교를 마무리하면서 조용한 목소리로 청중에게 “오늘이 내 마지막 설교입니다”라고 말했다. 다음 날, 그는 몸져누웠고, 7월 20일 금요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하늘 본향으로 갔다.

크리스마스 에번스를 평가할 때, 높은 명성과 복음 전도의 열정을 지닌 인물로 말하지만, 여기에서 빠뜨릴 수 없는 사실은 그가 기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오직 진심 어린 마음으로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여기에 응답하셨다. 그는 규칙적으로 이른 새벽에 일어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애썼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다.

극도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야생의 한복판에서 자랐고, 정규 교육 혜택도 받지 못했지만 에번스는 오직 구원과 직결되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매진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그를 쓰셨고, 많은 죄인과 교회 그리고 반쪽 크리스천들에게 소생할 기회를 주었다.

/정리 정한영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35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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