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일념] 모든 것을 품는 사랑

등록날짜 [ 2023-02-15 12:00:41 ]

예수께서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는 신성 모독죄로 매를 맞고 고통을 당하다가 결국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를 지셨지만, 누구 하나 변호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죽음에서 살려 낸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 나사로, 나인성 과부의 독자, 회당장 야이로의 딸은 물론 불치병으로 고통당하다가 예수께 고침받은 문둥병자, 소경, 앉은뱅이, 벙어리, 귀머거리 어느 누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실 때 그 이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도대체 다 어디로 간 걸까요? 법정에서 “빌라도여, 그는 나를 죽음에서 살린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에게 도대체 무슨 죄가 있다고 십자가형에 처합니까”라고 변호하는 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심지어 수제자 베드로는 주님께서 가야바의 뜰에서 모진 매를 맞을 때 주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했습니다. 얼마든지 예수를 변호할 만한 큰 은혜를 받았는데도 단 한 명도 변호하지 않은 것은 자기에게 피해가 돌아올까 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목사도 주님께서 맡기신 양을 주님의 명령대로 사랑하지만, 그토록 사랑을 쏟아부은 성도에게 욕을 먹는다는 것은 참기 어려운 고통입니다. 그동안 쏟아부은 사랑이 크면 클수록 배반당할 때 받는 아픔도 큰 법입니다.


그러나 목사는 배신으로 인한 아픔보다 그 성도를 걱정하는 마음이 더 앞섭니다. 하나님께서 지옥 갈 우리 영혼을 포기할 수 없어 독생자를 보내 대신 십자가에 죽여서라도 죗값을 갚고 인류를 구원하셨듯이, 목사도 자기를 배반하고 돌아선 성도의 영혼이 잘못될까 봐 눈물로 더 기도합니다. 이런 목사의 애절한 심정을 누가 알겠습니까. 영혼을 섬기는 순간부터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마음이 가슴속에 흘러넘치기 때문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78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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