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칼럼] 4월에 거는 기대

등록날짜 [ 2010-04-05 08:33:47 ]

참담한 역사의 현장에도 복음은 시대를 변화시켜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한 부호 가문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당시 신문물을 배우는 데 적극적이었던 그 아이의 부친은 일찍이 기독교인이 되었고 그 아이도 청소년기에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청년이 된 그는 ‘조선 민중이 교육을 못 받아서 복음화에 문제가 된다’고 여겨 대학 설립을 통한 민중교육 강화를 주장할 정도로 신앙심이 돈독했고 안목이 넓었지요. 그런데 조국이 일본의 침략으로 풍전등화 상태가 되자 그는 조국광복 운동에 투신했습니다. 그리고 1909년 10월 24일, 조선 독립항쟁 역사에 거대한 궤적을 남겼지요. 러시아 하얼빈 역에서 조선 침략의 중심인물,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입니다. 이토가 쓰러지자 즉시 그는 “하나님, 포악한 무리를 무찌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가 바로 31세의 안중근 의사입니다.

안 의사가 순국한 지 100년이 되는 요즘, 역사가들은 그의 사상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토 처단은 동양평화를 위해 결행한 것이므로 앞으로는 한일 두 나라가 화합하여 동양평화에 이바지해 주기 바란다”는 그의 유언 속에 담긴 ‘동양평화론’은 진정한 의미의 세계적인 평화 운동으로 역사가들로부터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상이 바로 그의 신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합니다. 사형 집행 전, 안 의사는 전 가족들에게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과 아들을 성직자로 키워주기를 소망했으며, 조선의 성직자들에게는 민족 복음화에 노력하여 냉담한 교우들의 신앙을 다시 세울 것을 부탁했습니다. 또한 처형 날짜를 예수님이 돌아가신 금요일로 정한 것도 그가 원해서였다는 사실은 ‘동양평화론’사상의 근간이 그의 신앙이었다는 주장에 진실의 무게를 더해줍니다.

사실, 당시 일제의 폭압에 대항하여 구국운동을 하던 선각자 중 대다수가 기독교인들이었던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사랑, 자유, 평등, 해방 등의 이념을 체득한 기독교인들은 신앙을 바탕으로 항일민족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것이지요. 즉, ‘예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이 구국운동가들의 심령을 이끌어 갔던 것입니다.

2000년 전 유대 땅에서 구원의 소식을 전했던 예수! 자신의 몸에 온 인류의 죄를 담고 십자가에서 고독한 죽음의 길을 갔던 사랑의 화신 예수! 그 예수는 3일 만에 부활했고 믿는 자들에게 영생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이 기쁜 소식은 수많은 전도자의 생명 건 헌신에 의해 고대 로마를 거쳐 서유럽 전역을 기독교 지역으로 만들었지요. 그 물살은 동으로 뻗어 조선 땅에 닿았습니다. 그리고 안중근을 휘감아 동양평화의 위대한 꿈을 꾸게 했습니다. 또한 당시 선각자 중 많은 이들의 애국 충정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2010년, 그들의 후손이 사는 해방된 조국의 현재는 그리 녹녹치 않습니다. 그래도 소망을 품는 것은 참담한 역사의 현장 속에서도 복음은 믿는 자들을 움직였고 시대를 변화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절의 이 4월이 기대됩니다. 복음의 약동하는 소리가 믿는 자들의 마음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부활될지. 그 소리에 순종하는 하나님 백성의 움직임이 이 땅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역사는 믿는 자들의 움직임으로 바뀌어 왔다는 사실을 역사 스스로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18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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