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칼럼] 가을은 겸손의 계절

등록날짜 [ 2012-10-09 10:25:18 ]

어느덧 내 인생은 가을을 향해 나아가
겸손함으로 앞으로 올 겨울 준비할 것

최근에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 참석했다가 잠시 시간이 비어 벤치에 앉아 가을 햇살을 맘껏 누리며 사색의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불현듯 이름 모를 작은 꽃 한 송이가 내 시선을 끌었다. 어릴 적부터 꽃을 무척 좋아하는 나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아주 작은 꽃이었다.

길모퉁이 작은 공간에 피어난 이름 모를 이 꽃을 감상하려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불편하게 다리를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바라보았다. 봄이나 여름에 진작 피어났어야 할 꽃이 세월이 한참 지난 초가을에 피다니 필시 무슨 사연이 있어  보였다.

신기한 듯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를 살피는 내 마음 안에 시 한 편이 떠올랐다. 아동문학가 박두순이 노래한 시 「꽃을 보려면」이었다. 그는 “채송화 그 낮은 꽃을 보려면 그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그 앞에서 무릎도 꿇어야 한다. 삶의 꽃도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읊었다. 나 역시 이 작은 꽃 한 송이를 바라보려고 나의 기다란 몸을 낮추고 그를 향해 최대한 가까이 낮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 순간 이름 모를 꽃 한 송이가 나를 향해 ‘겸손’이라는 말 한마디를 전해 주려고 세월 느지막이 숨죽이며 피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그의 사연은 나를 향한 아주 값진 선물이었던 것이다.

어느덧 성큼성큼 다가온 이 가을에 내 인생의 계절도 가을 문턱에 다다랐음을 느끼게 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다른 한편, 이제 너의 인생의 가을을 맞아 ‘오직 겸손함으로 열매 맺으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내 마음 안에 깨달음으로 가득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한 송이 이름 모를 꽃을 통해 겸손함으로 다가오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이분과 사귐을 갖는 나만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겸손의 마음은 은혜를 받는 그릇”이라 하였고, 버나드는 “겸손이란 은혜를 얻기 위한 필수과목”이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이에 조지 무어는 “겸손은 하늘의 아름다움을 펼쳐주는 보이지 않는 뿌리”라고 말했나 보다.

하지만 오직 이 겸손의 근원은 참 좋으신 우리 하나님이시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새 생명으로 구원해 주시려고 독생자를 보내 주셨고,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오직 자기를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시면서(요3:34) 온유와 겸손으로 아버지 하나님을 나타내셨으며(요1:18;17:4~7),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께서도 스스로 말하지 않으시고 오직 들은 것을 말씀하시고 장래 일을 알리시면서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셨다(요16:13~14).

신학자 제임스 패커는 겸손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성령의 거룩한 수줍음”(holy shyness)으로 표현했다. 그는 “성령님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 드러내는 수줍음을 가지셨다. 성령님은 자신의 영광을 베일로 감추시고 자신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만 드러내신다. 이 거룩한 수줍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이기도 하다. 예수께서는 스스로 영광을 취하지 않고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다. 이 거룩한 수줍음은 성령의 얼굴을 분별하는 중요한 척도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거룩한 수줍음으로 거룩해진 사람이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기를 심히 부끄러워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시고 영화롭게 하는 데 온통 관심을 갖는 사람이다. 하지만 요즘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이 성령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 풍요로운 가을에 “경건의 신비는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인간의 자리까지 스스로 낮추시는 겸손이다. 죄악의 비밀은 인간이 하나님이 되려고 자신을 스스로 높이는 교만”이라고 말했던 고든의 말을 기억하면서, 이 땅에 샤론의 꽃으로 다가오신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까이서 자세히 바라보고 깊이 묵상하기 위해서는 내게 진정한 겸손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깊이 잠겨 본다. 그리고 내 인생의 가을을 겸손함으로 준비하여 따뜻한 삶의 겨울을 맞이해야겠다고 새롭게 다짐해 본다. 

위 글은 교회신문 <308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

    소셜 로그인

    연세광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