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칼럼] 이단과 같은 종교다원주의 경계

등록날짜 [ 2015-03-17 11:04:29 ]

기독교를 윤리운동 등 학문으로 전락하는 행위 조심

더 교묘하게 지성으로 위장한 거짓 가르침 근절해야

 

 

언제부터인가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신학대학에도 인문학 강의 개설이 활발합니다. 인문학은 진화론의 ‘빠진 고리’처럼 신학이나 신앙의 미진한 면을 보완해 주면서 기독교를 윤리적으로, 지적으로 격상하는 해법의 도구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인문학 강조의 내면에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기독교인의 윤리성 회복이 주된 요소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윤리 교과서가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인간 본질의 변화를 통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변화를 이루며, 세상의 윤리보다 더 고결한 ‘겉옷을 달라 하면 속옷까지 주는’ 삶의 혁명입니다. 그 삶이 사회적 윤리로 표출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윤리적인 가르침을 제공하는 경전으로 간주하는 신학자들을 통해서 자유주의 신학이 출몰하여 유행한 일도 있습니다. 이 유행 속에서 제자훈련이나 모든 신자를 사역자로 만드는 훈련을 마치 윤리운동처럼 추진하다가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면서 학생들의 활발한 움직임이 학교를 활력 있게 합니다. 새벽이슬 같은 학생들을 본질의 변화 없이 인문학으로 변화하게 하려는 운동은 단지 일회성 변화를 시도하는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 내면을 살피고 인간을 이해하자는 인문학 구조 속에서 현재 우리 사회는 ‘사랑’과 ‘평화’라는 이름으로 종교 간의 대화와 상호 인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요구는 교회 밖에서보다는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 더 활발하게 제기하는 상황입니다. 일부 신학자는, 우리 사회가 종교 다원화 사회에 진입했기 때문에 기독교의 유일한 구원관 대신에 다른 종교에도 나름대로 구원이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기독교의 ‘특수한 구원론’이 아니라 ‘보통명사로서 일반적인 구원’이라는 구조가 기독교 구원을 포함한다는 주장을 펴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이 악성 바이러스처럼 급속히 퍼지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시대에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일은 다른 모든 신을 거부하는 행위였습니다. 초대교회의 헬라-로마 문화는 다신교와 종교혼합주의가 일상적인 교양과 지성을 지배하는 삶의 토대였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유일신 신앙은 무신론을 의미할 정도였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세주로 고백하고 영접하는 일은 당시 사회의 지성적인 분위기에 반하는 결단이었습니다.

 

로마 황제 숭배는 정치적인 충성심의 표현이었습니다. 이 행위가 후에는 비록 종교성으로 바뀌었지만, 처음에는 일상적인 정치 행위였기에 이를 신앙 행위로 인식하고 거부하는 일은 탁월한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일제 강점기에 강요당한 신사참배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신사참배를 거부하기도 했고, 수용하기도 했습니다. 수용한 사람들은 신사참배를 종교 행위가 아니라 정치 행위라고 스스로 정당화하며 위안을 삼았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마저도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흑이 백과 뚜렷하게 구별되듯이 로마 황제 숭배와 신사참배는 분명한 우상숭배로 드러났습니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의 주장으로 그리스도인들의 분별을 흐리게 해서 하나님이 가증스럽게 여기는 우상숭배의 지름길을 열어 놓는 종교다원주의 물결이 넘실대고 있습니다. 사단은 유일하신 구세주인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을 변질시키려고 아름답게 포장된 종교학, 세계종교학, 영성학을 전략 도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에 더하여 종교 간의 평화와 대화를 외치는 일부 지성인과 정치가, 종교학자가 기독교의 ‘오직 예수’를 마치 편협한 주장처럼 취급하면서 기독교인이 다른 종교인에 대해 매우 배타적인 자세를 갖고 사회 평화에 기여하지 못하는 것처럼 은근히 공격합니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교회를 파괴하는 이단들과 유사합니다. 이들의 주장은 어떤 면에서 보면 이단보다 더 교묘하게 지성으로 위장한 거짓 가르침입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은 펜 끝에서 나오는 종교다원주의자들의 ‘사랑과 평화’를 뛰어넘는 온 인류를 위한, 우주적인 사랑과 평화입니다. 그 사랑과 평화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오직 예수!

김선배 교수

침례신학대학교 신약학
 

위 글은 교회신문 <42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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