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칼럼] 목회는 참 행복했습니다

등록날짜 [ 2015-08-05 00:18:38 ]

목회 현장에는 무엇보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절박해져

교수 생활은 즐겁고 좋지만 목회는 정말 보람된 현장

 

 

어느 분이 오래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럽 교회는 이미 몰락한 지 오래고, 미국교회는 몰락해 가는 중이고, 한국교회는 몰락하기 시작했다. 유럽 교회가 이런 평가를 받는 데 500년 걸렸고, 미국교회는 300년 걸렸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10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필자는 서울신학대학교에서 35년간 교수로 있다가 정년 은퇴한 후 4년 5개월간 목회하고 은퇴했다. 목회하면서 느낀 몇 가지를 간단히 정리해 보려고 한다.

 

첫째, 영적 변화의 긴박성이다. 교인 중에는 오랫동안 교회생활 했다는데도, 영적으로 보면 아직도 신앙의 깊이가 없었다. 심지어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 “네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고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라는 구절을 체험해야 할 분이 많다는 데 놀랐다. 한마디로 교회 안에도 전도할 대상자가 많다는 점이다. 목회하는 동안 성도들이 체험적 신앙을 갖고, 영적으로 변화하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복음 전하려 했다. 이처럼 목회 방향을 영혼의 거듭남에 두어야 한다는 점을 절감했다.

 

둘째, 신앙전통의 단절이다. 믿음의 가정으로 사는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의 자녀가 어느 정도는 신앙생활을 잘하고 교회에서 충성도 하지만, 상당수가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에 괴로웠다. 신앙의 가정에서 자란 자녀에게 믿음과 영적 유산이 전수되지 않는 현실이 매우 안타까웠다. 이러다가 한국교회는 4~5세대 지나가면 교회가 텅텅 빌 것 같은 위기를 느꼈다. 한국교회 1~2세대 성도들은 자녀에게 신앙적 감동을 주었고 믿음의 모범이 되고 신앙심과 교회 충성의 유산을 확실하게 넘겨주었다. 요사이는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필자가 2001년도에 몇몇 교단 총회록 신자 통계를 살핀 적이 있다. 어느 큰 교단은 영유아와 유치부가 5%, 유초등부가 11% 중고등부가 8%에 불과한데 장년부는 76%에 달했다. 갈수록 비율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그러면 지금 한국교회 중고등부 학생들이 장년층이 된 시기에는 격차가 더 벌어져 결국 교인수가 현재의 7~8%로 줄어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 더 심각한 것은 인구 감소다. 대한민국 인구 규모는 저출산으로 인구성장률이 둔화해 2030년 5200만 명을 정점으로 감소하여 2060년 43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통계청, 「장래인구추계」 2010~2060년).

 

셋째, 교인들이 느끼는 삶의 압박감이다. 교인들은 경제적 위기와 신체적 질병, 퇴직에 대한 불안감 속에 살고 있다. 지난 20년간 대한민국의 거시적 지표들은 성장했지만 우리나라 중산층의 소득은 늘지 않아 가계경제는 고단했다. 국가는 잘살게 되었지만 국민은 가난해졌다는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다. 왜냐하면 월급 상승 속도보다 물가와 화폐가치의 하락이 더 빨라 실제적인 자산 가치를 끌어내리기 때문이다. 20년간 교인들의 삶은 실질 소득은 줄고 빚만 늘어난 상황이다(최윤식, <2020. 2040 한국교회 미래지도>(서울: 생명의말씀사, 2013) p.144).

 

넷째, 영성 훈련이 단축됐다. 교인들은 기도하는 시간이 짧고, 대다수가 설교 시간이 길어지면 조바심을 느낀다. 요사이 한국교회 강단은 몇몇 교회를 제외하고는 설교시간이 30분 전후로 짧아졌다. 짧은 설교가 인기가 있어 나도 거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즉 설교가 길어지면 분위기가 좀 촉박해지는 느낌이랄까. 옛날, 성령의 능력과 은혜가 넘칠 때는 예배시간이 3~4시간이라도 짧은 것 같았고, 은혜받았기에 심령에는 기쁨이 넘치고 감사했다. 요즘은 교인들의 영성 훈련이 제한받아 예전의 여유 있게 말씀 듣던 시절이 몹시 그리워진다.

 

다섯째, 기도의 절박성이다. 목회 현장에서는 성령님의 도우심과 충만함을 절박하게 간구하게 된다. 설교를 아무리 완벽하고 멋있게 준비할지라도 성령님이 역사하여 도와주시지 않으면 아무런 열매도 없고 그 설교는 허공을 치는 소리에 불과하다. 그래서 설교 준비에 투자한 것보다 더 많이 기도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현실적 각성이 나에게 진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목회하면서 다른 데 시간을 쓰고 여기저기 활동하며 돌아다니는 분들이 참 이해가 안 됐다.

 

여섯째, 목회의 보람이다. 선후배 교수들이 교수로 있다가 목회하니 어떠냐고 물으면 나는 “교수생활은 즐겁고 좋았다면 목회는 정말 보람되고 행복하다”고 답했고 지금도 같은 마음이다. 성도들의 가정, 병원, 직장과 사업장에 심방을 가는 게 참 행복하고 보람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붙잡았기 때문이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25:34~40).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으로 찾아가서 기도해 주고 위로해 주는 것은 정말 보람되고 행복한 일이다. 누가 뭐라든 나는 목회가 참 행복했다.

최종진 교수

전 서울신학대학교 총장

전 성북교회 담임목사
 

위 글은 교회신문 <44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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