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칼럼] 짧은 인생, 영원하신 하나님
이웃초청 예수사랑큰잔치 기획칼럼②

등록날짜 [ 2019-05-07 15:49:49 ]

짧은 인생 살면서 허무한 것에
집착 말고 하나님 믿고 그분의 뜻
헤아리는 지혜로운 여러분 되기를


벚꽃도 지고 나무마다 연한 녹음(綠陰)이 무성해 봄을 재촉하나 싶었는데 갑자기 여름이 바짝 다가온 것 같습니다. 계절 바뀌는 속도가 전과 같지 않아 봄·가을은 짧아지고 여름은 길어진 듯합니다. 계절의 순환은 우리 마음을 옛것과 새것으로 명확히 구분합니다. 옛것은 과거의 추억으로 그리움이 되고, 새것은 미래 소망으로 기다림의 대상이 됩니다. ‘영생’을 믿는 기독교인은 천국에서 영원히 살기를 기대하므로 미래에 닥칠 죽음도 기다림의 대상입니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영원히 살 영적 존재로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적(三位一體的) 인간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대로 인류를 삼위일체로 만드셨습니다. 바로 육체를 이르는 ‘물질적 요소’와 영원히 사는 ‘영적 요소’, 인간 존재 자체인 ‘혼’을 말합니다.

첫째, 인간은 티끌로 조성된 물질적 요소인 육체로 창조되었습니다. 성경은 육체에 대해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3:19)고 합니다. 여기서 ‘흙’은 히브리어로 ‘땅의 티끌(먼지)’, 즉 물질적 원소를 말합니다. 인간은 육체적 존재로 물질적인 음식을 먹어야 살고 시공간의 제한을 받습니다.

둘째, 인간은 영적 요소로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창2:7). ‘생기(生氣)’는 히브리어로 ‘생명의 호흡(숨)’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영적 존재이기에 하나님을 섬기면서 은총과 축복을 받아 살아갈 때 참된 만족을 느끼고,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그분의 진리(말씀)를 먹어야 영이 삽니다. 나무나 돌로 만든 우상에는 아무런 생기(영)가 없고 아무런 생명력도 없습니다. 생기는 하나님에게서 나와 하나님에게로 되돌아가는 ‘영적 존재’요, 인간 생명의 숨길을 끌고 가는 ‘힘’입니다. 결국 생명과 죽음은 생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영원불멸의 존재입니다.

마지막으로 인간 존재 자체인 혼입니다. “흙으로 사람(육체)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2:7). 여기서 ‘생령’은 바로 인간의 혼(Soul), 인간 자체(Self)를 의미합니다. 곧, 영이 육체에 작용해 나타나는 현상인  ‘산 혼(Living Soul)’이 인격적 인간됨의 존재요, 생각하는 주체입니다. 즉, 티끌로 형성된 인간은 ‘생명의 호흡’이 들어와 숨을 쉬므로 생령,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육체와 영으로 이루어진 인간, 곧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삶은 짧고 미래는 아무도 몰라
서양 나라들은 묘지를 공원처럼 잘 가꿔 놓습니다. 사람들은 묘비 앞에 서서 먼저 간 사람을 추모하는 글을 읽습니다. 수많은 추모 글 중 단 세 줄이었지만, 흥미로운 내용이 적힌 묘비가 있었습니다. 묘비의 첫 줄은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나도 전에는 당신처럼 그 자리에 서서 남의 묘비를 읽었소.” 그런데 두 번째 줄에 “나도 전에 당신처럼 그곳에 서서 그렇게 피식 웃었소”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이게 그냥 재미로 쓴 게 아니구나’ 싶어 마음을 가다듬고 세 번째 줄을 읽었습니다. “이제 당신도 나처럼 죽을 준비를 하시오.” 순간 전율을 느꼈습니다. 죽음 준비만큼 엄숙한 일은 없습니다. 죽을 준비는 살아 있는 동안에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어리석은 부자에게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12:20)”라고 묻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주식 중개인이 하늘을 향해 간구했습니다. “1년 후에 발행될 제가 사는 지방의 신문 한 부를 먼저 보게 해 주세요.” 결국 소원을 성취했습니다. 그는 주식시장 상황을 미리 알아 몇 배로 베팅해 ‘한탕 대박’을 기대하며 급히 경제면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그 기사 맞은편 지면에 있는 부음(訃音) 글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자기가 그 전날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짧고 장차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다윗은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시90:4)라며 수학적 진리로 인생을 논하고 있습니다. 세상만 보고 사는 자에게 영생을 말하면 흘려들을 뿐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히9:27)”라는 경고를 전해도 그 행한 대로 심판한 결과인 천국과 지옥은 더더욱 이해하지 못합니다.
목욕탕 사우나에 모래시계가 있어 엎어 놓고 내려오는 모래를 무심코 쳐다보았습니다. 위에 모래가 많을 때는 더디게 내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모래가 얼마 안 남았을 때는 빨리 내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내려가는 속도와 분량은 똑같은데 말입니다.

어릴 때는 시간이 더디 가는 듯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점점 빨리 가는 것 같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 년, 열두 달, 24시간은 똑같이 갑니다. 다윗이 자기 나이를 헤아리는 지혜를 달라고 간구한 기도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게 해 달라는 간절한 소원을 담고 있습니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허무한 것에 집착하지 말고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뜻을 헤아리는 지혜로운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최종진 목사
서울신학대학교 총장
한국기독교학회장

위 글은 교회신문 <62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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