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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과 포용의 리더십

등록날짜 [ 2008-10-28 11:40:39 ]

세종이 승하한 후 중추원지사 이선 등이 부고를 전하고 시호를 청하기 위해 북경에 갔다. 그때 예부에 상신하기 위해 들고 간 글에 세종의 치적과 관련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신하를 예로 대우하여 왕의 세상이 끝나도록 사대부 중에서 형벌로 죽은 자가 없었다.” 이 말을 단순히 형을 가볍게 했다거나 온정주의 때문으로 해독하는 것은 지나치게 소박하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대부’이다. 사대부가 사형을 당하는 경우는 대부분 역모나 반란에 연루됐을 때다. 그런데 세종 치세에 이렇다 할 대역이나 모반은 없었다. 있었다 해도 해프닝 수준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여러 가지 차원에서 분석이 가능하나 무엇보다 그의 정치 스타일, 즉 포용의 리더십에서 가장 큰 이유가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세종이라는 사람은 관후하며 원대하고 지독할 정도로 집념이 강하다. 그러면서도 결코 유약하거나 우유부단하지 않고, 공허하거나 이상에 치우치지 않았으며, 고집스럽거나 아집에 사로잡히지도 않았다. 정적이 있을 때는 끝까지 그를 포용했으며, 반대가 있을 때는 끝까지 설득했다. 그러했기에 세종이 세워놓은 틀에서 조선은 500년을 이어올 수 있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절대 독선과 아집으로 자기의 주장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나와 다르다하여 배타하거나 무시해서도 안된다. 무조건적으로 양보하고 베풀기만 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확고한 믿음이 있다면 상대방을 설득해야 하고 이를 포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반대로 설득당할 줄도 알아야 하고, 포용 당할 줄도 알아야 한다. 세종 역시도 설득당하고 포용당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자존심 상해하지 않았다. 그만큼 관대했다. 그것이 곧 세종의 가장 큰 무기이자 장점이었다. 대체로 배우지 못한 이들이 고집스럽다.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설득하고 설득당하는 일에 두렵지 않다. 그래야 자신이 더 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대화와 소통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설득과 포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14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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