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성서의 땅을 가다’(186)] 사도 바울의 첫 설교지 터키 땅 ‘비시디아 안디옥’
사도 바울의 길을 따라서 ⑶

등록날짜 [ 2020-04-04 11:12:57 ]

로마화 정책의 중심지로 화려했던 고대도시
예수를 메시아로 믿지 않는 동족과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하며 핍박속에 복음 전해
동족인 유대인에겐 ‘남은 자’ 사상으로 복음 전도


야외극장 유적. 당시 2만 명을 수용하던 극장. 로마 풍습대로 목숨을 건 검투사의 투기 경기가 행해졌고, 시민들은 열광했다.



유대인 회당터. 바울이 이 땅을 방문했을 때 첫 설교한 자리.



십자가 문양이 새겨진 돌조각. 바울이 첫 설교했던 유대인 회당 근처에 있다. 이 땅의 위대한 영적 역사를 전해준다.



바울의 1차 선교여행 지도. 빨간색 부분을 보면 1000m이상의 험준한 지형임을 알 수 있다.



윤석전 목사: 비시디아 안디옥은 사도 바울 당시 이방인과 유대인이 많이 살던 곳입니다. 그곳에 선교하러 간 바울은 도착하자마자 유대인 회당(會堂)에 가서 첫 설교를 합니다. 많은 이방인이 바울의 능력 있는 설교 앞에 압도당해 무릎 꿇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지만 동족 유대인은 바울을 모질게 핍박하고 쫓아냅니다. 이번 호는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가보겠습니다.

터키 중부 얄바치(Yalvach) 동쪽으로 3.2km 떨어진 곳에 비시디아 안디옥 고대 유적 터가 있다. B.C. 312년 건립된 시리아 왕국(Seleucid Empire)의 요새인 비시디아 안디옥은 로마가 선정한 아시아의 거점 도시이자 로마화정책의 실현 중심지로 빠르게 발전했다. 현재 도시 입구에는 기둥 잔해만 남아 있지만, 형체가 보이는 대리석 길을 보면 당시 비시디아 안디옥이라는 도시가 얼마나 화려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현대 배수시설 못지않게 과학적인 시설을 갖춘 로마시대의 욕조를 보면 비시디아 안디옥이 로마의 선진문화를 깊이 접목한 기획 도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땅에 바울이 복음을 들고 왔다.

윤석전 목사: 비시디아 안디옥의 지리와 역사를 소개해주세요.

홍순화 교수: 비시디아 안디옥은 터키 토로스 산맥(Taurus Mountains)을 넘으면 나오는 평균 고도 1000m인 험준한 산길에 있습니다. 바울을 파송한 수리아 안디옥과 구분하고자 비시디아 지방의 안디옥이라 부릅니다. 로마 사람들이 이 지역을 다스릴 때 비시디아 안디옥을 거점 도시로 정했습니다. 로마는 넓은 영토를 소수 병력으로 다스렸습니다. 군대를 주둔하지 않은 대신, 길을 잘 닦아서 긴급 상황 시에 재빨리 출동하도록 했습니다. 이후 로마가 비시디아 안디옥을 자매도시로 삼으면서 더욱 중요해집니다. 사도 바울은 안디옥교회에서 파송 받고 실루기아(Seleucia)를 거쳐 구브로(Cyprus) 섬에 갑니다. 거기서 살라미(Salamis)와 바보(Paphos)에 들렀다가 터키 내륙으로 갔고, 버가(Perga)에 들렀다가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갑니다. 선교 전략으로 제일 중요한 도시에 가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바울이 복음 전도 지역을 선택한 안목을 보면, 참 출중하다고 생각됩니다. 만약 바울이 현대에 태어났다면, 전 세계를 누비며 선교할 위대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요즘은 비행기와 배 같은 좋은 교통수단이 있으니 하나님의 역사를 더 크고 위대하게 이뤄냈으리라 추측됩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에게 어떤 역사가 있었는지 소개해주세요.

김호경 교수: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행한 바울의 활동을 보면, 약간 의아합니다. 바울은 이방인 사도로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알려졌는데,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처음 들어간 곳은 유대교 공동체의 예배당인 회당(會堂, Synagogue)이었습니다. 이는 바울이 이방인뿐만 아니라 유대인에게도 복음을 전했고, 유대인 전도가 바울의 실제 관심사였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항상 회당에서 말씀을 전합니다. 회당 안에는 첫째 유대인, 둘째 이방인 중에서 유대교에 좋은 느낌을 가진 경건한 사람, 셋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같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에게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하지만 이방인의 긍정적 반응은 오히려 유대인의 거부를 유발합니다. 바울은 더는 회당에서 복음을 전할 수 없었고, 그 지역 이방인에게로 발걸음을 돌립니다. 유대인에게 거부받은 후에도 바울은 다음 도시에 가면 다시 회당에 가고 역시 유대인에게 거부당하는데, 이것이 바울의 선교 패턴이 됩니다.

윤석전 목사: 하나님의 섭리 속에 이방인의 구원은 이뤘지만, 그토록 사랑한 동족에게는 박해받을 때 바울이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그 장소인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다시 가보겠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 유적지에서 윤석전 목사와 침신대 교수들.



바울 당시 비시디아 안디옥 도시에 깔아놓았던 로마의 돌 포장도로 잔해는 지금도 견고하다. 길가 언덕에는 로마가 세운 야외극장이 있다. 당시 20,000명을 수용할 수 있던 이곳에서 검투사의 투기대회가 자주 벌어졌고, 시민들은 열광했다. 도시 삼면을 둘러싼 성벽의 잔해에서 환락 도시의 옛 모습을 볼 수 있다. 로마 문화의 최고 아성(牙城)을 지키던 단단한 성벽 부근에 바울이 이곳에서 처음 방문한 유대인 회당이 있다. 그 회당 자리에 선 순례자에게는 작은 돌조각에서조차 바울의 숨결이 전해진다. 특히 십자가 문양이 새겨진 돌 조각은 이 땅의 위대한 영적 역사를 전한다. 사도 바울은 이 땅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예수라고 선포했다.

윤석전 목사: 바울의 기념교회가 세워진 시기와 기념교회의 특징을 말씀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비시디아 안디옥에 가면 ‘사도 바울이 여기 와서 복음을 전했다’고 기록된 팻말이 있습니다. 또 비잔틴 시대에 지은 기념교회가 있는데 원래는 유대인 회당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세월이 오래 지나 지금은 기둥만 남았거나 최근 일부 벽을 복원하기도 했는데, 얼마 전에 보니 침례 터로 보이는 곳도 발굴을 했습니다. 시간 여유를 가지고 도시 유적 전체를 살피면 비시디아 안디옥이 매우 크고 웅대한 도시라는 점, 사도 바울이 복음을 위해 제일 먼저 이 도시를 공략한 것이 확실히 지혜로웠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윤석전 목사: 이방 땅에 도착하면 디아스포라(Diaspora,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세운 회당에서 복음 전하는 것이 바울의 전도전략이었는데 아무리 전략이라 해도 회당에 가면 뻔히 유대인에게 핍박받을 줄 알면서 왜 끝까지 회당에서 복음을 증거했나요?

김호경 교수: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사가 유대인에게서 시작하여 이방인까지 연속된다, 즉 구약과 신약의 역사가 하나님의 역사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거부하다 예수를 죽였다고 해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서 배제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바울에게 중요했습니다. 또 하나님은 신실한 분이시며, 한번 한 약속은 영원히 지키는 분이신 것을 보여주는 일은 이방인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난받아도 끊임없이 회당을 찾아 유대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윤석전 목사: 바울이 회당을 찾았던 것은 유대인이 먼저 은혜받고 예수를 알아 전도자로서 복음의 모체가 되기를 소원하는 마음과 동족이 구원받기를 바라는 마음, 그들을 통해 이방인이 예수 믿고 구원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어 참 감동됩니다. 비시디아 안디옥교회에서 동족으로부터 바울이 받은 핍박의 고통보다 동족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아 생기는 마음의 아픔이 더 컸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때 바울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김호경 교수: 바울의 심정은 말할 수 없이 처참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자신은 동족을 위해서 일하고 복음을 전하는데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 받은 상처는 다른 어떤 상처보다 깊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서 9~11장에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유대인이 배제되지 않는다고 강조할 때 드는 것이 바로 구약에서부터 시작된 ‘남은 자’ 사상입니다. 유대인이 예수님을 거부했지만 모든 유대인이 그런 것은 아니고, 남아 있는 유대인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지속되고, 다른 유대인까지 그 역사 속에 들어올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동족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매우 아프고 상처가 남아도 치유하고 넘어서서 자기 자신을 복음전도에 던질 수 있던 이유는 지나온 역사에 대한 믿음과 언젠가 유대인이 하나님의 역사 속에 들어올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윤석전 목사: 오늘 꼭 바울의 마음과 하나님의 섭리를 만나는 것 같습니다. 바울의 생애를 보면서 우리도 바울이 전한 복음 증거의 정신을 가져 하나님의 섭리를 이뤘으면 합니다. 당시 이방 땅에 세워진 회당은 어떤 역할을 했나요?

홍순화 교수: 이스라엘 민족에게 회당은 신앙의 중요한 터전입니다. 교회가 교인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성전(聖殿) 위주의 신앙생활을 했는데 이방 땅에서 신앙생활 하려고 회당을 만들고 모여서 예배도 드리고 신앙교육도 하면서 신앙을 이어갔습니다.

윤석전 목사: 이방인 중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사람’이란 누구를 말합니까?

김호경 교수: 이방인 중에는 유대교를 훌륭한 종교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유대교로 전향하는 것은 할례를 비롯한 엄격한 율법 때문에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방인 중에 유대교로 전향하진 않았지만 유대교에 호감을 갖고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유대인과 같이하며 경건한 삶을 산 사람들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부릅니다.

윤석전 목사: 어느 순간에 자기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전도의 현장 속에서 바울은 이방신을 믿는 사람과 디아스포라 유대인에게 자기 생애를 다해 복음 전하는 것이 성령의 뜻이라고 믿었습니다. 우리도 바울의 심정을 가지고 전도의 열정을 다해 복음전도의 승리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 성서의 땅 186회 영상 보기

위 글은 교회신문 <67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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