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오시는 대로(大路)<20·中>] 다윗, 죄와 회개

등록날짜 [ 2025-11-27 11:25:56 ]

<사진설명>감람산 전경.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예루살렘의 감람산 길로 피신했다.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올라갔다가 여리고 쪽으로 향했고, 요단강을 건넌 후 마하나임에 피신한다.


하나님은 상한 심령을 내어놓고

회개한 다윗왕을 용서해 주시며

다윗을 위대한 왕으로 세우시어

예수가 오시는 대로로 사용하셔


요르단의 수도 암만(Amman). 암만은 성채로 에워싸인 구릉들로 이루어진 도시이며, 가장 높은 언덕이 시의 중심지이다. 암만에는 우리아가 암몬 족속과 싸우다 죽은 랍바(Rabbah)성 유적이 남아 있다. 당시 랍바성은 암만의 중심에 있던 암만 성체였다. 다윗은 밧세바와의 불륜을 숨기기 위해 자신의 충실한 부하이자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아를 이곳 랍바성에서 죽음으로 내몰았다.


▶윤석전 목사: 통일 왕국을 이룬 다윗왕이 아람 사람들이 사는 곳까지 정복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고자 한 땅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이요, 그 당시 이스라엘의 국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아람 사람들이 누구이며 그들이 사는 땅은 어디인지 알려 주세요.


▶홍순화 교수: 다윗 시대에 아람 족속은 오늘날 시리아 지역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도시의 이름 앞에 ‘아람’을 붙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다메섹(Damascus)도 아람 사람들의 땅이어서 ‘아람 다메섹’이라고 불렀습니다.


또 아람 족속은 족속으로 따지면 굉장히 넓은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유프라테스강(Euphrates River) 북쪽의 하란(Haran)도 밧단 아람(Paddan Aram)이라고 불리며, 이곳까지 아람 족속이 살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아람 족속의 땅을 정복했을 때는 평안했으나, 이후 남북이 분열되자 아람 사람들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괴롭힙니다. 또 남과 북이 아람 족속과 동맹을 맺어 동족을 치는 데 그들의 군사력을 이용하는 등 비극적인 일을 벌입니다.


▶윤석전 목사: 이스라엘이 강대국 지위에 올랐으나, 다윗은 왕의 지위를 이용해서 하나님이 용납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릅니다. 바로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사건입니다.


▶차준희 교수: 우리아가 암살당한 후 다윗은 그의 아내 밧세바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사무엘하 11장 마지막 절에 “그 장사를 마치매 다윗이 보내어 저를 궁으로 데려 오니 저가 그 처가 되어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의 소위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삼하11:27)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무엘하 11장은 단순한 궁중 기록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맨 마지막 절인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다”라는 한마디가 굉장히 의미심장합니다.


다윗은 최고 권력자였고, 그 권력을 동원해 완전범죄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십계명 중 세 가지를 범했습니다. 바로 7계명 “간음하지 말라”, 10계명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6계명 “살인하지 말라” 등입니다. 다윗은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죄를 은폐하려 했지만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일으킨 사건에서 교훈 세 가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성군 다윗도 한순간에 치명적으로 타락할 수 있다는 것이며, 어떤 인간도 완벽하지 않고 인간은 한순간에 넘어질 수 있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진설명>랍바성 유적. 요르단의 수도 암만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다윗은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아를 이곳 랍바성에서 죽음으로 내몰았다.


둘째는 통제 장치가 결여된 권력은 반드시 화를 자초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왕이나 지혜로운 사람들은 자신을 통제해 줄 수 있는 사람이나 장치를 곁에 마련해 둡니다.


마지막 셋째는 하나님의 침묵이 하나님의 부재를 의미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아무 말씀 없으셨지만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고 모르시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이 항상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윤석전 목사: 다윗이 겪은 고난 중 가장 큰 고난이 바로 아들 압살롬의 반역이었습니다. 다윗이 왕좌를 뒤로한 채 어느 곳으로 피신했는지 알려 주세요.


▶홍순화 교수: 다윗은 예루살렘(Jerusalem)의 감람산(Mount of Olives) 길로 피신했습니다. 보통 주기도문 교회가 있는 곳만 감람산이라고 여기는데, 감람산은 예루살렘 북쪽의 히브리대학교가 있는 스코프스산(Mount Scopus)에서 멸망산(Mount of Corruption, 왕하23:13)에 이르기까지 남북으로 3.5km 정도 되는 작은 산맥입니다.


다윗의 피신 행로를 추적해 보면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올라갔다가 여리고(Jericho) 쪽으로 갑니다. 사무엘하 15장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삼하15:32)을 지나갔다고 하는데, 놉(Nob)이라고 추정하는 오늘날 스코프스산으로 올라가서 동쪽의 여리고 앞을 지나갔습니다. 이후 요단강(Jordan River)을 건너는데 그 부근이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넌 곳 부근입니다. 결국 다윗은 마하나임(Mahanaim)으로 피신합니다. 오래전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 얍복강(Jabbok River) 부근에 있던 곳입니다.


한편, 얍복강의 상류가 바로 우리아가 전사한 랍바성입니다. 우리아가 전사한 곳에서 시작한 얍복강 부근의 마하나임으로 다윗이 피신한 게 얄궂은 일입니다.


<사진설명>사울과 다윗 그리고 솔로몬의 왕국. 다윗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모세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땅을 대부분 정복했고, 후대의 솔로몬이 이스라엘 북쪽의 시리아 지역을 조금 더 정복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완전히 이루었다.


▶윤석전 목사: 아들에게 쫓기던 다윗왕은 고통과 굴욕 그리고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허망함을 느끼며 자기의 잘못을 돌아보았을 듯합니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킨 과정을 말씀해 주세요.


▶차준희 교수: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북쪽의 이스라엘 사람들과 남쪽의 유다 사람들 중에 적지 않은 이들이 압살롬의 편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다윗의 통치에 불만이 조금씩 쌓였던 모양입니다.


압살롬은 4년 동안 아버지 모르게 반란을 준비했습니다. 반란의 진원지가 되는 곳이 압살롬의 고향이자, 남유다의 헤브론(Hebron)입니다. 헤브론 사람들은 다윗이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것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던 차에 압살롬이 그 누적된 불만을 이용해 헤브론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지난날 압살롬이 아버지를 피해서 달아났는데 이제는 아버지가 아들 압살롬을 피해 도망칩니다. 이때 다윗은 사울 집안의 사람이자 베냐민 지파의 시므이에게 공개적으로 모독을 당합니다. 다윗을 수행하던 사람들이 굴욕적인 저주와 욕을 들으며 시므이를 해하려 하지만, 다윗은 칼을 넣으라고 하며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까닭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삼하16:12)라며 내가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저주를 받는 것이라고 받아들입니다.


다윗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 저주를 듣고 계신 하나님과의 사이를 생각해 무력으로 진압하지 않고 기도로써 대적의 저주를 무력화합니다. 다윗은 온갖 역경에도 악을 악으로 갚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부름받은 사람답게 행동합니다.


아들에게 쫓기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또 굴욕적인 처사를 당한다 할지라도 다윗은 요동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압살롬에게 쫓길 때 다윗이 지은 기도가 시편 2편에 나와 있습니다. 그만큼 다윗은 어떤 상황에서도 기도로 대응했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위기를 돌파합니다.


▶윤석전 목사: 다음 시간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족보를 통해 하나님께서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고자 하신 역사를 탐색해 보겠습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926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

    소셜 로그인

    연세광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