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곤 목사의 평신도신학 <50>] 보혈의 능력을 육신의 방종으로 이용 말아야
영원한 구원(Eternal Security)의 보증에 관하여 ⑥-조건적 구원의 보증 견해 <3>

등록날짜 [ 2012-07-17 13:37:37 ]

예수 보혈의 공로와 사랑은 무한하지만
계속적인 죄는 무서운 심판만이 따른다

지난 호부터 조건적 구원 보증에 관한 관점을 살펴보고 있다. 알미니안주의자가 조건적 구원 보증을 주장하는 세 가지 이유는 첫째, 성경은 조건적인 용어로 구원을 설명한다, 둘째, 성경은 믿는 자들이 믿음에서 떨어질 것을 경고한다, 셋째, 성경은 실제로 구원을 잃어버린 몇몇 사람에 관해 분명히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중 첫째와 둘째 이유는 살펴보았고, 이번 호는 셋째 이유에 관해 상세히 알아보자.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의 예를 들며, 지속적인 믿음과 순종이 구원의 조건임을 가르친다. 예를 들면, 사울은 한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사울과 함께 계셨으며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기까지 했다(삼상10:6~7).

또 하나님은 사울이 하나님께 신실하기만 하면 그와 그의 자손에게 축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삼상13:13).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울은 하나님께 반역했고, 너무나도 악해져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셨다.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삼상15:10~11). 사울은 한때 하나님께 사랑받았지만 결국 그의 악한 선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거절당한 사람 중 한 예가 됐다.

이스라엘의 역사(歷史) 역시 구원의 조건적 속성을 잘 설명해준다. 한 나라로서 이스라엘은 꺾여버린 포도나무 가지며, 이방인들이 그 자리에 접붙인 바 되었다고 바울은 가르친다.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롬11:17).

이스라엘이 주님과 관계에서 꺾였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확실한 구원 보증이 없다는 것이다. 주님께 새로 접붙인 바 된 이방인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이방인)도 아끼지 아니하실 것이다”(롬11:21). 바울의 가르침대로 두 경우 모두 사람들의 행동에 따라 하나님의 약속은 조건적이다. 믿는 자의 마음이 굳어지고 불신자가 될 때, 그들은 하나님께 거부되는 것이다.

같은 식으로 바울은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한 자들에게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말하며 경고한다(갈5:4). 한 때 바울은 그들이 “달음질을 잘했고” 진실한 신자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진리에 순종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갈5:7). 이 점에서 그들은 죽은 자들의 미래 부활을 거부함으로 진리에 순종치 아닌 한 후메내오와 빌레도와 같다.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딤후2:17~18).

이 같은 경고는 은혜에서 멀어지고, 영원한 천국의 자리를 내놓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처럼 성경이 타락을 경계하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또 가장 강력하고 빈번하게 오해되고 있는 타락에 관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명확히 말한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히6:4~6).

이 구절은 구원받은 사람도 구원을 잃을 수 있다고 분명히 말한다. 히브리서 기자 역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다면 다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아마도 저자의 의미는 다음의 구절로 더 명료해질 것이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히10:26~27).

만약 믿는 자들이 경고받는 죄(불신과 불순종으로 그리스도를 계속해서 경멸하는 죄)를 고의로 계속해서 짓는다면, 다시는 그리스도의 희생은 없고 심판만이 남는다. 여기서 중요한 요점은 ‘계속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항상 모든 죄를 용서하기를 기꺼이 하시며 준비하고 계시기에 크리스천에게 계속해서 경고하는 것이 틀림없다. 이런 경고를 통해 그들이 만약 회개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회개할 수 없다는 것을 제때에 찾아낼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성령께 강퍅하게 만들어서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는 것이었다.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요일5:16). 

위 글은 교회신문 <29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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