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학으로 본 예수 십자가의 고통

등록날짜 [ 2019-04-18 15:42:32 ]

사인(死因)은 출혈로 인한 쇼크와
산소 부족 때문…못질 아픔보다
호흡곤란 고통이 더 극심했을 것

◀ 예수께서 고통스러운 십자가형을 받고 돌아가신 것은 바로 우리 죗값을 갚기 위해서다. 그 아픔을 아는 자만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할 수 있다.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


2000여 년 전, 로마인의 사형 집행 방법 중 가장 잔인하기로 악명 높은 십자가형에 처해져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위에서 예수께서 겪은 고통의 강도는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

현대 의학자들은 예수의 십자가 고통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예수가 십자가를 지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부터 고통의 시작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경은 마음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하나님께 기도했기에 피땀을 흘리는 예수의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했다(눅22:39~46).

이는 정서 상태가 극에 달했거나, 극심한 정신적 혼란을 겪는 사람들에게 발생하는 ‘혈한증(血汗症, hematidrosis)’인데, 의학자들은 바늘로 살을 찌르는 듯한 극심한 고통을 수반한다고 말한다. 이어 예수는 유다의 배반으로 체포돼 대제사장과 총독 앞에서 수차례 심문을 받고, 채찍질과 함께 십자가형을 선고받는다(눅22:47~23:25).

당시 로마는 모든 형을 집행하기 전에 죄수를 기둥에 묶어 놓고 등에 채찍질을 했는데, 이때 사용하는 채찍은 가죽끈에 작은 공 모양 철이나 날카로운 양의 뼈를 붙여 놓았다. 따라서 의학자들은 예수가 깊은 타박상 또는 피하조직에 심한 손상을 입어 살이 찢기는 극심한 고통, 출혈로 인한 쇼크 등을 겪었으리라 추측한다.


예수는 당시 로마의 관행에 따라 양쪽 어깨에 십자가를 지고 양팔이 묶인 채 처형 장소로 걸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데(눅23:26~49), 이때 예수가 진 십자가는 34~57kg 정도인 횡목(橫木, 십자가의 가로)이었다는 것이 고고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또 학자들은 예수에게 사용한 못은 길이 12.7~17.8cm, 지름 1cm 정도인 끝이 날카로운 철 대못이며, 예수의 손바닥이 아니라 팔뼈 끝부분과 손목뼈 사이를 관통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근처에서 발견된 예수 시대 유골들에서 이런 흔적이 공통으로 드러나고, 손바닥에 못을 박았다면 몸무게를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못은 예수의 피부를 뚫는 동시에 중앙신경도 관통하면서 작열통을 일으켰을 것이다. 작열통(灼熱痛)은 사지에 외상을 입었을 때 그 말단부가 불에 타는 듯한 고통에 휩싸이는 통증으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심한 고통이다.


또 예수의 발은 겹쳐진 채 십자가의 수직 기둥 정면에 고정됐고, 못은 발 중앙 둘째와 셋째 뼈 사이에 꽂혔다고 본다. 이 때문에 예수는 양손과 발의 주요 신경들이 끊기는 고통, 즉 손과 발이 잘리는 듯한 아픔을 느꼈을 것이다. 더욱이 십자가형에 앞서 당한 채찍질로 출혈, 쇼크, 혈압저하 현상, 못을 박으려고 눕혔을 때 채찍으로 맞은 등에 재차 가해지는 통증, 십자가 위에서 숨을 쉴 때마다 찢긴 등과 거친 나무기둥이 부딪치며 생기는 고통 등 예수는 매 순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고통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러나 의학자들은 예수가 이보다는 호흡곤란 상태로 더 극심한 고통을 느꼈을 것으로 본다. 못이 박혀 쭉 뻗은 팔과 어깨를 끌어내리는 몸무게는 숨을 들이쉬기보다 내쉬기 훨씬 어렵게 만들고, 이 때문에 이산화탄소 과잉, 근육 경련 현상 등이 한층 더 호흡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숨을 제대로 쉬려고 발을 밀어 올리고 팔꿈치를 구부리면서 어깨도 함께 들어 몸을 위로 끌어올려야 했다. 그러나 이런 동작은 못 박힌 발에 몸무게 전체를 싣게 되므로 심한 고통이 따른다. 더욱이 팔꿈치를 구부리는 동작은 못 박힌 손목을 돌리게 하고 팔의 신경을 손상하게 되므로 고통이 가중된다. 결과적으로 예수는 숨을 쉴 때마다 극심한 고통 때문에 치명적인 산소 부족(질식)을 경험했으리라는 것이 의학자들의 설명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는 견딜 수 없는 이 모든 고통을 인간을 향한 사랑으로 묵묵히 견뎌냈다. 자신이 이런 고통을 당하지 않으면 인간이  지옥 멸망에서 영원히 고통당할 것을 알기에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기도하며 묵묵히 견뎌냈던 것이다(눅23:34).


예수의 이 사랑을 생각하면 삶 속에서 한없이 무겁게만 느껴지던 우리의 십자가가 한결 가볍게 느껴진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마16:24)

위 글은 교회신문 <62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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