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로 읽는 시편 (1)] 시편, 벼랑 끝의 노래

등록날짜 [ 2025-12-30 10:22:59 ]

시편의 기자들 하나님 앞에 서서

죄인인 실존 발견해 구주를 찬양

매주 시편이라는 거울 앞에 서서

속죄의 피로 구원받은 실존 경험


“바람에 나는 겨”(시1:4). 시편 1편이 묘사한 악인의 운명이다. 심판 앞에서 흩어진다. 사라진다. 멸망한다. 본래, 우리의 자리였다.


시편은 노래 150편이다. 천 년에 걸쳐 기록됐다. 인간 내면의 모든 감정이 여기 담겨 있다. 모세의 출애굽부터 바벨론 포로 귀환까지 시대는 달랐으나, 저자들의 공통점은 한 가지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실존을 직면했다는 것.


그 실존은 무엇인가? 죄인이다. 시편 14편은 선언한다.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시14:3).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존재. 죄로 단절된 채 영원한 형벌을 기다리는 인생. 바람에 나는 겨처럼, 심판을 견딜 재간이 없었다.


시편의 히브리어 제목은 ‘세페르 테힐림(Sefer Tehillim)’, 곧 ‘찬양들의 책’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책을 펼치면 비탄이 쏟아진다. 고난과 핍박, 연약함과 절규, 살려 달라는 울부짖음이 가득하다. 끝으로 갈수록 반전이 일어난다. 감사와 찬양이 압도한다. 마지막 다섯 편(146~150편)은 시작과 끝이 온통 ‘할렐루야’이다.


비탄에서 찬양으로. 이 전환, 어떻게 가능한가. 인간의 수행인가? 아니다. 오직 대속의 은혜다.


시편 22편을 보라.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1000년 전에 예언한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시22:1). 이 절규, 골고다 언덕에서 주님의 입술로 터져 나왔다(마27:46). “그들이 내 수족(손과 발)을 찔렀나이다”(시22:16).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시22:18). 글자 그대로 성취됐다. 예수가 지옥의 고통을 대신 당했다. 하나님께 버림받는 형벌, 그가 홀로 졌다.


그래서 시편 32편의 선포가 가능하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시32:1). 바울도 이 구절을 인용했다(롬4:7~8). 22편의 버림받음이 있었기에, 32편의 사함받음이 있다. 오직 예수께서 십자가에 흘린 속죄의 피 때문이다.


우리는 본래 악인의 길에 서 있었다. 바람에 나는 겨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대신 심판받았다. 우리는 멸망의 자리에서 의인의 회중으로 옮겨졌다. 인간의 행위나 자격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시편은 이 복음을 노래한다. 창조주 하나님(8편), 환난 날의 피난처(46편),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는 목자(23편), 사망의 줄에서 건지는 구원자(18편). 150편 전체가 하나님을 향한 증언이다.


이제부터 매주 시편을 묵상한다. 읽는 것이 아니다. 서는 것이다. 시편의 탄식에서 우리 죄를 본다. 시편의 심판에서 우리가 받을 형벌을 본다. 시편의 구원에서 대신 죽어주신 그리스도를 본다. 시편이라는 거울 앞에 선다. 십자가 보혈로 씻김받은 실존을 직면한다. 지옥 형벌에서 건짐받은 은혜를 기억한다.


시편 150편의 마지막 구절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찌어다 할렐루야!”(시50:6).


겨에 불과하던 우리가 이 찬양을 부른다. 멸망할 자가 찬양한다. 버림받을 자가 감사한다. 오직, 예수의 십자가 피의 공로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93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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