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복음 전하여 영혼 구원 이뤄 내자!”
등록날짜 [ 2025-12-17 13:31:40 ]
여리고성이 무너졌다. 이스라엘의 사상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완벽한 승리였다. 여리고성을 정복한 후 다음 목표는 아이성이었다. 정탐꾼들이 돌아와 보고했다.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여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그들은 소수입니다”(수7:3).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이 말은 큰 오만이었다.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을 피곤한 일 취급한 것이다. 여리고의 승리가 영적 긴장을 풀어 버렸고, 간절함이 사라진 자리에 게으름이 들어섰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숫자만 셌다. 여리고는 해발 -240미터이다. 아이는 해발 800미터다. 1000미터가 넘는 고도차, 숨이 턱턱 막히는 오르막을 극복해야 했다. 3000명으로 고지를 점령하겠다는 발상은 교만을 넘어선 전략적 자살이었다.
여리고 앞에서만 해도 여호수아는 달랐다. 칼을 든 자 앞에 엎드려 신발을 벗었다.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고, 그대로 따랐다. 그러나 아이성 앞에서는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 정탐꾼의 판단을 그대로 따랐다. 승리의 기억이 기도를 대신한 것이다. 여호수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밀어내고 있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진노가 이미 맹렬히 타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으로 인하여 범죄하였다”라고 선언했다(수7:1). 공동체 전체가 죄를 졌다. 아간이 저지른 것은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파기한 변절이었다. 그는 하나님께 바친 물건을 취하며 제 품에 멸절을 안았다. 멸절을 안은 자는 스스로 멸절당할 물건이 된다. 아간은 자신의 탐욕으로 온 이스라엘을 저주 아래로 던져 넣었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 3000명이 의기양양하게 아이성으로 올라갔으나 결과는 처참했다. 아이 사람들 앞에서 도망쳤다. 살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올라갈 때는 숨이 막혔고, 도망칠 때는 급경사에서 굴러 떨어졌다. 내려가는 비탈에서 등 뒤에 칼을 맞았다. 높아지려던 교만이 급경사를 따라 곤두박질쳤다.
결국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되었다(수7:5). 요단을 건넌 후 처음 맞는 위기였다. 며칠 전만 해도 가나안 족속들의 마음이 녹았으나, 하나님이 떠난 이스라엘 군대는 적의 칼날보다 먼저 내면의 공포로 무너졌다.
아간만 죄인이 아니다. 우리가 아간이다. 하나님의 것을 탐했다. 하나님과의 계약을 파기했다. 멸절을 품에 안은 자는 스스로 멸절당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 아래 소각되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맹렬한 진노를 온몸으로 받아내셨다. 그분의 피가 변절자를 건져 냈다. 계약 파기자를 구원하셨다.
/정한영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92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