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부 ‘올인500 전도초청잔치’
연세중등부 총력 전도에 나서다!
등록날짜 [ 2026-10-22 14:40:14 ]
남유다 ‘여호람왕’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결과 비참한 최후 맞아
예수님의 족보에 악한 왕도 있으나
예수님은 험한 길도 마다하지 않고
인류 구원의 장엄한 길을 걸어오셔
<사진설명>에돔(현재 요르단)의 고대도시 페트라 전경. 페트라는 바위를 깎아 만든, 암벽에 세워진 산악 도시이다. 에서의 후예인 에돔 족속이 이곳에서 살며 이스라엘과 계속 갈등을 맺었고, 여호람왕이 유다를 다스릴 때도 에돔은 유다의 통치에 반기를 들고 자신들의 새로운 왕을 세웠다.
▶윤석전 목사: 남유다의 여호람왕은 여호사밧왕의 아들입니다. 성경은 “여호람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왕하8:18)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악한 왕 아합의 딸과 결혼했기 때문”입니다. 또 우상을 섬기고 유다를 타락의 길로 이끌어 갔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행한 그에게 가차 없는 징벌을 내리십니다. 그의 막내아들 여호아하스(아하시야) 하나만 남고 자식들을 다 죽게 하셨으며, 여호람 역시 창자에 병이 들어 고통 중에 죽게 됩니다.
그런데도 여호람은 예수님이 오시는 대로, 즉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된 조상 중 하나입니다. 오늘도 마태복음 족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인류를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하고자 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은혜롭게 탐색해 보겠습니다.
야곱의 형 에서가 차지해 족속을 이룬 에돔(Edom) 지역은 북쪽으로 세렛 시내(Zered Brook)가 있고, 남쪽으로는 아카바만(Gulf of Aqaba)이 있다. 서쪽으로는 아라바(Arabah) 광야가 펼쳐져 있고, 동쪽으로는 아라비아 사막(Arabian Desert)과 연결되어 있다.
그 에돔의 수도가 페트라(Petra)다. 페트라는 오늘날 요르단의 남서부 내륙에 있는 사막 지대이며, 해발 950m 고원 바위산에 자리하고 있다.
여호람왕이 유다를 다스릴 때 에돔은 유다의 통치에 반기를 들고 자신들의 새로운 왕을 세웠다. 여호람왕은 모든 병거를 출동시켜 에돔으로 건너갔지만, 오히려 에돔의 군대에 포위를 당하게 된다. 결국 여호람왕은 밤을 틈타 병거 대장들과 함께 에돔 군대의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왔고 유다 군인들도 모두 흩어지고 말았다.
▶윤석전 목사: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예수님의 조상으로서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한 여호람이 어떻게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하나님만은 그 이유를 아십니다.
남유다의 주변 나라 중 하나인 에돔은 여호람왕의 재위 기간에 유다에 반역하고 자기들의 새로운 왕을 세웠습니다. 에돔은 이스라엘을 적대한 세력으로 자주 등장하던 족속입니다. 예수님의 조상 중 한 명인 여호람왕과 에돔이 어떤 사이였는지 궁금합니다.
▶이형원 교수: 에돔은 사울왕 시절부터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인 나라였고, 사울왕 때와 이어진 다윗왕 시절에는 에돔을 정복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왕 때에 에돔을 빼앗겼다가 여호사밧왕 때에 에돔이 다시 유다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사진설명>분열 왕국 시대. 솔로몬이 죽은 후 가혹한 세금과 노역에 반발한 북쪽 지파가 에브라임 지파의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북이스라엘을 세우고, 남쪽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중심으로 르호보암이 남유다를 유지하며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열되었다. 남유다 제5대 여호람왕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가차 없는 징벌을 내리셨다.
그런데 여호람왕이 통치할 때 에돔이 다시 독립을 하고 반기를 들게 됩니다. 이에 여호람왕이 화가 나서 전군을 소집해 에돔을 쳤지만 안타깝게도 실패합니다. 성경은 “여호람왕이 자신들을 포위한 에돔 군대를 밤중에 기습하여 포위망을 탈출했다”(왕하8:21)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람왕 시절에 에돔은 유다로부터 독립해서 자기들의 주권을 강하게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유다를 배반한 에돔을 통해 여호람의 세력이 약화되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과 함께할 때 승리합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론적 차원에서 주님이 오시는 대로로서 그 역할을 바로 할 때 언제나 승리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반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는 항상 적국에 침공을 당하고 패배하는 모습을 봅니다.
예수가 오시는 대로에서 승리와 패배가 수없이 나타나는데, 승리한 부분은 하나님과 함께한 부분이요, 패배한 부분은 하나님을 떠난 부분입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도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 뜻대로 사느냐 못 사느냐에 따라 영적생활을 승리하고 패배하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서 반드시 승리해야겠습니다.
에돔과 마찬가지로 립나(Libnah)도 남유다를 배반하게 됩니다. 립나가 어떤 지역인지 알려 주세요.
▶홍순화 교수: 성경에는 같은 이름의 립나가 여러 지명으로 등장합니다. 먼저 오늘날 시리아 쪽에 있는 립나입니다. 이곳은 이스라엘 민족이 포로로 끌려 가다가 죽임을 당한 슬픈 장소입니다. 또 남유다 땅의 립나가 있습니다. 남유다의 립나는 원래 유다 지파의 땅이었으며 이후 아론 자손에게 주어진 성읍입니다.
립나가 남유다를 배반한 이유를 추측해 보면, 유다 지파의 영토 중 제일 변경에 있었다는 지리적인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립나 주위의 모든 마을이 남유다에 속해 있었다면 배반하기 어려웠겠지만, 립나는 블레셋 평야 쪽의 쉐펠라(Shephelah) 지역에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곳을 ‘평지’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사진설명>립나 전경. 많은 학자가 립나를 ‘텔 부르나’라고 하는 조그만 언덕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호람왕 시절에 립나도 에돔처럼 남유다를 배반하였다.
많은 학자가 립나를 ‘텔 부르나(Tel Burna)’라고 하는 조그만 언덕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곳을 가 봤더니 조그만 요새 터가 있고, 발굴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성경 시대부터 로마 시대까지 사람들이 사용하던 토기들을 발견했는데, 성지에서 발견된 토기는 그곳에서 사람들이 살았다는 증거가 됩니다.
립나의 위치를 조금 더 말씀드리면, 라기스(Lachish)에서 북동쪽으로 약 8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그 주위에 큰 특징이 없는 언덕이 많습니다. 에우세비우스(263~339) 같은 교회 역사가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성경 속 마레사(Mareshah)를 벧 구브린(Beit Guvrin)”이라고 여겼는데, 유세비우스는 “립나가 벧 구브린 지역에 있는 성”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립나는 남유다 땅에서 변두리에 있었고 지리적으로 남유다와 느슨한 위치인 탓에 배반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핵심 지역에 있지 않고 블레셋 평야와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배반할 가능성이 많았다는 것을 기억하며 신앙적인 교훈도 얻을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모습을 보면, 성막을 중심으로 성막 가까이에 장막을 치고 생활했습니다. 오늘날도 교회와 집 사이가 먼 사람들은 신앙생활이 느슨해지기 쉽고 다른 이에 비해 마음껏 신앙생활 하는 데도 제한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안에 계신 주님과 얼마나 가깝게 지내는가’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사랑을 잊어버리고, 구원받은 감사를 잊어버리고 망각할 때 주님께 등을 돌리게 됩니다. 또 내 현실과 상황에 맞춰 살다 보면 주님을 멀리 떠나게 됩니다. 남유다 땅의 변두리에 살던 립나가 배신한 모습을 보며 영적인 교훈을 얻게 됩니다.
다음 시간에도 마태복음 족보를 통해 하나님께서 인류를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하고자 하시는 역사를 탐색해 보겠습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971호> 기사입니다.